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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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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청년들은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인가?


나현필┃국제민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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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7월, 태국 수도 방콕에서 벌어진 청년들의 대규모 시위. [사진: Wikipedia(Supanut Arunoprayote)]



2020년 2월, 태국 헌법재판소가 청년들의 지지를 받던 “미래전진당”(2018년 창당한 태국의 원내 진보정당)을 해산하면서 태국 청년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가 촉발됐다. 이 흐름은 9월 19일 방콕에서 10만 명의 시위대가 모이면서 절정에 달했다. 그 후 10월 14일부터는 연일 수만 명이 운집하는 시위가 계속됐고 태국 정부가 물대포를 동원해 진압에 나서기도 했지만, 의회에서는 시위대의 요구를 논의하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수만 명의 태국 청년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에 나서자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 운동에 주목했다. 한국에서도 청년들과 시민사회, 정당들까지 나서서 태국의 민주주의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한편, 태국 시위대가 K-POP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시위를 하고 있다는 것과 태국 당국의 진압에 동원된 물대포를 한국 기업이 수출했다는 사실도 한국 언론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렇듯 태국 시위 자체는 여러 국내외 보도를 통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게 됐다. 이 글에서는 그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 태국 시위에서 왜 정당이나 노동조합 같은 대중조직이 아니라 ‘청년’들이 주역으로 나서고 있는지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레드셔츠 VS 옐로셔츠


태국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0~70년대에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계속된 공산혁명과 전쟁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미국은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반도에서의 연속적인 공산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태국에 막대한 군사‧경제적 지원을 퍼부었고, 그 결과 태국 군부는 왕실의 묵인하에 수시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1932년에 입헌군주제로 바뀌었지만, 군부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공산주의로 매도하고 탄압을 지속했다.


이렇듯 강경한 군부독재에 저항하던 세력들은 결국 산으로 들어가 무장혁명을 선언했고, 정부의 유화책과 탄압에 밀려 태국의 공산주의 운동은 1980년대 말에 그 영향력을 대부분 상실하게 됐다. 그 공산주의 운동의 공백을 대체한 것은 ‘NGO’로 불리는 시민사회였다. 이에 따라 점차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커졌고, 1998년 IMF 사태(한국과 마찬가지로 태국 역시 이때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다) 이후 위기에 몰린 태국 기득권은 헌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군부-왕실-재벌 동맹’이 상징하는 태국의 기득권을 물리치고 등장한 것은 역설적으로 경찰 출신 재벌인 탁신이었다. 2001년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탁신 정권은 태국 북동부 농촌지역에 대한 지원과 포퓰리즘 정책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태국 남서부 지역 무슬림에 대한 탄압과 재벌 출신다운 민주적 절차 무시로 인해, 태국 시민사회세력과 좌파세력은 탁신 정권에 대한 지지를 주저하게 됐다.


결국 탁신 정권의 인기를 우려한 왕실의 묵인 속에 다시 쿠데타가 발생해서 탁신은 축출됐고, 탁신을 지지하는 세력(‘레드셔츠’)과 왕실 및 군부를 지지하는 세력(‘옐로셔츠’)으로 나뉜 태국은 내전 상태에 가까운 분열과 갈등을 겪었다. 쿠데타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탁신의 여동생이 이끄는 탁신 정당이 승리하자 2014년에 군부는 다시 쿠데타를 일으켰고, 아예 군부가 지명하는 인사 전원이 상원을 차지하도록 헌법도 바꿔 버렸다.


이렇듯 ‘레드셔츠’와 ‘옐로셔츠’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기존의 태국 정치를 바라보는 틀이었다. 심지어 태국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도 옐로셔츠와 레드셔츠로 갈린다. 무엇보다 태국은 노동운동이 강하지 않고, 공기업과 국영기업 조합원의 상당수는 중산층에 해당한다.



전면에 나선 태국 청년들


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음에도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전(前) 국왕 라마 9세와는 다르게 가뜩이나 갖은 기행으로 민심을 잃은 라마 10세(해외에서 사치스런 생활을 즐기는 등의 행위로 비판 여론이 높다)가 즉위하면서, 왕실의 권위에 순종하던 기성세대와 달리 청년세대는 기존의 ‘옐로셔츠 VS 레드셔츠’ 구도를 뛰어넘는 급진적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바로 ‘왕실 개혁’이다. 태국의 10대와 20대 청년들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가속하는데도 호화생활을 누리는 왕실과 엘리트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정치가 바로 현재의 헌법과 이를 뒷받침하는 왕실 기득권에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바로 이 청년세대가 기존의 탁신계 정당이나 기득권 정당이 아닌 “미래전진당”에 대거 투표하면서, 미래전진당은 2019년 총선에서 3당으로 부상했다. 태국 헌법재판소가 자신들의 뜻을 무시하고 미래전진당을 해산하는 것을 보면서 수많은 청년이 거리로 나선 것도 자신들이 태국의 미래를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출이다.


태국 청년들의 요구는 간명하다. 현 집권 총리가 사퇴하고, 헌법을 개정하고 왕실을 개혁하라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왕실 개혁이 군주제 폐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태국에서 금기시되던 왕실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투쟁하는 것만으로도 태국의 미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비록 현 정권의 혹독한 탄압으로 시위는 주춤해졌지만, 한번 불붙기 시작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쉽게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년들이 SNS로 시위를 조직하고 자발적으로 모여서 요구하는 이 흐름은 기존의 태국의 정치구도에 충격을 줬다. 비록 청년들의 움직임이 당장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더라도,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청년들의 뜻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힘으로 태국을 변화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