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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영 변혁당 충북도당 집행위원장

“당원들 어깨가 펴지는 선전물을 주고 싶어요”



# 스물일곱 살 진영 씨는 올해로 3년 차 변혁당 전임활동가다. 2016년 변혁당이 출범하던 해 당에 가입했고, 2017년 반상근, 2018~19년 사무국장에 이어 올해는 충북도당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평택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대추리에서 풍물을 배웠고, 고등학교 시절 청주에서 변혁당 사람들을 만나 열아홉 살에 김소연 대선투쟁본부를 함께했다는 진영 씨.


매월 꾸준히 나오는 충북도당 소식지 <드루와>도, 어느 지역보다 활발한 지역사업 기획과 활동도 모두 그녀 손을 거친다. 당 사업이 열리는 곳 어디서나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지역 활동을 일궈오고 있는 진영 씨를 만났다.



청주 ‘희망식당’에서 만난 변혁당, 

열아홉 살에 함께한 김소연 대선투쟁본부


진영 씨는 평택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고2 때 청주로 전학 왔다. 역사를 좋아해 사학과 진학을 준비하던 중 신채호 관련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 거기서 지역신문 기자를 만났고, 그를 통해 청주지역에서 활동하는 스님을 알게 됐다. 2012년이었다. 평택 쌍용차에서 시작된 ‘희망식당’이 지역에서 이어지고 있었고, 진영 씨는 스님을 통해 청주 희망식당을 찾게 됐다. 유성기업 해고자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공간이었는데, 그곳에서 변혁당 사람들을 만났다.


“청주가 희망식당 3호점이었어요. 2012년 6월에 문을 열었고, 제가 고3이었는데 격주로 꾸준히 그곳에 갔어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곳 같아 좋았어요. 그해 대선이 있었고, 김소연 대선투쟁본부를 꾸렸잖아요. 수능 끝나고 그 활동까지 같이했어요. 미성년자라서 선거운동복을 입지는 못했고, 그냥 옆에서 도와주는 정도였지만요. 희망식당도, 선거도, 그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이야기가 다 새로웠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거랑 전혀 다른 내용이잖아요. 그런 새로운 얘기들을 거리에서 한다는 게 또 그렇게 신기했어요. 청와대 앞에 가서 집회처럼 선거운동 하다가 막혔던 게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어요.”



‘충북에서 원래 하던 만큼은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당 전임활동,

“가끔 밉기도 하지만 정말 어려울 때는 

당원들 스스로 나서줘”


2013년, 다른 지역 대학에 진학했다. 원했던 대로 사학과에 입학했는데, 대학이 생각보다 너무 재미가 없었다. 학생회 문을 두드려보기도 했지만 진영 씨 기대와 달랐다. 한 학기 만에 대학을 그만두고 다시 청주로 왔다. 그곳에서 지역 집회도 나가고 <꼬뮌학교 동동>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이모, 삼촌이라 부르던 ‘좋은 사람들’과 학습하고 실천하다 변혁당에 가입했고, 그렇게 ‘동지’가 됐다. 당 전임활동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 시작할 때 어떤 마음이었냐고 물었더니 ‘예전에 하던 만큼은 하자’는 게 목표였다고 한다.


“충북은 전부터 기본을 지키면서 열심히 활동하는 지역조직이었어요. 그러니 저도 만나게 됐을 거고요. (웃음) 상근 시작하면서 부담스러운 것도 많았죠. ‘예전에 하던 것만큼은 해야지, 뒤처지지는 말아야지, 하던 사업 유실시키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시작했어요. 분회 회의는 한 달에 한 번, 전체 회의는 분기별로 한 번, 교육은 1년에 두 번, 이런 정기적인 모임들을 지켜가는 것부터 한 달에 한 번 소식지 내는 것처럼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고, 지역 당원들도 많이 도와준 것 같아요.”


변혁당 충북도당에는 30여 명의 당원이 있는데, 대부분 노동조합 활동가다. 간부층이 많다 보니 당 사업은 뒷전으로 밀릴 때도 많다. 가끔 속상하고 서운할 때도 있지만, 지역 당원들이 스스로 나서주기도 하고, 당과 함께 논의하고 실천하려는 모습에 힘을 얻기도 한다.


“당원들이 거의 노조에 있어요. 다들 너무 바쁜 사람들이죠. 알면서도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워서 속상한 날도 있어요. 근데 또 상황이 어려울 때는 당원들이 알아서 나서요. 2018년 말, 발전소 김용균 노동자 투쟁 때 지역에서 뭔가를 해보려고 했어요. 그 죽음이 우리 지역 일은 아니다 보니 사람들이 조금 주춤거리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어렵게 청주 번화가에서 선전전 하자고 해서 40여 명이 모였는데, 그때 당원들이 20명 넘게 온 거예요. 정말 필요할 때는 나서주는 거죠. 그럴 때는 너무 고마운데, 또 가끔은 너무 밉고 그래요.(웃음)”


작년에는 조금 부침이 있었지만, 올해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모임과 소식지의 주기성을 회복하는 중이라고 한다. 지역 연대체 활동에도 꾸준히 결합하고, 충북도당 분회모임부터 사회운동팀, 비정규운동팀 등 각종 회의에 함께하며 자료와 결과 정리, 한 달에 한 번 도당 소식지 발행까지 진영 씨에게는 정기적으로 해야 할 일이 여러 개라 일주일, 한 달 달력이 금방 채워진다.


“꾸준히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일, 저한테도 어려워요. 저도 잔소리를 들어야 마감기한 맞추는 편이거든요. 근데 또 누가 옆에서 계속 잔소리를 해줘요. 지역에서 사람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 보면 ‘변혁당 당원답다’는 말을 하는데, 저뿐만 아니라 당원들이 다들 열심인 거죠.”


진영 씨는 지역에서 ‘청주 여성주의 책읽기 모임’을 제안해서 2016년부터 꾸준히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그해 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박근혜, 최순실을 풍자한 패러디작품 <더러운 잠>을 전시했고, 그림은 표현의 자유, 페미니즘 등 여러 논쟁을 촉발했다. 진영 씨는 그때 분노를 언어화하고 싶어서 책읽기 모임을 제안했다.


“그 논쟁 당시 지역 당원 한 분이 저에게 표현의 자유 아니냐고 물었어요. 화가 나는데 설명하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5명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9명이 함께하고 있어요. 격주로 만나다가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요. 참여하는 분들이 이것저것 제안해서 다양한 활동으로도 이어지고 있어요. 2018년에는 낙태죄 폐지 집회에 지역에서 같이 버스를 빌려 참가하기도 하고, 페미니즘 관련 기자회견에 피켓을 직접 써서 참석하기도 해요. 얼마 전 지역에서 ‘스쿨미투’가 있었어요. 그 사안을 담당한 지역신문 기자님이 우리 모임 회원이라, 같이 소송비용 모금도 벌였어요. 모임 제안할 때 공부를 넘어 지역에서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지만, 되게 자발적으로 뭔가 돼요. 사람들이 분노가 많은 만큼 열의도 높은 거죠. 최근에는 N번방 이후 사이버 성폭력 공부를 하고 싶다는 회원이 있어서 관련 논문을 읽을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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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야기가 아직 많이 어려워요”


최근 당이 벌이고 있는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은 어떠냐 물었더니 고민이 많다고 한다.


“올 초 총회에서 저는 그 안에 반대했어요. 너무 급한 것 같았거든요. 당은 결국 당원들의 활동이 모이는 조직인데, 당원들이 준비돼 있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런데 또 언제 그 준비를 다 할 수 있냐고 하면 그건 모르겠어요. 조직이 먼저 결단하고 당원들이 변해가는 것도 필요하죠. 결정된 사업이니만큼 지역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열심히 하려고 해요. 그런데 여전히 우리 내용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단어 하나하나도 너무 어려워요.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단어들이 많아요. 저도 처음에 회의 정리할 때 무슨 말인지 몰라서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사람들에게 우리 수준에 맞추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올해 선전위원회를 새로 꾸리면서 변화도 있어 좋은데, 여전히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나한테도 어려운 선전물을 당원들에게 쥐여주며 그걸 갖고 조직하라니, 저도 고민이 많이 들죠. 당원들에게 무기가 될 수 있는 선전물, 당원들이 자신감을 갖고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선전물이 더 많이 필요해요.”


진영 씨에게 사회주의는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나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사회주의는 지금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니까 저를 계속 고민하게 해요. 몇 년 전에는 여성, 젠더 이슈가 제게 큰 영향을 줬는데, 작년부터는 기후위기 이슈로 정말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별거 아니지만, 생활 속에서도 실천하려고 하고요.”


마지막으로 당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서로 좀 보듬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 활동하는 분들이 정말 고생 많은데, 가끔 보면 당원들이 ‘고맙다, 고생한다’ 같은 말에 인색한 것 같아요. 충북은 안 그렇거든요. 당 활동하느라 고생한다고 꼭 한마디씩 해줘요. 빈말이라도 항상 그렇게 말하고, 그 덕에 저도 힘을 내죠. 우리 당 활동하는 모든 동지들이 그런 말을 좀 더 자주 듣는, 그런 조직이 됐으면 좋겠어요.”



■ 인터뷰 = 나위기관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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