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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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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12.03 18:31

[국가×변혁×정치]


연재를 시작하며:

국가와 계급 

그리고 노동자 정치


남구현┃경기


* ‘모든 혁명의 근본 문제는 국가권력의 문제’라고 했던가.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권력을 만들겠다고 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자본주의 국가/권력은 왜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사회주의 대안 권력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이번 호를 시작으로 월 1회 연재하는 “국가×변혁×정치” 꼭지에서는 현실 정치의 이슈를 맑스주의적으로 바라보고, 자본주의 국가/권력이 뒤집어쓴 각종 허상을 벗겨내면서 새로운 권력, 사회주의 정치의 원리와 상을 짚어보고자 한다.



자본주의 국가 혹은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시대를 구분할 정도로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조건과 일자리, 사회 양극화 등 고전적인 쟁점을 둘러싸고 정치세력 사이에 쟁투가 벌어지고 있다.


가령, 이번 미국 대선 과정에서는 불현듯 ‘사회주의 논쟁’이 제기되기도 했고(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두고 ‘사회주의자’ 논란이 인 것은 물론이고, 트럼프가 바이든을 가리켜 ‘미국을 사회주의로 만들 것’이라 비난하기도 했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서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체제(system)가 문제라고 외쳤다. 코로나 바이러스, 인종, 성, 불법 이민자 등의 쟁점을 둘러싸고 트럼프와 바이든 두 후보를 중심으로 미국 사회가 양분되는 가운데, 결국 ‘러스트 벨트’(‘녹슨 지대’라는 뜻으로, 쇠락한 공업지역을 가리킴)로 알려진 북동부 3개 주에서 바이든이 우세를 점하면서 결정적으로 승리를 끌어냈다. 지난 선거에서 트럼프 당선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몰락한 전통 공업지역의 노동계급 문제가 다시 핵심 쟁점으로 부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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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경찰 폭력과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사진은 2020년 6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벌어진 시위. [사진: wikipedia]



한국의 현재 정치 지형도 국제적 상황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한편에서는 바이러스에 대한 대처, 이른바 ‘K-방역’이 논의를 주도하는 가운데, 일자리 문제와 부동산 투기, 불법 증여 등 오래된 문제들이 다시금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선거 때마다 중요하게 등장하던 ‘민생’이나 이 정권이 내걸었던 ‘노동 존중’ 같은 슬로건은 사라졌고,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제도 정치권은 노동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촛불 정부’라는 이름과 달리 모든 개혁은 ‘검찰 개혁’으로 쭈그러들었고, 이마저 선거를 대비한 정쟁의 대상이 됐다. 물론, 사정이 이렇게까지 되기에는 노동자 정치 세력화가 실패한 것도 한 몫 했다.



지구적, 

그러나 국가적이고 계급적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래 세계 각지 모든 인간의 삶이 바이러스에 의해 제한됐다. ‘만물의 영장’이라 자랑했던 인간은 마스크 뒤에 숨어 가장 원초적 미물인 바이러스를 피해야하는 존재가 됐다. 검역, 방역, 백신 개발은 다른 모든 사회적 쟁점을 ‘부차적인 것’으로 삼켜 버렸다.


코로나는 일단 질병 확산의 지구적 성격을 드러냈다. 이 바이러스는 모든 나라에서 예외 없이 확산했다. 우리는 이미 20세기 말과 21세기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지구적인 자본주의의 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무제한 양적완화는 세계 각국의 재정위기를 불러 일으켰으며, 양극화의 심화는 정치위기로 번졌다. 또한, 기후위기 역시 각종 기상 이변과 자연재해, 대규모 산불 등 지구적인 여파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에볼라에서 메르스-사스-코로나로 이어지는 각종 바이러스의 창궐도 점차 지구적으로 그 확산 범위가 커지고 있다.


또한 질병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생태계 파괴는 지구를 뒤덮은 생산력 지상주의가 문제의 출발점임을 보여 줬다. 지금까지 확인된바 바이러스 확산의 원인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기존 생태계의 순환질서가 무너짐에 따라 기존에 접하지 못했던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윤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여 생산력 증대 자체가 생존을 위한 최대의 관건인 자본주의가 가장 큰 주범이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사회주의 진영 역시 생산력주의에 포획되어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는 데 뒤지지 않았으며,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도 중국에서 대규모로 발현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바이러스는 지구적으로 확산했지만, 이에 대한 대처는 ‘민족 국가’ 단위로 진행됐다. 검역과 방역 정책은 ‘국가 주권’의 원칙에 따랐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부분적인 폐쇄와 해제의 조절을 반복했으나, ‘완전한 국경 봉쇄’에서 ‘집단 면역에 의지’하는 방식까지 다양한 대처가 나타났다. 나라마다 통치집단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달라졌고, WHO(세계보건기구) 같은 국제기구의 권고는 간단히 무시되기도 했다. 요컨대, 질병의 지구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 대응에 있어서는 각 나라의 국내 정치적 변수가 우선했다는 것이다.


한편,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비정규‧불안정‧하층 노동자나 노인, 시설 생활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피해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보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피해는 사회적 특수성을 매개로 특정 집단이 주로 받는다. 바이러스에 대한 태도는 정치에 영향을 주었고, 극우 정치의 파탄을 몰고 왔다. 한국에서 태극기 부대의 몰락, 최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패배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다시, 

국가와 계급 문제를 

꺼내는 이유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질병이 야기한 사태는 이처럼 지구적이자 일국적이고, 계급적이다. 또한 코로나 확산이 조성한 새로운 정치적 국면에서 우리는 질병에 대한 방역이라는 문제가 그 이전부터 이어진 노동, 성, 인종, 이민 문제 등의 쟁점과 엉켜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자본주의 국가와 계급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 고전적인 논의들을 새로이 등장하는 쟁점과 변화된 상황에 비춰 검토해보고자 한다.


국가에 대한 고전적인 맑스주의의 입장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부르주아 국가는 자본가들의 위원회’라고 했던 맑스의 유명한 구절은 당대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당연한 주장이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참정권조차 없어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제약됐고, 애초에 제도적으로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해만이 배타적으로 관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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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주아 국가는 자본가들의 위원회'라고 했던 <공산주의 선언>의 초판 표지. [사진: wikipedia]



그 이후 노동자의 보통선거권 쟁취를 위시해 여러 역사적 변화가 있었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로 발전했고,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모순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사이의 모순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한편,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들은 복지국가로 발전하면서 계급적 성격을 은폐하고 마치 ‘전 국민의 복지를 책임지는 국가’라는 외형을 취했다. 하지만 1970년대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한 한편 2000년대 초반 이래 지구적 자본주의 위기를 거치면서 사회‧정치 양극화가 심화했고, 국가와 자본, 노동 사이의 관계는 새로이 설정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이런 변화들을 염두에 두면서, 앞으로 이 꼭지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대안권력에 대해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다시금 생각해 보고자 한다.


○ 자본주의 정치구조와 국가에 관한 이데올로기

- 왜 기업의 이익은 ‘국익’이 되고, 노동자의 이익은 ‘이기주의’가 되는가?

- 국가는 중립적인가? 의회 정치의 의미와 한계는 무엇인가?

- 이른바 ‘삼권분립’의 허구성에 대해. ‘검찰 개혁’하면 뭔가 달라질까?


○ 사회주의 정치는 무엇일까

- ‘계급’은 과연 낡은 틀인가?

- ‘사회주의 정치는 독재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 대안 권력의 역사적 맹아들


이 주제들은 이미 변혁당 강령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토론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이견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채 충분히 구체화하지 않은 내용도 있었다. 예컨대 제도‧선거 정치를 집회나 총파업 등 운동의 정치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전술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부족했고, 이런 한계는 그 이후의 논의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또한, 현실사회주의에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해 주로 용어 문제를 중심으로 논란이 됐지만, 내용적으로는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 전략에 관한 이견이 노출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논쟁적 주제들은 세계적으로도 아직 온전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질곡으로 남아 있다.



국가론, 

실천적 힘으로 나아가기 위해


글머리에 언급했듯,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고 이를 넘어설 근본적인 대안 권력을 모색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문제 그 자체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을 위시한 몇몇 나라에서는 사회주의 또는 급진 좌파 정치의 요구가 커지고 있으나, 아직 대중적으로 신뢰받는 세력으로까지는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촛불 정부를 자칭했던 현 정부가 개혁의 바람을 타고 집권한 후 거대 여당으로 성장했으나, 노동자민중의 삶과 관련해서 후퇴를 거듭했다. 촛불항쟁 과정에서 초토화됐던 극우 보수세력은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에는 무엇보다도 노동자 정치, 그리고 좌파 내부의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정치나 진보 정치를 자임하며 제도권에 진출했던 집단들이 민주당 2중대(또는 위성정당으로라도 들어가는 게 소원이었으되 배척된 그룹)로 전락했고,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은 투쟁이건 교섭이건 ‘눈앞의 이해관계만 따지는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적폐세력’으로 몰려 수모를 당하는 수준으로 위신이 추락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순은 해결되지 않은 채 변화된 지형에서 새로이 심화되고 있고, 새로운 실천이 요구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 사회주의 대안 권력 등에 대한 논의는 다분히 이론적인 것으로 보이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속의 모순을 지양하는 정치적인 실천을 가능케 함으로써 비로소 실질적인 힘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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