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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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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당한 꿈, 노동자 권력


<소개하는 영화> 

파트리시오 구즈만, <칠레전투> 3부작, 1975~1979.


박민하┃기관지위원회



칠레사회당의 살바도르 아옌데는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동맹인 “인민연합”의 후보로 출마해 36.2%의 득표로 승리하며 집권했다(과반 득표자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 칠레 헌법에 따라 의회가 최다 득표자인 아옌데를 대통령으로 최종 승인). 아옌데 정부는 ‘사회주의 정부’를 표방하며 여러 개혁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1973년 미국이 지원한 군부 쿠데타가 벌어져 아옌데 본인도 목숨을 잃고 반동 세력에 의한 대규모 살육전이 벌어진 뒤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역사는 참혹한 비극으로 흘러갔다.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 <칠레전투> 3부작은 아옌데 정부가 쿠데타로 무너지기 7개월 전인 1973년 2월의 칠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이긴 하지만, 따로 배우가 출연하는 게 아니라 실제 1973년 당시 칠레 민중의 생활이나 인터뷰 등을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또한, 아옌데 개인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보다는 변화의 시기에 노동자민중이 어떤 방식으로 생활하며 투쟁하고 성장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3부작 내내 영화의 흐름은 대체로 비슷하다. 아옌데 정부가 개혁 정책을 내놓으면 우익세력인 야당이 반대하고, 그에 맞서 노동자민중은 아옌데 정부를 지지하며 싸운다. <칠레전투> 1부 “부르주아지의 봉기”(1975)는 아옌데 집권 이후 치러진 첫 총선 국면에서 인민들의 인터뷰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야당은 대통령 탄핵이 가능한 의석수를 확보하려 하지만, 총선 결과 인민연합의 지지율이 더 상승하면서 목표 달성에 실패한다. 이후 야당을 비롯한 우익세력은 사회 혼란을 조장해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전술로 전환한다. 학생들을 동원해 시위를 일으키고, 당시 ‘귀족 노동자’라 불리던 구리광산 노동자들의 파업을 유도해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다. 운송업 고용주단체는 전국의 화물 운송을 거부하며 악명 높은 ‘자본 파업’에 나선다. 인민연합 정부를 지지하던 노동자민중은 이렇듯 우익이 유도한 사회 혼란에 맞서 구리광산에서 생산을 계속하는 등 경제위기를 막으려 한다.


<칠레전투> 2부 “쿠데타와 아옌데 대통령의 최후”(1977) 첫 장면은 1973년 6월의 1차 쿠데타다. 이는 3개월 뒤 정권을 전복시킨 2차 쿠데타의 예행연습 격으로, 군부 전체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 실패한다. 하지만 우익이 장악한 의회와 사법부는 쿠데타에 침묵하며 사실상 동조한다. 아옌데 정부는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더욱 광범한 노동자들의 지지를 결집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도 성향의 기독민주당과 연합하는 길을 택한다. 정부의 국유화 조치가 지지부진하자 노동자들은 공장과 광산, 농업센터 등을 스스로 장악하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자본 파업’과 야당의 반대 공세로 정부는 사실상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고, 노동자민중은 필수품을 직접 공급하기 시작한다. 이후 야당은 ‘정부가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며 육군참모총장을 사임시키고 그 자리에 피노체트를 앉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그 피노체트 주도하에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2부는 막을 내린다.


<칠레전투> 3부 “민중의 힘”은 노동계급이 격동의 시기에 어떻게 성장하고 투쟁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본 파업’으로 생필품 등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노동자민중은 직접 물자 공급을 담당하고 나서는 한편 자경위원회를 구성해 공장을 지키고 생산을 지속하려 했다. 정부의 개혁 정책에 기대기보다, 노동자 스스로 생산을 계속하고 투쟁하면서 자본과 우익의 공세에 맞서 싸운 것이었다.


이 시기는 각 계급이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는 한편, 계급 간 균형 상태가 무너지려 하던 때였다. 자본가계급은 계속해서 아옌데 정부를 붕괴시키려 했고, 노동계급 또한 자본가계급의 공세에 맞서면서 노동자민중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독자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령 ‘노동자가 공장에서의 생산과 관리를 비롯해 경제계획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열띤 토론 가운데 한 노동자가 ‘현재 정부 기구로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으니 공장노동자들의 기구가 그 역할을 대체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노동계급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깨닫고 있었고,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생필품을 유통‧공급하는 ‘민중 상점’을 만드는 한편, 각 공장의 연대체 같은 자치조직을 구성해 공장을 점거하고 생산을 이어나가며 ‘자본 파업’에 저항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인민연합 정부를 대체할 기구를 조직하고 권력을 쟁취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옌데 정부는 쿠데타로 무너진다. 사실 인민연합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아옌데는 선거 승리 이후 기존 체제의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서약했고, ‘군부가 중립을 지킬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자본 파업’으로 위기가 지속하자 보수적인 기독민주당과 제휴를 시도하면서, 노동자들의 무장 요구는 묵살했다. 결국, 계급 타협을 시도했던 정부는 자본과 우익 도살자들이 벌인 유혈 낭자한 학살과 함께 처참하게 무너졌다.


반면, 노동계급이 보여준 힘은 위대했다. 책에서 볼 수 있던 혁명이론은 실제 1973년 칠레에서 노동계급에 의해 구현됐고, 그들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향해 투쟁했다. <칠레전투> 3부작은 피와 눈물로 가득한 비극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사회 변동이 몰아치는 시기에 노동계급이 표출한 위대한 힘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노동자 권력 쟁취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중요한 교훈을 전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