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변혁정치

> 변혁정치

119_40.jpg



계획 vs 시장, 

추상노동과 사용가치

사용가치 생산과 계획경제(2)


홍석만┃참세상연구소


* 이 기사는 <변혁정치> 117호(2020년 11월 15일 자)에 실린 “봉쇄, 교환이 중단된 세계와 사용가치: 사용가치 생산과 계획경제(1)”로부터 이어지는 글이다.



간단한 복습과 질문


노동생산물은 ‘가치’와 ‘사용가치’를 가진다. 여기에서 ‘가치’는 노동가치(그 생산물을 만드는 데 인간노동력이 투입됐다는 점)를 말하며, ‘사용가치’는 유용성(효용)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는 생산물의 사용가치가 무시되고 오직 교환가치(다른 생산물과의 교환비율)로만 등장해 시장가치를 갖는다. 여기서 생산물의 가치, 즉 노동가치는 해당 생산물을 만드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되며, 이는 구체노동(가령, ‘용접’이나 ‘PPT 제작’ 등 실제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 아니라 생산과정에 들어온 ‘추상화된 노동’(구체적인 노동형태를 배제한, 인간노동력의 지출 자체)으로 상호 정규화‧동기화‧동질화된 사회적 노동의 단위당 시간이다.


예컨대 볼펜 하나를 만드는 데 개별적으로 얼마나 많은 비용이나 노력, 시간을 들였든 간에 그 볼펜이 다른 공장에서 만든 볼펜과 비교했을 때 기능이나 사용 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면, 이 볼펜은 여타 일반적인 볼펜의 가치를 가질 뿐이다(즉, 그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갖지 않는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적인 노동, 구체노동은 추상화를 통해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추상노동이 되고 시장에서 교환됨으로써 가치를 실현한다. 가치의 실체인 추상노동은 교환과 경쟁을 전제로 형성된다.


“다양한 구체적인 사적 노동이 동일한 인간노동의 추상으로 환원되는 것은 오직 교환을 통해서만 수행된다. 교환이 서로 다른 노동행위의 생산물을 사실상 서로 동일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 <맑스 엥겔스 전집>(MEGAⅡ) 6, 41쪽


또한, 상품을 생산하는 데 투입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뿐만 아니라 사회가 지불할 수 있을 만큼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노동시간이 가치를 형성하는 노동시간이다(<자본론> 1권 3장). 여기에서도 교환 속에서 가치를 가지는 총 노동시간이 명확해지는데, 즉 사회적 수요에 따라 지불 가능한 총 노동시간은 교환 속에서 정해진다.


지난 호에 이어 다시 ‘추상노동’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노동생산물이 갖는 가치의 실체이면서 교환을 통해 실질화되는 추상노동이야말로 상품이 가치를 갖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의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교환이 없는, 따라서 교환가치가 없는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생산관계에서 노동생산물 가치의 실체인 추상노동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즉, 추상노동 없이 구체노동으로도 가능한 문제인지, 아니면 교환 없이는 추상노동 형성이 불가능한 문제인지에 관한 질문이다. △둘째, 교환가치가 없는 가운데 본래의 의미로 나타나는 사용가치, 곧 사물의 유용성인 ‘효용’은 어떻게 가치화되는가? 달리 표현하면,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의 상품과 마찬가지로 교환가치(상대적 교환비율)로 계산하는 게 올바른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가치의 불구화와 

사용가치의 불량화


영국의 맑스주의 그룹 “아우프헤벤”(Aufheben: ‘지양’이라는 뜻)은 소련 사회의 붕괴와 해체에 대해 ‘가치의 불구화’라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소련 경제가 화폐를 단순히 순환의 수단으로 제한하고 상품가치를 미리 결정함으로써, 화폐는 가치의 독립적 형식으로 기능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소련에서 상품은 그것과 독립된 ‘화폐’라는 외부 형식으로 가치를 표현하지 않았고, 가치는 상품의 사용가치로 표현됐다. 그 결과 가치의 확대는 순전히 양적이고 보편적인 화폐 형식이 아니라, 질적이고 특정한 사용가치의 양적 확대로 표현됐다. 이에 따라 가치의 독립적이고 보편적인 형식으로서의 기능이 실패(불구화)했다는 것이다.


또한, 생산한 상품의 사용가치는 그 상품을 사용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중앙당국의 계획에 의해 독립적으로 처방됐다. 즉, 노동자의 필요(사용가치)는 대부분 국가에 의해 처방됐다. 그 결과 사용가치 형식에서의 양적 축적은 사용가치의 불량 생산으로 이어졌다. 요컨대, 소련에서 국가가 설정한 사용가치 생산 ‘계획’이 오히려 가치를 불구화하고 사용가치를 불량하게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결론대로면 지금의 자본주의 러시아는 소련 경제의 당연한 귀결이다. 애초 소련은 임금노동과 상품생산을 기초로 하던 자본주의 경제체제였는데, 화폐 기능이 축소되고 교환 기제가 없는 가운데 국가가 임의로 설정한 사용가치 생산 계획에 따라 상품생산을 주도해서 문제가 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소련이 자본주의 체제였나’ 여부보다, 소련에서 노동생산물의 가치(계산)가 어떻게 문제가 되고 사용가치 생산이 왜 불량해졌는가에 대한 가치론적 분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119_44_수정.jpg

△ "따라잡고 추월하자"는 제목으로 경제성장을 강조한 1929년 소련 포스터. [사진: Wikipedia]



소련의 실패에 대한 

가치론적 분석


사회주의 경제에서도 노동생산물은 여전히 가치와 사용가치를 갖는다(노동이 이중적이라는 의미). 그러나 자본주의와 같은 시장교환이 없기 때문에, 개별의 구체노동이 자연적으로 추상노동으로 되지는 않는다. 계획에 따른 생산에 의해 노동의 사회적 분업이 더 고도화하고 확대된다고 하더라도, 개별의 구체노동을 모두 추상노동으로 볼 수는 없다. 노동의 사회적 분업 확대는 노동의 사회화를 진척시켜 구체노동을 보다 추상노동으로 근접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아무리 노동이 사회화된다고 하더라도 각 구체노동 사이의 물질적‧사회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구체노동을 모두 추상노동으로 전환시키지는 못한다.


소련에서는 생산에 필요한 물리적 노동량과 그에 연동된 에너지 소비량에 비례해 가치를 매겼다. 계획당국에 의해 생산에 포함된 모든 구체노동의 평균 노동시간이 가치의 평균이 되며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인 가치의 기준이 된다. 노동생산물의 가치는 구체노동시간이며, 교환이 없으므로 구체노동이 가치의 실체로 간주됐다. 이렇게 구체노동을 가치의 실체로 삼으면 서로 다른 노동에 따라 각 노동생산물의 가치가 달라지는데, 그 결과 가치는 보편적 기능을 상실하고 임의적인 것으로 되었다.


구체노동의 평균노동시간(어떤 노동이 땀을 더 많이 흘렸는지)이 생산물의 가치 기준이 되면서 사용가치 불량화가 발생했다. 쉽게 말해, 노동의 질과 종류를 따지지 않고 특정 시간 내에 계획된 물자만 생산하면 되기 때문에, 생산물의 질과 효용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시장경쟁과 교환관계에서 상품의 가치와 교환가치는 추상노동의 가치량(상품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의 (화폐)가격으로의 전형을 통해 생산가격으로 표시된다. 여기서 교환가치를 갖고 시장에서 교환된다는 것 자체가 상품의 사용가치와 무관하게 사용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이며, 그렇기에 사용가치가 무시될 수 있는 것이다(상품의 소비자는 사용가치로 상품을 대면하지만, 생산자는 교환가치로만 바라보며 교환가치로 판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에서는 사용가치가 가치의 기준 없이 국가에 의해 임의로 조정됐으며, 사용가치가 물자의 생산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됐다. 계획은 사회적 효용을 따지기보다 국가의 필요에 의해 주로 중화학공업 우선 정책에 따라 생산재 생산을 중심으로 생산량만 따졌고, 본질적으로 사용가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시됐다. 교환도 없고 추상화된 노동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사용가치의 무시는 사용가치를 불량화로 이끈 동력이 됐다. 그 결과 사용가치의 불량화와 함께 종종 계획은 실패로 귀결했다.



계획 vs 시장,

교환 없는 사용가치의 실현


가치의 왜곡과 사용가치의 불량화는 계획의 실패로 귀결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계획경제 전체의 시스템적 위기를 가져오는 요인이 된다. 맑스경제학자 만델이 지적했듯 계획은 ‘완전한’ 자원배분의 등가물도 ‘과학적’ 자원배분도 아니며, ‘보다 인간적인’ 자원배분은 더더욱 아니다. 계획은 ‘사후적으로 이뤄지는 시장적 자원배분’과 다르다는 점에서 ‘사전적인 직접적 자원배분’이다. 또한 시장이 교환과정에서 가치와 가격체계를 일치시켜 나가는 데 반해, 계획은 서로 다른 체계를 갖는 가치와 사용가치를 일치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즉, 계획은 적절한 자원의 분배를 통해 가장 적합한 사용가치의 생산 계획을 짜는 문제인데, 가치가 계산(평가)될 수 없거나 잘못 평가되면 계획의 왜곡과 실패가 일어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시장은 가격기구를 통해 이를 조절함으로써 한편에서는 엄청난 자원과 노동력의 낭비를 초래한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교환가치를 형성한 상품이 화폐를 매개로 등가교환을 지속하면서 자원의 분배와 생산 및 소비가 이뤄진다. 상품가치의 본질적인 속성은 사용가치에 있지만 시장을 통해 교환가치로 단순화해서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게 상품경제의 본질이라면, 시장과 교환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계획경제에서는 사용가치를 미리 계산해서 생산과 분배를 계획해야 한다. 그러나 계획을 통한 자원의 최적 분배는 현실 사회주의 체제를 끝까지 괴롭혀온 문제다. 계획을 통해 자원의 최적 분배와 사용가치(사회적 효용) 극대화를 이룰 수 있는지, 그게 아니라면 시장 외에 다른 방법은 불가능한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됐다.


이 가운데 ‘시장사회주의’는 계획과 시장 모두 불완전하고 보완적이므로 이 둘을 섞어야 한다고 봤다. 상품에 체화된 에너지와 노동력의 양 같은 ‘자연적 단위’의 계산은 간단하게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 또는 ‘가격신호’가 사회주의에서 경제 계산(가치 계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앙계획당국은 시장을 대신해 계산할 수 있지만, 중앙계획당국이 현재 모든 정보를 계산하기에는 기술 수준이 따라 오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과 계획의 영역을 분리해서 진행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대표적 인물인 오스카 랑게는 ‘시장이 소비재 부문의 가격과 임금을 결정하고, 중앙계획당국이 생산재 가격과 자본투자 및 축적률을 설정’하는 분권적 시장사회주의를 제안했다. 요하자면, 교환을 통해 형성된 추상노동을 가치 기준으로 삼고 가격신호로 소비재의 생산량을 결정하며(여기까지는 시장경제와 동일하다), 생산재는 시장이 아닌 중앙계획당국이 직접 가격조정과 설정을 담당하고, 소비재를 포함한 총생산량과 투자계획은 중앙계획당국이 담당한다. 이 주장은 1920년대 이후 전개된 ‘사회주의 계산논쟁’의 한 축을 담당했는데, 가격신호를 바탕으로 중앙계획이 시장을 대신해 합리적인 가격설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시장사회주의’는 가능한가


이에 대해 ‘사회주의적 경제 계산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경제학자의 대표 주자가 미제스와 하이에크였다(이들은 신자유주의의 비조로 떠받들어진다). 미제스는 화폐 단위로의 가치 계산(즉, 가격)이 가능하려면 소비재와 생산재 모두 교환영역에 포함돼 있어야 하고, 교환의 매개수단으로서 화폐가 완전한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사회주의에서는 국가가 생산수단을 모두 통제하고 교환영역은 소비재에 한정되어 있어, 화폐가 생산재의 가치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시장가격이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는 지표로서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지만,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재에 관한 경쟁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시장가격이 성립하지 않으며, 따라서 합리적인 자원배분을 위한 계산 수단이나 선택의 지표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제스는 객관적 교환가치, 즉 화폐 가격이 도출되는 교환영역에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확립되지 않고서는 경제 계산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하이에크는 사회주의에서 모든 경제적 문제가 중앙계획당국이 가격을 통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았다. 경제 문제는 기술적 문제처럼 계획자가 최적의 답을 구하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오직 사적 소유에 기초한 당사자들의 시장경쟁을 통해서만 만족스럽게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경제에서는 ‘암묵적 지식’이 가장 중요한데, 이런 지식이 단일한 경제주체에게 집중될 수 없고 경쟁적 과정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격이 기업가에게 미래의 예측과 발견의 촉진에 있어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다면, 중앙계획당국의 가격 결정은 기술진보를 방해하고 더 나아가 미래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며, 효율적 경제 계산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미제스와 하이에크가 예측한 대로, 시장을 통한 경쟁과 교환이 부재한 속에서 가격이 가치 계산의 효율적 지표가 될 수는 없다. 교환을 통한 추상노동을 가치 기준으로 삼았으면서도 화폐의 기능을 제한함에 따라 가격이 가치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소비재의 경우 교환의 본질인 이윤경쟁을 제거한 속에서는 가격이 정확한 생산의 지표를 알려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사회주의 실험은 역사적으로도 실패했다. 1950년 이후 유고슬라비아의 자주관리모델, 헝가리의 신경제체제, 1978년 이후 중국의 농업 탈(脫)집단화와 그 이후 전개된 일련의 개혁조치,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실시된 폴란드의 개혁조치, 1985년 이후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소비에트의 개혁조치 등 시장과 경쟁 요소의 부분적 도입으로도 사회주의 경제의 문제들은 해소되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악화했다. 물론 이런 시장화 조치가 충분한 수준까지 시장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 때문에 시장화 조치가 실패했다기보다는 이런 시장화 조치 이후 곧바로 완전한 시장경제로 이행했다는 점에서 부분적 시장화의 과도적 양상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소련 경제 연구자 알렉 노브는 자신의 책 <실현 가능한 사회주의의 미래>에서 ‘생산수단은 주로 공적 소유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의 대부분은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류는 시장을 초월하는 효율적인 조절 양식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현실적으로 시장의 가격신호만이 기업이 어디에 투자하고 무엇을 생산할지, 고용해야 할 노동력이 얼마인지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다만 생산수단의 소유 측면에서 경제주체를 국유기업과 사회화된 기업, 협동조합, 영리 추구 소규모 사기업 등으로 구성하고, 시장 실패를 대체하는 수준에서 정부 정책이 결합한다.


노브의 이런 구상과 가장 가까운 형태가 현재의 중국경제다. 중국 정부가 명시적으로 내걸고 있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시장이 경제를 조정하면서 생산단위를 국유기업부터 사기업까지 다양화하면서도 국유기업 혹은 집체기업의 중심성을 유지한다. 여기에서 국가는 거시경제를 중심으로 경제에 개입한다. 그러나 이런 중국의 시스템이 사회주의라기보다는 국가자본주의라는 분석이 더 지배적이다.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보다 사용가치의 실현이 ‘교환’을 매개로 하는지 ‘계획’으로 가능한지의 문제가 궁극적으로 경제체제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119_45.jpg

[사진: pixabay]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첫째, 사회주의 경제에서 가치의 실체인 추상노동의 형성 조건과 기준은 (시장교환경제에서의 추상노동과) 다르다. 둘째, 교환가치가 없는 상황에서 가치와 사용가치가 직접 대면해야 한다. 셋째, 가치와 사용가치 체계는 단일하지 않고 이중적이라 단순히 일치하지 않는다. 넷째, 계획은 가치와 사용가치를 일치시키는 것인데 교환(가치)을 매개하지 않고 가능한지, 어떻게 가능한지가 쟁점이다. 특히 계획과 관련해서는 이제까지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모두 실패하면서 전면적 시장화로 회귀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