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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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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칠레 시위 장면 [사진: wikipedia]



핑크 타이드, 

부활하나


민중권력 되찾는 

라틴아메리카 노동계급의 

대중운동


정은희┃기관지위원회



‘핑크 타이드(Pink tide: “분홍색 물결”이라는 뜻으로, 1990년대 말부터 중남미 각국에 연달아 좌파 정부가 수립된 흐름을 가리킴)가 다시 부상하는 것일까?’ 지난해부터 자유주의 매체인 <이코노미스트 The Economist>를 비롯해 여러 언론이 조심스럽게 묻고 있는 질문이다. 최근 라틴아메리카에서 다시 좌파 정부가 속속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에는 이제 차베스가 없고, 브라질의 룰라는 여전히 정치검찰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들이 당초 제창했던 ‘21세기 사회주의’에서 더 나아간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핑크 타이드가 꿈틀대던 20년 전처럼 노동계급의 대중투쟁이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20년 전 신자유주의 정권에 맞서 봉기해 좌파 정권을 세웠듯, 이번에는 2008년 세계 공황의 여파로 잇따라 집권했던 우파에 맞서 다시 한번 좌파에게 민중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칠레에서 태어났고 

칠레에서 죽을 것이다”


칠레에서는 지난달 25일 치러진 개헌 국민투표에서 78% 이상의 압도적 찬성으로 새 헌법을 작성하기로 했다. 투표율은 50.83%로 2012년 칠레에서 선거의무제가 폐지된 이래 가장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이에 따라 내년 4월 남녀 각각 절반씩 구성되는 제헌위원을 선출하며, 2022년에는 국민투표로 새 헌법 승인 여부를 묻는다. ‘현 의회 의원으로 제헌위원의 50%를 구성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유권자 다수는 모두 새로운 제헌위원을 선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칠레 국민투표 결과는 과거 피노체트 군부독재 정권이 이식했던 신자유주의 헌법에 대한 전면적 거부였다. 1973년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위시한 좌파 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집권한 피노체트는 신자유주의의 전도사 ‘시카고 보이즈’(Chicago Boys: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중심지였던 미국 시카고 대학 출신 경제학자들)와 함께 칠레를 신자유주의 실험실로 삼았다. 당시 헌법은 신자유주의를 국가의 근간으로 정했는데, 물과 같은 천연자원 민영화를 헌법에서 규정했으며, 교육‧건강‧주택‧연금 등 공공서비스 핵심 부문을 대체로 또는 완전히 사유화했다. 1990년 피노체트가 사임한 뒤에도 헌법은 일부만 개정됐을 뿐, 핵심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러한 헌법을 바꾸는 국민투표는 지난해 10월부터 계속된 거리 시위의 압력에 따른 것이다. 이 시위는 산티아고(칠레 수도) 지하철 요금 인상을 계기로 촉발됐지만, 신자유주의로 누적된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며 격렬한 반정부 시위로 발전했다. 시위가 시작된 이래 사망자 33명, 눈 부상자 460명, 부상자 11,500명, 체포자 36,000명 이상이 발생할 정도로 탄압은 참혹했지만, 시위는 잦아들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11월 15일, 칠레 의회는 시위대의 요구에 따라 신헌법 제정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실시에 합의했다. 뿐만 아니라 칠레에선 이번 시위를 계기로 전국에 200여 개의 주민총회(Asambleas Territoriales)가 조직돼 운영 중이다. 내년 11월 열릴 칠레 대선에서는 우파 피녜라 대통령의 유력한 경쟁자로 칠레공산당 소속이자 현재 산티아고 북부의 도시 레콜레타 시장인 다니엘 하웨(Daniel Jadue)가 거론된다.



“이제 우리가 

수백만이다”


볼리비아에선 지난달 18일 실시된 대선 결과, 사회주의운동당(MAS)의 루이스 아르세 후보가 당선했다. 그는 1차 투표에서 55.1%의 득표율을 기록해 과반을 획득하며 결선투표 없이 바로 승리했다. 이는 지난해 치러진 대선에서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얻은 지지보다 약 8% 더 많은 수치였다. 이로써 지난해 모랄레스를 쫓아냈던 볼리비아 우익의 쿠데타는 1년 만에 그들의 신자유주의와 함께 패배했고, 사회주의 세력이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됐다.


이 또한 볼리비아 계급대중운동의 승리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미 지난해 쿠데타가 시작된 10월부터 거리에선 우파뿐 아니라 좌파도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수도 라파스에선 쿠데타에 항의하는 MAS 지지자들이 연료 보관소를 봉쇄하기도 했다. 군은 이를 무력 진압해 최소 9명이 총상으로 숨졌다. 미주 인권위원회는 대치가 격렬했던 볼리비아 사카바와 센카타 지역에서 발생한 폭력 진압으로 양측에서 모두 36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우파에 맞서 볼리비아 민중운동은 특히 광산노조를 중심으로 지난 8월부터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했고, 시위와 행진, 도로 봉쇄를 통해 (쿠데타 이후 집권한 우파인) 아녜스의 퇴진과 새로운 선거를 요구했다. 결국 무기한 총파업이 21일간 지속된 끝에 이번 대선을 치르게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선 지난 2015년 기업가 출신의 우파 정치인 마크리 대통령이 12년간의 페론주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으며 집권하면서 외신들이 ‘핑크 타이드가 사망했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불과 4년 만에 페론주의자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가 14%p 차로 승리했다. 이에 앞서 아르헨티나에선 연금 민영화와 IMF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투쟁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콜롬비아에서도 작년 9월 촉발된 대중시위의 여파로 우파 이반 두케 대통령에 대한 반대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내년 2월 선거를 앞둔 에콰도르도 콜롬비아와 비슷한 상황이다. 브라질에선 15일(1차), 29일(결선)로 예정된 지방선거에서 우파가 패배하고 노동자당 등 좌파가 선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치적 의미


이렇듯 라틴아메리카에서 부상한 노동대중의 투쟁은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우파의 신자유주의는 거부됐으며, 대신 좌파가 사회주의적 전망을 만들어갈 기회를 얻었다. 지난 1998년 베네수엘라 차베스와 2002년 브라질 룰라를 비롯해 볼리비아‧에콰도르 등 중남미 12개국에서 중도좌파 혹은 좌파의 집권이 계속됐다. 이는 1959년 쿠바 혁명과 1999년 헌법에 사회주의 강령을 새긴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 구호를 중심으로 대안블록을 결성해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변혁의 전망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후 아르헨티나‧칠레에서는 선거로, 브라질‧온두라스‧볼리비아‧파라과이에서는 미국이 후원한 쿠데타로 우파가 집권했다. 멕시코에선 중도좌파가 집권했지만 후퇴를 거듭하고 있으며, 지난해 우루과이에선 15년 만에 선거로 우파가 다시 집권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사회주의 세력이 민중의 힘으로 재집권한 것은 라틴아메리카 대륙 차원의 사회주의 운동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둘째, 미국과 우파는 이제 자신의 의도를 쉽게 관철할 수 없게 됐다.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힘이 쿠데타를 정치적으로 되돌릴 만큼 강화된 것이다. 볼리비아뿐 아니라 최근엔 페루에서도 의회 쿠데타가 연출됐으나, 이 또한 민중의 저항에 부닥쳤다. 베네수엘라에서도 미국의 정치‧경제‧군사적 개입이 계속됐지만, 그것이 우파에 대한 지지로 귀결되진 않고 있다.


셋째, 라틴아메리카 좌파는 사회주의 전망을 실현할 계급적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앞서 각국의 핑크 타이드 정권은 지역별 차이는 있었지만 대개 핵심 산업(자원)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직접민주주의, 노동대중의 복지를 확대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현지 자본가계급과의 타협이나 해외 자본에 대한 의존이 계속됐다. 결국 지난 2008년 세계대공황의 여파로 경제가 악화하고 우파가 이를 기회로 거리와 의회에서 공세를 펴자 연이어 정권을 빼앗겼다. 따라서 라틴아메리카 경제 체제를 노동계급이 통제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변혁 전략을 수립하는 게 모든 민중과 사회주의 세력의 생존에 관건적인 문제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사회주의‧좌파 세력은 어느 때보다 어려운 조건에 처했다. 세계 경제위기는 물론이고 코로나로 지역 경제도 황폐해졌고, 최근 볼리비아에서 대선 뒤 좌파를 향한 테러와 폭력이 늘어난 것처럼 극우 세력의 득세도 주요한 도전이다.


지난 11월 10일,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 위치한 베네수엘라 대사관은 ‘임시 대통령’을 자임한 과이도의 사진을 떼고 시몬 볼리바르(남미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의 액자를 걸었다. 이를 보도한 <텔레수르> 영상 속에서는 “비바(Viva: 만세)”라는 외침과 박수 소리가 들렸다. 볼리비아 우익 쿠데타에 맞선 수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얻은 결과 중 하나다. 다시 새로운 사회주의 역사를 시작하는 볼리비아를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



* 애초에 우파가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은 지난해 10월 20일 개표가 84% 진행된 상황에서 개표 방송이 갑자기 중단되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모랄레스는 45.28%의 득표를 기록했고, 상대편 카를로스 메사 후보는 38.16%에 그치고 있었다. 24시간 뒤 개표방송이 재개됐고, 모랄레스가 46.7%를 득표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상대편은 36.7%로 10%p의 격차를 보여, 평소라면 결선 투표 없이 모랄레스가 승리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파는 이를 ‘부정선거’라고 규탄하며 대규모 가두시위를 시작했고, 미국이 주도하는 ‘아메리카 국가 기구 OAS’가 개입해 ‘결선 투표를 실시하라’고 압박했다. 모랄레스는 이를 쿠데타 시도로 보고 거부했지만,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했다. 급기야 경찰조직이 가두시위에 가세하는 한편 OAS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보고서를 내놓고 재차 결선을 권고하자 모랄레스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이번에는 군대가 사퇴를 압박하면서 결국 모랄레스는 사임 후 멕시코로 망명했다. 의회에선 자니네 아녜스 상원 부의장이 권력 공백기를 틈타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뒤 최대한 빨리 대선을 치르겠다고 약속하며 집권했다. 그러나 아녜스 정권은 선거 준비 대신 모랄레스 시절 도입된 조치를 되돌리는 데 열중했고, 정치 탄압을 강행하며 예정된 대선 일정을 계속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