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변혁정치

> 변혁정치
11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12.18 19:12

HIV 감염인 범죄화하는 

악법을 폐지하라

처벌과 통제는 질병을 예방할 수 없다

HIV 감염인 인권 증진이 예방의 지름길


소성욱┃한국 청소년‧청년 감염인 커뮤니티 “알”



한국에는 HIV/AIDS를 예방하고 HIV 감염인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이 존재한다. 바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이하 ‘예방법’)이다. 이 법은 “제1조(목적)”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예방‧관리와 그 감염인의 보호‧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건강의 보호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예방법>에는 스스로 천명한 목적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조항도 동시에 들어 있다. 바로 “제19조(전파매개행위의 금지)”다. 게다가 이 19조는 아래에서 보듯 ‘위반 시 징역에 처한다’는 벌칙조항까지 가지고 있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19조(전파매개행위의 금지)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5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1. (생략)

2. 제19조를 위반하여 전파매개행위를 한 사람


이 조항을 언뜻 보면 ‘그냥 HIV 전파를 하면 안 된다는 것 아니야?’ 하며 ‘합리적’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조항은 법정에서 ‘HIV 감염인의 콘돔 없는 성행위’만을 처벌하는 데 사용된다. 여기서 다시, ‘HIV 감염인이라면 HIV를 예방하기 위해 당연히 콘돔을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이 생길 수도 있다.


현재 전 세계 100개 국가 이상에서 1,000곳 넘는 단체가 “U=U” 캠페인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U=U”는 “Undetectable=Untransmittable”, 곧 “미검출=전파 불가”를 뜻한다. 이 캠페인은 HIV 감염인이 꾸준히 치료받으면 6개월 이내에 몸속의 HIV 바이러스 수치가 미검출 수준이 되고, 그 상태에서는 타인에게 HIV를 전파할 확률이 0%라는 과학적 사실을 알리는 사업이다. 이는 HIV 감염인이 차별 없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게 곧 효과적인 HIV 예방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토록 의‧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할 동안, 한국의 HIV/AIDS 예방법은 여전히 80년대의 인식 수준에 멈춰 있었다. 그렇기에 앞에서 언급한 <예방법>처럼, 감염인에 대한 ‘처벌’을 통해 HIV를 ‘예방’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HIV 감염인이 성행위를 할 때 콘돔을 사용했는지 사용하지 않았는지’를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이렇듯 <예방법> 제19조는 국가에 의한 심각한 사생활 침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방법>의 독소조항과도 같은 이 “전파매개행위 금지” 조항을 폐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119_11.jpg

[사진: 한국 청소년·청년 감염인 커뮤니티 "알" 페이스북]



<예방법> 19조 때문에 한국의 HIV 감염인은 감염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리고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하더라도, 심지어 성행위 결과 상대방이 HIV에 감염되지 않아도, 단순히 콘돔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것이 어떻게 HIV 예방에 도움이 되겠는가. 그저 HIV 감염인을 죄인으로 만들 뿐이다.


HIV 감염인의 성행위는 콘돔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전파매개행위’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HIV 전파는 자신의 감염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서 치료를 받지 못한 경우에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조기 검진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HIV/AIDS에 대한 낙인과 혐오의 문제를 해소한다면 곧 조기 검진율을 높일 수 있고, 이는 효과적인 HIV 예방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우리는 ‘HIV 감염인의 인권 증진이 HIV 예방의 지름길’이라고 외친다. 치료를 꾸준히 잘 받고 있는 HIV 감염인을 통해서는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없기에, 국가가 진정 HIV 예방의 의지를 갖고 있다면 <예방법> 19조를 폐지하고 모든 HIV 감염인이 안정적으로 차별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지난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 HIV 감염인 인권의 날이었다. <한국 청소년‧청년 감염인 커뮤니티 “알”>을 비롯한 HIV/AIDS 인권단체들은 이날을 전후로 “U=U”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예방법> 19조를 폐지하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여러 언론은 물론이고 이 사회 자체도 그나마 12월 1일이 되어야 잠시 우리의 목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HIV 감염인들은 365일 매일매일을 에이즈의 날로 살아간다.


“감염인 처벌은 예방이 될 수 없다, <예방법> 19조를 폐지하라”

“HIV 감염인 인권 증진이 HIV 예방의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