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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페이스북]



코로나 핑계로 폐업 통보, 

노동자에 대한 테러까지


현대중공업 건설기계 사내하청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의 폐업에 맞선 투쟁


김채삼┃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대의원



지난 9월 11일, 많은 이들이 19년 전의 거대한 테러를 기억했을 그 날, 한 무리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테러를 당했다. 피해자들은 기습적인 업체 폐업에 항의하며 한 달 넘도록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고, 가해자는 현대중공업 원청 경비대였다. 현대중공업 경비대의 폭력 만행이야 수십 년에 걸친 극악한 ‘전통’을 자랑하지만, 이 사태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웃음기 싹 뺀 처절한 현실임을 다시금 생생하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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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밴드, 전인표 제공]



노동조합으로 권리를 되찾았던 이들


이날 테러 피해자이자 현대중공업(현대건설기계*) 사내하청업체 ‘서진이엔지’ 소속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년 전인 2019년 9월, 노동조합에 집단가입한 바 있다. 이들은 그간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임금을 받았고, 연차 등 개인휴가도 자유롭게 쓰지 못했다. 하지만 노조에 가입한 뒤부터 연차도 제대로 쓸 수 있었고, 매년 반복되던 무급휴업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고발을 통해 체불임금을 되찾기도 했다. 이렇게 서진이엔지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중 관리자를 제외하고 과반의 조합원을 조직해 임단협 교섭을 진행하는 유일한 곳이 됐다. 거꾸로 보면, 원청 현대중공업 사측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의 집단가입과 함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이하 ‘노조’)는 작년 9월 9일 서진이엔지와 인우테크, 현주기업 등 사내하청업체 3곳에 공문을 발송하고 공동교섭단 구성을 요구했다. 그러자 일부 업체는 임금을 인상하고 소급분까지 적용해 지급하는 등 불끄기에 나섰지만, 교섭단 구성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런 가운데 9월 27일에는 현대건설기계 최초로 원‧하청 노동자 공동집회가 열렸다. 결국 11월에 가서 서진이엔지 사측은 단체교섭 상견례에 참석했고, 노조는 단체협약과 임금 등에 관한 요구안을 전달했다. 하지만 교섭은 쉽지 않았고, 결국 해를 넘겼다. 올 2월에 이르러 노조는 ‘회사 제시안에 진전이 없으면 조정신청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울산지방노동위원회는 3차에 걸친 조정회의 끝에 최종결렬을 선언하고 조정중지 결정을 내렸다. 회사는 끝까지 아무런 답도 내지 않았다.


이에 올해 3월 3일 노조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했고, 결과는 무려 ‘100% 찬성’이었다. 그 즉시 노조는 원‧하청 동시 타격투쟁을 선언했다. 코로나로 모이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노조는 머리띠 공동 착용과 원청 노동자와의 연대투쟁 등을 이어갔다.



하청 노동자의 저항에 

위장(기획)폐업으로 답하다


그렇게 싸움이 계속되던 와중인 지난 7월 24일, 서진이엔지 사측은 기습적으로 폐업 및 해고를 통보했다. 폐업 예정일은 당장 한 달 뒤였다. ‘코로나로 인한 물량 감소’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폐업 통보 2주 전 임금 30%를 체불한 직후였고 명백한 위장(기획)폐업이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2016년부터 물량 감소를 이유로 여러 업체가 폐업했다. 지금도 업체 폐업은 일상이다. 그래도 그 자리에 다른 업체가 들어오거나 이관하는 방법으로 하청 노동자의 최소한의 고용은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원청이 고용을 책임지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다. 하계휴가를 1주일 앞둔 시점에서, 하청업체가 원청과 사전 논의 없이 스스로 폐업을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하청 공동투쟁의 

새로운 서막을 알리다


폐업으로 생존권을 송두리째 빼앗기게 된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은 더위도 마다치 않고 투쟁현장을 지킨다. 공장 안 아침 출근투쟁, 중식 퇴근투쟁 등을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하고 있다. 밤에는 정문 앞 천막농성장에서 순번을 정해 소음과 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싸워왔다. 이번 9월 11일 현대중공업 원청 경비대의 집단 폭행 역시, 노동자들이 중식 선전전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벌어진 일이었다.


고무적인 것은, 이 싸움이 원청 노동자들(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은 물론이고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연대단위 등까지 함께하는 투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시적인 업체 폐업과 임금 체불‧삭감 등으로 고통받는 하청 노동자를 대표해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이 선도적으로 투쟁하고 있음을 다른 하청 노동자들도 알아가고 있다.



우리의 요구


서진이엔지 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의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불법파견 진정도 접수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우리만 정규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현대건설기계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불법파견이라고 주장한다.


하청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바꿔보고자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그 과정에서 폐업을 맞았고, 이제는 기약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멀리는 구미의 아사히글라스와 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자, 가까이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등 곳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 우리가 노동조합으로 뭉쳐 자본(원청)과 싸우는 것은, 이 땅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우리도 인간임을 당당히 선언하는 것이다.



* “현대건설기계”는 원래 현대중공업의 건설장비 사업부였으나, 2017년 현대중공업이 회사를 4개로 나누면서 분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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