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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다 올게”

이 소중한 약속이 

지켜지는 세상을 위하여


김태연┃대표



태어나서 사물을 보기 시작하는 영아들의 눈길을 가장 사로잡는 게 뭘까? 엄마 얼굴? 우리 아이들의 경우로 보면 TV 화면, 그중에서도 광고화면이 아닐까 싶다. 아닌 게 아니라 광고들을 참 잘 만든다. 아마도 소비자의 눈길과 마음을 붙잡기 위해 제작과정에서 엄청난 공력을 들였기 때문이리라.


최근 나의 눈길을 붙잡은 광고가 하나 있다. 현대재벌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어느 금융회사의 광고다. “갔다 올게”를 컨셉으로 잡은 광고다. 아침에 가족들이 일하러 나가면서 “갔다 올게” 인사하고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와 다시 만나 행복을 이어간다. “갔다 올게”, 이 소중한 약속이 지켜지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 광고의 결말이다.


이 기업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설핏 궁금하기는 하다. 같은 현대재벌 가문에 속한 현대제철 같은 기업은 살인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보험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기업광고지만, “갔다 올게”라는 일상의 약속이 지켜지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꼈다. 더구나 매일 아침 “갔다 올게” 인사를 하고 나간 노동자 7명, 1년이면 2,400명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나라에 사는지라 더욱 눈길을 끈 광고였다.


9월 10일 오전 9시 45분, 태안화력발전소 1부두에서 혼자 2톤짜리 스크류(석탄 하역 장비) 5개를 트럭에 실어 반출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떨어진 스크류에 깔려 목숨을 잃는 산재사고가 발생했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으로부터 스크류 반출정비작업을 하청받은 신흥기공에 일일고용된 65세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이 노동자는 아침에 가족들에게 한 약속 “갔다 올게”를 지키지 못하고 응급 닥터헬기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는 지난 2018년 12월, “갔다 올게”하고 출근했던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이 목숨을 잃은 바로 그곳이다. 이미 그전에도 수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죽음의 작업장이다. 김용균이 사망하고 1년여의 투쟁 끝에 정부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재발 방지를 위한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를 정부는 이행하지 않았다. 사건조사는 ‘원청업체 기업주를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둥 검찰과 경찰 사이의 핑퐁게임으로 시간만 끌었다. 그러는 사이 2019년 3월 4일 태안화력에서는 또다시 컨베이어벨트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가 전치 6주의 부상을 입었다. 시간을 끌던 검찰과 경찰은 세간의 이목을 의식해 2020년 8월에야 한국서부발전 대표와 하청업체 대표들을 불구속기소했다. 그러나 이들이 엄중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서부발전에서 이윤을 위해 위험을 하청업체로 떠넘기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그 어떤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금년 7월에도 원청업체인 태안화력은 하청업체 대표들 모아놓고 ‘안전공감토론회’라며 생색내기나 하면서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행사나 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 또다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김용균이 사망하자 대통령까지 나서서 유가족에게 재발 방지를 약속했던 정부는 어떤가? 정부의 태도는 죽음의 현장에서 확인된다. 2020년 4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38명이 사망한 사건이 터졌을 때, 대통령은 국가위기관리센터 긴급대책회의에서 “우리 정부 들어 화재안전대책을 강화했는데, 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위험의 외주화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충분히 제기돼 있었다. 구의역 김 군의 죽음에서 김용균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죽음을 방지할 근본적 대책은 충분히 나왔다. 대통령이 궁금해하는 안전대책이 현장에서 작동되지 않는 근본적 이유가 바로 위험의 외주화 구조이고 원청업체 기업주가 책임지지 않는 구조 때문이라는 사실을 수차례 제기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듯 살펴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없거니와, 그 뒤에 살펴보았다면 왜 지금까지도 위험의 외주화 방지 대책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국회를 믿을 수 없어서 노동자‧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민동의청원운동을 하고 있는데도 중대재해기업 처벌을 외면하고 있는 정부여당에 대해 분노가 치솟는다.


“갔다 올게” 광고는 상업적 목적을 모르지 않지만 사람들에게 공감을 준다. 노동자‧시민의 일상적 생명‧안전이 너무나도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김용균의 죽음이 그랬다. 공감을 넘어 공동의 요구도 있다. 자본주의 이윤논리 앞에서 희생되는 노동자‧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제도적으로 강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그 시작이다. 9월 9일까지 6만 명이 서명했다. 이 글을 실은 <변혁정치>가 독자들의 손에 전해질 때에는 이미 10만을 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단계 운동으로 들어가자.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기업살인을 잡기 위한 대중운동의 파고를 높이자. 광고에서 “갔다 올게” 인사하고 나가는 사람 중에는 어린이도 있다. 돌아오지 못하는 어린이가 없도록 하기 위해 대중운동으로 ‘민식이법’을 만들었다. 이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진짜 김용균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노동자‧시민의 손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