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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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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10.15 20:31

낙태죄 구하기에 나선 

문재인 정권


김태연┃대표



죽은 낙태죄를 살려내려는 

정부 입법개정안


2019년 4월 11일에 한국의 낙태죄는 사실상 사망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 처벌 조항(형법 269조, 270조)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잉침해하는 위헌법률이므로 2020년 12월 31일까지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1953년에 만들어진 낙태죄가 드디어 폐지될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10월 7일 법무부‧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가 형법의 낙태 처벌 조항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내용이 이렇다. 낙태죄를 존속시키되, 임신 14주 이내일 경우 임신 여성의 의사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고, 15~24주의 경우 현행 모자보건법상의 낙태허용 사유 외에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 상담과 24시간 숙려 기간을 거치는 조건으로 낙태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의사의 개인적 신념에 따른 낙태진료거부권도 인정한다. 헌법재판소에 의해 사망선고를 받은 낙태죄가 문재인 정부에 의해 기사회생하고 있는 것이다.



명확한 내용, 석연찮은 과정


헌법재판소 결정 과정에서 단순위헌 의견을 낸 이석태, 이은애, 김기영 재판관은 ‘임신 14주까지는 임신 여성의 판단에 따라 낙태할 수 있다’는 판단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반해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리면서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며 임신 22주를 기준으로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입법예고된 정부안의 내용은 헌법재판소 내에서도 소수의견이었던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안이 만들어진 과정은 석연치가 않다. 지난 8월 21일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는 ‘낙태죄 조항 전면 폐지’를 권고했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의 의견개진 요청에 따라 이뤄진 이 권고는 개무시됐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가 정부안 내용을 조율하는 국무조정실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이 역시 묵살됐다. 정부안 발표 후 민주당 박주민 의원,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간사인 민주당 권인숙 의원 등 여당 내 반발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은 물론이고, 정부여당 내의 의견조차 수렴하지 않은 채 낙태죄를 살려내기 위한 보수적인 입장이 강력하게 관철된 것이다.


‘낙태죄 구하기’의 중심에는 청와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계를 비롯해 낙태죄 유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보수세력의 손을 놓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치가 그 중심에 있다. 최저임금에 대한 태도, 재벌에 대한 태도, 사드 문제에 대한 태도, 전교조에 대한 태도, 그리고 낙태죄에 대한 태도까지, 이 모두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낙태죄 문제에 이르러 문재인 정권은 다시 한번 정치적 한계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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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숫자 프레임의 함정


정부안에 대해 언론은 “임신 14주까지 낙태 허용”이라고 기사 제목을 뽑고 있다. 낙태죄 유지를 주장하는 보수단체들은 ‘국내 낙태의 95%가 임신 12주 차에 이뤄지므로 14주 기준에 살아남을 영아는 없다’라거나, ‘24주 차 낙태는 여성의 몸과 영혼도 파괴시킨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은 낙태죄 유지를 기본으로 하고, 14주, 22주, 24주 등 예외적으로 낙태를 인정하는 임신 기간 논쟁으로 프레임을 굳히려 한다.


그동안 여성계는 임신 기간을 기준으로 낙태죄 여부를 결정하는 데 반대해 왔다. 변혁당을 비롯해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하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역시 같은 입장을 견지해 왔다. 특히 임신 기간은 월경일 기준인지 착상 시기 기준인지에 따라 다르고, 그마저도 개인적 신체조건과 임신당사자의 진술, 초음파상의 크기 등을 참고해 ‘유추’하는 것일 뿐 명확한 기준이 될 수 없다. 즉, 법률이 요구하는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 때문에 낙태죄 처벌조항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다시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국제사회의 흐름은 낙태죄 전면폐지로 나아가고 있다. 먼저 임신 기간을 기준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던 나라들에서 많은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유엔 자유권위원회, 세계산부인과학회 등은 안전한 임신중지에 영향을 미치는 법과 정책적 규제 조치 및 처벌 조항을 전면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낙태죄의 아성을 뚫고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서서 운동을 펼친 결과 67년 만에 낙태죄를 폐지할 기회를 열었다. 그런데 그 기회를 문재인 정권이 보수세력과 손잡고 무산시키려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1년 6개월이 흐르는 사이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다소 주춤해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울긋불긋 단풍 물결이 들 계절과 어울릴지는 모르나 다시 검정 드레스 코드의 물결을 만들자. 그래서 숫자 프레임과는 다른 프레임을 만들자. 낙태죄를 전면폐지하고,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 권한과 범위를 보다 넓히기 위한 사회적 제도마련을 중심축으로 하는 법 개정으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