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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세습은 이렇게 조용히?


‘정의선 신시대’에도

재벌 특색 경영세습


이주용┃기관지위원장



지난 10월 14일 정의선이 현대자동차그룹 신임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1달이 지났다. 이로써 정주영-정몽구-정의선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이 공식 선포됐지만, 삼성 이재용의 경영승계와 비교하면 세간의 반응은 대단히 조용하다. ‘정의선은 경영 능력을 입증한 후계자’라는 이미지가 재생산된 것도 한몫했다. 단적으로 현재 청와대 정책실장인 김상조는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재직하던 2017년에 당시 현대차 부회장이었던 정의선을 두고 “정의선의 능력에 대해 시장에서는 의구심이 거의 없다”고 발언하며 치켜세웠다. 게다가 이 정부는 현대차그룹의 경영전략을 ‘수소경제’라는 국가 차원의 시책으로 수용하며 대통령과 정의선의 ‘투샷’을 연출하는 등 회장 취임 전부터 정의선을 총수로 사실상 ‘공식 인증’까지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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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청와대]



하지만 아직 경영권을 온전히 물려받지 못한 정의선이 걷게 될 길은 이재용보다 결코 ‘깨끗’하지 않다.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현대모비스에서 정의선이 보유한 지분은 올해 6월 말 기준 0.32%에 그친다. 아버지 정몽구의 지분율이 7.13%인 것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는 수치다. 그룹의 중추 계열사 현대자동차에서도 정의선이 쥐고 있는 주식은 2.62%에 머물러, 정몽구 지분(5.33%)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그룹 회장’이라는 직함은 승계했지만, 아직 소유 지분까지 세습하지는 못한 상태인 것이다.


이 나라 재벌의 고질적인 딜레마는 거대한 기업집단을 거느리는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대개 미미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세습 과정에서 총수일가의 경영권을 놓지 않으려고 온갖 꼼수나 불법이 난무한다. 가령, 총수일가는 자신들이 상속받은 지분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는 걸 한사코 피하려 하는데, 가뜩이나 적은 지분율이 더 낮아지면 지배권이 흔들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종의 ‘다른 주머니’에서 현금을 만들어 그 돈으로 세금을 내거나, 어떻게든 자신의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설령 회사 공금으로 비용을 충당하더라도) 경영권을 유지하려 한다.


이제 정의선 역시 마찬가지 ‘과제’에 당면했다. 그리고 총수일가의 이 ‘왕위 계승 절차’는, 노동자를 착취하며 축적한 막대한 부를 대규모로 어처구니없게 낭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가 주식을 사둔 이유


올 3월 하순 코로나 대확산과 함께 주식시장이 폭락했을 때, 정의선은 갑자기 현대모비스와 현대자동차 주식을 대거 매입하기 시작했다. 두 회사 모두 주가가 역사적 저점으로 급전직하했던 상황이었다. 이때 정의선은 3월 23일부터 27일까지 5일간 매일 두 회사 주식을 사들였는데, 먼저 현대차의 경우 약 58만 주를 도합 406억 원 정도에 매입했고, 현대모비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약 411억 원을 들여 총 30만 주를 매수했다. 11월 현재 두 회사 주가는 3월 당시의 2배 정도로 튀어 올랐는데, 최근 시가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정의선이 이 거래로 남긴 평가차익은 현대차에서 626억 원이고 현대모비스에서 318억 원으로, 합하면 거의 1천억 원에 달해 ‘투자수익률’이 116%에 이른다.


물론 이 자체도 엄청난 규모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 원이라고 쳐도 무려 3천 8백 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벌 수 있는 돈을, 정의선은 단 5일간의 주식거래로 손에 쥐었다. 그러나 정의선이 이 차익을 남기려고 당시 사들인 주식을 당장 되팔 가능성은 적다. 정의선의 목적은 더 큰 것, 곧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권이다. 그리고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 → 현대차 → 기아차 → 현대모비스’로 순환하는 출자고리로 이뤄져 있다(현대모비스가 현대차 지분 21%를, 현대차는 기아차 지분 34%를 갖고 있으며, 기아차가 다시 현대모비스 지분 17%를 보유). 그 정점에 정몽구가 현대모비스 주식 7%(현대차에서는 5%)를 쥐고 이 거대한 그룹을 장악하고 있다.


눈여겨볼 점은 정의선이 앞서 말한 5일간의 주식 매입으로 현대차 지분을 종전의 1.81%에서 2.02%로 늘리고, 특히 이전까지 전혀 주식을 갖고 있지 않던 현대모비스에서 0.32%까지 지분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 두 회사, 그중에서도 현대모비스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의선에게 올 3월의 파국적 시장은 사실상 염가 세일 수준으로 자신에게 대단히 중요한 두 회사의 지분을 획득한 ‘기회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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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의 극치

: 불타는 돈 잔치


하지만 여전히 정의선의 지분율은 (특히 현대모비스에서) 지배권을 굳히기엔 상당히 작다. 지분율을 높이려면 주식을 더 사들여야 하는데, 조금 전 확인했듯 현대모비스의 경우 주가 저점에서 0.3% 남짓의 지분을 확보하는 데만도 4백억 원이 넘게 들었다. 즉, 정의선이 ‘생짜’로 주식을 매입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의선이 자기 돈은 한 푼도 쓰지 않으면서 지분율을 올리는 방법이 있다. 바로 현대모비스 자체가 자기 회사 주식을 대규모로 사들여 없애버리는 것이다. ‘자사주 매입‧소각’이라 불리는 이 방식을 사용하면 해당 기업의 전체 주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기존 주주의 지분율은 올라가게 된다. 이와 함께 시장에서 대거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주가 역시 부양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대표적인 ‘주주 환원책’으로 활용된다.


실제로 현대모비스는 지난 2019년 약 2천 6백억 원어치의 자사주를 소각했을 뿐만 아니라, 2021년까지 3년간 1조 원을 들여 자기주식을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은 착실히 진행 중인데, 현대모비스는 2019년 9월부터 12월까지 약 3천 2백억 원어치의 자기주식을 매입한 데 이어 올해 9월에도 이사회 의결을 통해 10월부터 12월까지 약 2천 2백억 원 규모 자사주를 추가 매수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발표한 ‘3년의 계획’에 따르면 내년에도 5천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이 이어질 예정이다.


물론 이 1조 원어치 자사주 매입은 정의선이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하기 전에 공표된 계획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경영세습만을 위한 작업이라 단정할 순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를 통해 정의선이 손 하나 까딱 않고 자신의 지분율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게다가 앞으로 진행될 세습작업에 대한 주주들의 우호적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주주 환원책’이라는 미명하에 추가적인 자사주 매입‧소각과 더불어 배당금 지급 등으로 더 많은 돈을 뿌리게 될 것이다(2019년 한해에만 현대모비스가 주주들에게 준 배당금이 4천억 원에 달했다). 정의선 본인 역시 ‘주주’로서 여기에서도 그 혜택을 누림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때 회사가 자사주를 사들이는 비용이 전적으로 해당 기업의 이익금 같은 공금으로 충당된다는 사실이다. 곧, 현대모비스가 2019년부터 3년간 퍼붓는 1조 원 이상의 회삿돈은 오로지 총수일가를 비롯한 주주 지분가치를 높여주는 데 쓰인다. 반면, 현대모비스 국내 공장 12곳 가운데 대부분에서 생산은 주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맡고 있으며(아예 생산업무에 정규직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이렇듯 비정규직 노동자를 부려먹으며 축적한 천문학적 규모의 사내유보금을 총수일가와 주주들을 위해 ‘주식 소각’이라는 이름으로 불태우며 낭비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또 털리나


하지만 이 정도로는 현대모비스 같은 거대 기업에서 0.3% 수준에 불과한 정의선의 지분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없다. 정의선이 경영세습을 확고히 하려면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현대모비스 자체를 집어삼킬 ‘큰 한 방’이 필요한데, 그런 시도가 바로 지난 2018년 내놓았다가 내외의 반발에 밀려 철회했던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합병’ 방안이었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의 물류‧운송 등을 담당하는 계열사로, 2001년 비상장 회사로 최초 설립할 때만 해도 자본금 50억 원의 ‘비교적’ 작은 기업이었다. 그런데 그 지분율은 정의선이 60%, 정몽구가 40%로 이들 부자가 온전히 지배하는 구조였다. 이후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의 일감몰아주기로 급격하게 성장하며 주식시장에도 상장했고, 이로써 최대주주 정의선의 지분가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상장 이후 지분율이 줄었지만, 여전히 정의선은 2020년 6월 말 기준 이 회사 주식 23%를 쥐고 있는 최대주주다.


당초 현대차그룹이 발표했던 계획은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를 정의선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함으로써 정의선이 현대모비스를 접수하게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현대글로비스가 지난 20년간 그룹 차원의 전폭적 지원으로 80배가량 성장해 자산 규모가 8조 원에 이르렀음에도, 현대모비스는 그보다 3배 이상 큰 총자산 30조 원 규모의 거대 기업이라는 점이다. 정의선의 지배권 확보를 위해 현대글로비스에 유리하게 합병비율을 짜면, 현대모비스는 상당한 손해를 보면서 합병‘당하는’ 구조다.


이는 지난 2015년 당시 이재용이 최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이 덩치가 훨씬 큰 삼성물산을 집어삼키는 합병을 강행한 것과 똑같은 양상이다. 두 경우 모두 국민연금이 중간에 끼어 있다는 점에서도 같다. 합병 전 삼성물산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은 이재용의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결정된 합병비율 때문에 큰 손실을 봤다. 그리고 현재 국민연금은 현대모비스 지분 12.2%를 보유한 2대 주주로, 최대주주인 기아차를 제외하면 정몽구보다도 지분율이 높다. 즉, 2015년 이재용의 경영세습에 국민연금이 동원됐다면, 이번에는 정의선의 경영세습을 위한 합병에서 국민연금이 또다시 손실을 볼 위험이 상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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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은 삼성 이재용에 이어 현대차 정의선 경영세습에도 동원될 가능성이 있다. 



합병이 아니더라도


물론 2018년에 한번 철회한 방안을 현대차그룹이 다시 꺼내 들지는 미지수다. 다만 당시 이 합병안에 가장 크게 반발한 세력 중 하나인 금융자본 엘리엇이 올해 초 지분을 매각하고 철수하면서,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게 된 현대차그룹이 이 방안을 골자로 지배구조 개편안을 재차 들고나오리라는 관측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렇게 되면 자본가들의 3대 세습에 전국민 노후자금이 연달아 털리는 꼴이 될 수 있다.


설령 합병을 강행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정의선 경영세습의 다른 유력한 방안 중 하나로 꼽히는 게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해서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눈 뒤, 정의선 등 총수일가가 자신들이 보유한 다른 계열사 지분을 이 지주회사에 현물로 출자함으로써 지주회사 주식을 취득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자신들이 기존에 현대차나 현대글로비스, 기아차 등에서 갖고 있던 주식을 신규 분할된 지주회사 주식과 맞바꾸는 것인데, 이렇게 지배구조 재편과정에서 현물출자로 지주회사 지분을 취득할 경우 세금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해주는 특혜가 내년 말까지 유지된다. 따라서 이 방안을 택한다면 내년 중 현대모비스 분할을 비롯한 본격적인 개편작업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렇게 되면 회사 분할에 직면하는 현대모비스 노동자들이 고용이나 노동조건에 위협을 받을 소지가 생길뿐더러, 정의선 등 총수일가가 지주회사 지분을 최대한 확보하려면 (그와 교환할) 현물출자로 내놓게 될 기존 계열사 지분의 가치를 가능한 한 높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 현대차‧현대글로비스‧기아차 등 해당 계열사들에서 앞서 말한 자사주 매입‧소각이나 배당금 확대가 가속할 수 있다. 가령 현대차는 이미 지난 2019년 한 해 배당금으로 1조 5백억 원을 뿌렸고, 같은 기간 3천 3백억 원의 자사주를 매입했으며, 올 3월까지 추가로 3천억 원의 자기주식을 더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어느 모로 보나 막대한 회사 공금이자 사회적 부가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대거 낭비된다는 점은 매한가지다. ‘정의선 신시대’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재벌 특색 경영세습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그들이 이 돈 잔치 속에서 불태우는 엄청난 자원이 누구에게서 나와 누구를 위해 흩뿌려지는지 바로 보자. 이 세습을 그저 당연하다는 듯 묵인하고 넘어가기엔, 노동자들이 잃게 될 게 너무나 많다.



* <금속노동자> 2017년 10월 16일 자 기사 “‘정규직 제로’ 현대모비스 아산공장, 금속노조 깃발 올려”, <미디어오늘> 2019년 9월 2일 자 기사 “비정규직 파업전야 모비스를 극찬한 대통령”, <충북인뉴스> 2019년 1월 15일 자 기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사내하청 노동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