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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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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모두를 위한 돌봄,

‘어린이집에 

더 많은 공공성을!’


오승은┃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부장



어린이집 문제를 들추자고 하면 저마다 곤란한 마음이 들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벌어지는 회계 비리나 부실급식, 아동학대 사건은 잊을 만하면 언론에 보도되고 모두가 분노로 반응한다. 다만 그 분노는 ‘내 아이가 다니는 그곳은 아니길’, ‘우리 동네 저곳은 아니길’ 하는 바람 속에 사그라져왔다. 어린이집 문제의 실체와 구조를 밝혀봤자, 가장 먼저는 천사 같은 아이들을 그런 곳에 보내고 방치한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된다.


게다가 많은 부모에게 ‘어린이집 없는 생활’은 이미 상상불가다. 코로나 확산 이후의 상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코로나 유행이 본격화한 2월 말 이후, 전국 3만 7천여 개 어린이집은 한 번도 문을 닫지 않았다. 영유아를 둔 부모에겐 감염 불안보다 어린이집 운영 중단이 더 큰 위기라고 판단한 정부의 결단이었다. 코로나 유행 즉시 보건복지부는 전국 어린이집에 이용 사유 제한 없는 ‘긴급보육’ 실시를 명령했고, 실제 긴급보육 이용률은 90%를 넘나들었다.


코로나 와중에도 어린이집 운영을 중단시키지 않은 정부와 등원을 중단하지 않은 부모들의 사정은 무엇일까.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현재 어린이집 이용률을 보면 영아가 81%, (유치원 입학이 시작되는) 유아는 43%로 총 136만 명이다. 어린이집 문이 열려 있어야 일상이 가능한 보호자가 최소 수십만 명은 된단 얘기다.



어린이집이 

‘잘 관리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어린이집들이 현행 제도로도 잘 운영되고 또 관리되고 있다’고 부모들을 꾸준히 안심시켜야 한다.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장면이 2019년 4월 연출됐다. ‘사립유치원 비리’ 파동으로 사립유치원의 회계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교육부와 이를 막으려는 유치원 원장단체가 대립하던 즈음, 보건복지부는 부랴부랴 어린이집이 유치원과 달리 회계가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발표하며 선을 그었다. 신속히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극히 일부 어린이집에서 경미한 회계 실수만이 확인됐다는 게 근거였다. 물론, 매년 지도점검이 얼마나 허투루 이뤄지는지를 잘 아는 대다수의 보육교사는 그 결과를 믿지 않았지만 말이다.


같은 시기에 이런 일도 일어났다. 어린이집의 가장 큰 수입인 ‘보육료’는 국가 재정으로 지원되고 있지만, ‘보조금’이라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부정하게 사용하더라도 보조금법상 처벌이 어려웠다. 이를 개선하고자 정부가 어린이집의 모든 수입을 ‘보육 외’ 목적에 사용하는 경우 처분‧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제출했는데, 이 개정안에 대해 어린이집 원장단체인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는 보육료가 원장의 ‘사유재산’이며,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관리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입법 미비 상태로 그냥 두자는 의사표현이었다. 이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서 논의도 되지 않았다.



99:1, 

민간이 장악한 보육


한편,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어린이집의 위기와 그 구조를 들추고 말하길 멈추지 않았다. 특히 어린이집 운영의 99%를 민간에 내맡긴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해왔고, 그 대안으로 국공립 어린이집의 확충과 공영화를 요구해왔다. 공공이 단순한 운영비용 지원을 넘어, 직접 어린이집 설립과 운영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다.


어린이집 현황 통계를 보면, 일단 ‘민간 설립’ 비율부터가 지나치다. 국공립(지자체 설립)은 12%에 불과하며, 무려 80%가 개인 설립 시설로 ‘설립자 개인의 사유재산이자 개인사업체’라는 것 또한 특징이다. 한 줌의 국공립 어린이집은 그나마도 무분별하게 민간위탁 되고 있다. 지자체 직영이나 공영이 아닌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전체 국공립의 98%다. 결국 국공립 민간위탁을 포함하면 전체 어린이집의 민간 운영 비율은 99%를 넘어선다.


이렇게 어린이집 사업에 민간을 대거 유입시킨 것은 물론 국가의 결정이었다. 어린이집을 대폭 확충해 보편복지로 영유아 돌봄을 제공하겠다는 방향은 세웠으나 문제는 그 실행 비용이었다. 지금의 압도적인 민간 주도성은 국가가 어린이집을 직접 짓고 운영하지는 않기로 정하고 그에 따라 만든 제도의 자연스러운 작동 결과다. 그 결과의 일환으로 어린이집 원장단체는 중앙보육정책위와 지방보육정책위 등 정책 테이블마다 주요 자리를 보장받고 있다. 국가는 이들을 파트너 삼아 당초의 민간 중심 정책 기조가 옳았음을 입증해야 할 동기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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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과세계]



원장을 먼저 챙긴 

국가


이러한 ‘원죄’ 때문일까, 국가는 제대로 된 통제 역할도 하지 않는다. 어린이집의 가장 큰 수입인 보육료는 원아 수 기준으로 지급되는 일종의 이용료로, 국공립이든 민간 시설이든 모두 나라에서 나오는 돈이다. 국고로만 연간 3조 원 이상 투입된다. 그런데 이 나랏돈을 원장이 어떻게 쓰는지를 통제할 법과 행정은 매우 부실하다. 특히 보육료 지급 방식이 부모의 결제 행위를 통한 간접적인 ‘바우처’ 형태로 돼 있어, 부정 사용 시에도 보조금법상 횡령죄 처벌을 피해갈 수 있게 된 상황은 애초 바우처 제도 도입의 의도마저 의심케 한다.


한편, 지자체 처분은 너무 가볍다. 어린이집 회계는 ‘사회복지시설 재무회계규칙’을 따르고 있어, 사업주가 공식적으로 전출금 명목의 수익을 챙길 수는 없다(원장은 본인이 정한 어린이집 인건비 예산안에 따라 원장 임금을 받아 간다). 회계 비리에 교직원 허위등록, 가짜 영수증, 임금 페이백(노동자에게 임금을 주고는 원장이 다시 돌려받는 것) 등 인건비‧운영비가 마치 정상 지출된 것처럼 장부를 조작하는 수법이 주로 쓰이는 이유다. 이러한 회계 조작이 드물게나마 적발된 경우, 보통 지자체는 유용된 금액을 어린이집 계좌에 다시 돌려 넣으면 문제가 해결된 걸로 본다. 소위 ‘시정명령’이다. 물론 보조교사 인건비 지원처럼 보조금 성격이 뚜렷한 일부 수입 명목에 대해선 적발 시 환수 조치와 시설 운영정지‧폐쇄 처분까지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바꿔 말하면 보조금 성격이 모호한 대부분의 수입에 대해선 지자체가 조사와 처분에 잘 나서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지도점검 자체가 공식적으로 느슨해지고 있기도 하다. 최근 몇 년 새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들은 처벌보다는 ‘컨설팅’과 ‘자체 점검’ 위주로 지도점검 방침을 전환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원장들이 회계지식이 부족한 데다, 보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도점검에 따른 업무 과중을 줄여줘야 한다는 게 이유라고 한다.



더 많은 공공성이 

답이다


이처럼 부실 제도와 부실 행정을 방치하는 국가는 ‘어린이집 공공성의 현실적 기준을 낮추라’고, ‘이런 어린이집이라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느냐’고 은연중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역시 ‘더 많은 공공성’이 답이다. 학교라는 좋은 참고 모델이 있기도 하다. 사실 학교 공공성에 관한 논의에서는 ‘직영’이라는 개념 자체가 잘 쓰이지 않는다. 국가가 학교 시설을 공립으로 짓고 관리하며 교원과 교육공무직의 고용도 직접 책임지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공공성 강화의 기본 토대로 참고하고 요구해야 한다.


한편, 3만 7천 개의 소규모 사업장이 전국에 산재하다 보니 23만 보육교사의 노동실태는 제대로 관리는커녕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고용불안이 심각하다. 대부분의 보육교사는 원장과 2월 말 종료되는 기간제 근로계약을 맺고, 매년 해고 위기를 맞는다. 그 결과 근속이 1년 미만인 현직 보육교사가 지난 8월 기준 39%나 된다. 2월마다 전년도 말 교사 수 대비 약 30%가 무더기로 퇴사하고 있으며, 그렇게 빠져나간 수의 70%가량은 다음 달인 3월에 신규채용으로 즉시 메워지기도 한다. 이 ‘물갈이’ 실태는 노동조합이 ‘지자체 보육교사 임면보고 정보’를 월별로 청구해 확인할 수 있었는데, 해당 답변 자료에서 보건복지부는 원장들의 무더기 해고 관행을 대변이라도 하듯 “통상 영유아 변동 및 신년도 반 구성이 이루어지는 2~3월 해임과 신규채용이 다수 이루어짐”이라고 부연했다. ‘통상적 일’로 치부하기엔 과도한 규모이자 패턴이지만, 그에 대한 고민은 읽히지 않는다.


보육교사 처우에 대한 국가의 무관심은 여러 모습을 띤다. 어린이집에 만연한 부당해고나 임금 페이백 문제를 호소하며 대책을 요구하더라도, 보건복지부나 지자체는 ‘인사와 임금 지급은 사용자인 원장의 고유 권한’이라며 건건이 고용노동부의 판정을 받아 직접 해결하라고 응대하기 일쑤다. 이러한 책임 회피 또한 공공이 어린이집 운영과 고용을 직접 책임질 것을 계속 촉구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는 이런 문제를 안은 채 136만 명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속속들이 알기엔 어려운 문제들이긴 하다. 그럼에도 어린이집 문제에 우리가 더 민감해지고자 한다면, 먼저 어린이집을 ‘부모가 경제활동이나 가사 등에 집중할 시간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맡기는 곳’으로만 여기고 있진 않은지 돌아볼 것을 권한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영유아보육법의 ‘보편보육’이라는 기치는 어린이집 돌봄이 시민의 권리이며 영유아는 가정 양육환경과 무관하게 일정 수준의 돌봄‧급식‧생활지도‧놀이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보여준다.


태어나 처음 누리는 사회서비스이자 사회적 권리. 어린이집이 더 많은 시민의 관심 속에 공공성의 가치와 연대, 정의가 실현되는 공간으로 바로 서길 바란다. 어린이집 현장을 지키는 보육교사들 역시 단순한 ‘가족 돌봄 대행자’가 아니라 국가의 돌봄 역할과 우리 사회 돌봄의 질을 책임지는 공공부문 노동자이자 전문가로 인정되기를 바란다. 이 모든 일에 앞장서고 있는 보육교사들의 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에도 많은 힘 실어주시길 당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