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변혁정치

> 변혁정치
11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12.18 17:52

새벽별 보며 일하는 세상

새마을운동의 회귀?


강후┃서울



얼마 전 골판지 회사들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 코로나 여파로 오프라인 쇼핑이 줄어든 대신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포장재인 골판지 수요가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로켓배송’을 넘어 ‘샛별배송’도 흔해졌다. 가끔 야간작업을 하다가 새벽 두세 시쯤 담배를 태우러 건물 밖으로 나오면, 모두가 잠든 그 시간에도 바쁘게 돌아다니는 택배차량을 볼 수 있다. 대개 인근 가정집에 신선식품을 배송하는 경우가 많다. 이 분야에서 업계를 선도하던 유명 업체가 급부상한 이래, 이제는 대형마트도 새벽배송에 뛰어들었다.


한밤중에도 쉬지 못하고 분주하게 이 건물 저 건물을 이동하는 노동자들을 볼 때면, 문득 ‘정말 이게 꼭 필요한 일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13년 전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럽에 한번 가본 적이 있다. 해가 진 뒤 숙소에 들어와 친구들과 맥주를 까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술도 안주도 떨어져서 먹을 것을 사러 다시 밖으로 나왔다. 꽤나 번화한 동네였고 관광객도 많아서, 한밤중이긴 해도 24시 편의점이야 조금만 나가면 근처에 있겠거니 생각했다. 웬걸, 거의 한 시간을 돌아다녀도 작은 펍 같은 곳을 제외하면 그 인근에 문을 연 가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한참을 걸어서 가까스로 주유소 하나를 발견했고, 거기서 먹을 거나 좀 골라서 돌아왔다. 지치고 짜증이 났다. 우리에게 야간 편의점은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야간에는 문을 닫는 게 당연한 것’이라는 걸.


익히 알려졌듯 야간노동은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특히 고용불안정이 심하고 노동자성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택배노동자들은 투잡을 뛰는 경우가 많다. 야간노동에 장시간노동, 거기에 ‘자영업자’로 분류돼 4대 보험 적용이나 안정적인 최소한의 임금 보장도 없이 고스란히 부담과 스트레스를 짊어져야 하는 택배노동자들이 곳곳에서 스러지는 게 어찌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들의 목숨과 건강을 담보로 잡고 ‘신산업’이라는 간판을 달아 밤길을 달리게 하는 이 시스템이 진정 정당하고 필요한 것일까.


물론 누군가는 도저히 장을 보거나 미리 주문할 새도 없이 바빠서 새벽배송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든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3~4시간 정도로 대폭 줄여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여유롭게 준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보장한다면 어떨까? 택배노동자 고용을 대폭 확대함으로써 각자의 물량 부담은 줄이는 한편 넉넉한 보수를 지급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함으로써, 택배산업에 만연한 과로사도 막고 소비자 역시 지금처럼 빠르게 택배를 받아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사회주의에서는 의료 같은 불가피한 영역을 제외하면 여러 야간노동을 근절할 것이고 새벽배송 역시 예외가 되지는 않겠지만, 얼마든지 그 빈자리를 해결할 수 있는 체제적 대안을 모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사족을 달자면, 현재 새벽배송업체의 운영이 가능한 것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철저히 사전 계획에 입각해 소비자들이 주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물품을 미리 준비해놓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일에 주문하더라도 곧바로 새벽에 해당 상품을 배송해주는 것이다. 사실상 계획적 배급은 유통산업 차원에서 자본의 이익을 위해 현실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자본의 이익만 걷어내고 계획경제를 실현하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