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변혁정치

> 변혁정치

로자 룩셈부르크,

대중의 자발성과 

사회주의 혁명의 길

 

독일 사회민주주의자 3

: 급진주의자들 1

 

 

이재유┃서울

 

 

120_44_수정.jpg

△ 로자 룩셈부르크 [사진: wikipedia]

 

 

독일 사회민주당의 수정주의(베른슈타인 등) 논쟁에서 ‘급진주의 좌파’로 등장한 사람들은 당시 카우츠키의 견해(합리주의, 즉 ‘경험’을 내세워 사상과 실천을 수정하려는 시도에 반대)와 유사했다. 급진주의 좌파로는 메링, 칼 리프크네히트, 파르부스(본명 ‘이스라엘 헬판드’), 안톤 파네코에크, 칼 라데크 등이 있는데, 대표적 인물은 로자 룩셈부르크였다. 이들이 카우츠키와 실질적으로 결별한 것은 점진주의(혁명이 아닌 점진적 개혁으로 사회주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상)가 독일 사회민주당 내에서 주류로 자리 잡는 1910년경이었다. 급진주의자들은 1918년 말 독일 공산당을 창설할 때까지 사회민주당 내에서 압력단체로 남아 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후일 레닌(합리주의적 측면)과 카우츠키(베른슈타인의 경험주의로 돌아간) 양쪽 모두로부터 비판받는다. 그 역시 양자 모두를 비판하기도 했거니와, 여기에는 시대적으로 서유럽에서의 혁명이 실패한 배경도 작용했다. 룩셈부르크의 입장은 그의 핵심적 이론 체계, 즉 자발성(대중파업)과 혁명()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사회개혁인가 혁명인가

- 룩셈부르크의 비판1: 베른슈타인의 경험론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

 

수정주의 논쟁에서 룩셈부르크가 베른슈타인을 반박하며 저술한 『사회개혁인가 혁명인가』(1899년)는 지금도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룩셈부르크는 수정주의자 베른슈타인의 경험론적 세계관을 비판하는데, 그의 논점은 ‘사회개혁과 혁명 사이에는 뗄 수 없는 연계성(변증법적 연계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는 합리론적 측면(혁명)에서 베른슈타인의 경험론(사회개혁)을 비판하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베른슈타인이 사회개혁이라는 수단에만 관심을 가질 뿐, 혁명이라는 목표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또한 개혁에 대한 베른슈타인의 개념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밑받침인 자본주의 붕괴론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만일 베른슈타인과 같이 자본주의의 발전이 그 자체 파멸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사회주의는 이미 객관적인 필연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1

 

한편, 룩셈부르크는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에 대한 베른슈타인의 기대에 의문을 제기했다. 즉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내에 존재하는 하나의 혼합적 형태이며, 노동조합이 노동계급에게 귀속하는 사회적 부의 비율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베른슈타인의 생각은 환상’이라고 비판했다. 룩셈부르크는 노동조합의 투쟁을 ‘일종의 시시포스의 노동’(굴러떨어지는 바위를 계속 언덕 위로 다시 밀어 올리는 것. 즉, 궁극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일을 반복하는 행태)이라고 주장했다.2 그리하여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적의에 직면하게 됐다.

 

다른 한편 룩셈부르크는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베른슈타인의 믿음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① 민주적 제도라는 것이 대개 “부르주아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그들의 역할로 설정하고”3 있기 때문이며, ②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은 법적인 관계가 아니라 경제적인 관계이므로 “우리들의 법체계에 있어서는 현행의 계급 지배를 규정할 수 있는 법 조항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4 따라서 룩셈부르크는 베른슈타인이 주장하는 정치적‧법적 개혁들이 현실의 계급 지배 문제를 조금도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룩셈부르크는 베른슈타인의 견해가 기계론적이며 비(非)변증법적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비(非)기계적이고 변증법적인 견해가 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계급 지배가 경제적(초법적)인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그 자체로 혁신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유물론적 견해와 혁명의 객관적 필연성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옹호는 당시 카우츠키의 입장과 유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룩셈부르크는 의회 내 투쟁과 혁명적 이론을 통합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노선과 다른 접근법을 주창한 유일한 사람은 레닌이었다.

 

 

 

룩셈부르크에게 있어서의 

‘의식’과 ‘실천’

- 룩셈부르크의 비판2: 레닌의 합리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

 

이렇듯 룩셈부르크는 수정주의자 베른슈타인을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레닌과도 다른 입장을 보였다. 그는 러시아 노동계급에 대한 레닌의 중앙집권주의적 계몽론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러시아 노동계급의 자발성을 높게 평가했다. 이는 룩셈부르크가 1904년 『노이에 차이트』(‘신시대’라는 뜻으로, 독일 사회민주당의 이론지)에 기고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조직 문제」라는 논문에서 잘 드러난다(레닌의 저작 「일보 전진 이보 후퇴」에 대한 비판. 덧붙이자면,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유럽의 주요 사회민주당이 ‘조국 방위’를 내세워 노동계급의 국제주의가 파탄나기 전까지,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은 지금과 같은 의회주의를 가리키기보다는 사회주의 자체를 뜻하는 말이었다).

 

룩셈부르크는 전위정당에 대한 레닌의 강조를 ‘비밀결사의 블랑키주의적(소수 혁명가의 모험주의적 태도를 뜻함) 조직원칙을 노동자 대중의 사회민주주의 운동에 기계적으로 도입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룩셈부르크에게 중앙집권주의란 ‘개별적 집단들과 그 구성원들의 의사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노동계급의 계몽되고 전투적인 전위대의 의지’가 명령조로 요약된 것이었다. 즉, 중앙집권주의란 프롤레타리아 지도층의 ‘자체 집중주의’이며, 그것은 ‘당 조직 내에서의 다수의 지배’인 것이다.

 

룩셈부르크는 레닌의 견해를 ‘베른슈타인의 좌파적 버전’으로 파악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베른슈타인이 ‘운동’과 ‘목표’를 분리한 것과 마찬가지로 레닌 역시 ‘당’과 ‘대중’을 분리한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또한 룩셈부르크에게는 레닌이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공장의 규율적인 영향을 높이 평가한 것도 잘못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룩셈부르크는 러시아 혁명가들이 ‘무오류성’의 주관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즉, 오류를 저지르는 노동자 대중을 당의 ‘계몽 대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혁명에 관한 

중심 개념으로서의 ‘자발성’

 

레닌이 ‘의식성’의 대표 조직으로서 ‘당’을 강조한 데 반발해 룩셈부르크는 ‘대중의 자발성’에 주목했는데, 이 개념은 후일 ‘정통’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됐다. 만약 자본주의의 발전과 모순의 심화에 따라 노동자들의 봉기와 혁명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게 된다면 ‘전위당’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때 노동자들의 자발성은 개연성‧우연성의 의미를 지니며, 전위당은 절대적 법칙으로서 필연성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자발성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개념은 ‘의식’과 ‘혁명’(1840년대 유럽에서 특히 광범하게 벌어진 대중의 봉기)에 관한 맑스의 생각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이 둘 사이의 공통점은 결정론의 요소가 없다는 것인데, 이는 맑스가 헤겔의 변증법을 비판한 대목과도 연결된다. 자발성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생각은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도력이 불만족스러울수록 더 강조됐다. 룩셈부르크의 자발성 개념은 이론의 자발성(경험론적 측면에서의 자발성(우연성, 개연성))이 아니라 행동의 자발성(실천적인 측면에서의 자발성)이었으며, 그런 측면에서 룩셈부르크는 창조적 지도력의 필요성을 부인한 게 아니었다.

 

 

120_46.jpg

△ 로자 룩셈부르크의 '대중파업론'에 큰 영향을 미친 1905년 1차 러시아 혁명. [사진: wikipedia]

 

 

대중파업

: 자발성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시공간

 

이런 논지에서 룩셈부르크는 ‘대중파업’에 주목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대중파업에 대해 그 무정부주의적 특성(특정 정치세력의 지도를 거부하는 등)을 지적하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대중파업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취했다(자신들의 통제력이 닿지 않았으므로). 하지만 룩셈부르크는 「대중파업, 당 그리고 노동조합」(1906년)이라는 소책자에서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임금 인상 등 경제적 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과 당의 정치적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메우기 위한 노력으로서 ‘대중파업’을 들고 있다. 즉,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변증법적 통일로서 대중파업을 제시했다. 여기서 룩셈부르크는 대중파업이 더 이상 무정부주의적 도구가 아니며(우연적이고 개연적인 것이 아니며), 대중파업의 무정부주의적인 성격에 대한 엥겔스의 비판이 오류였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1905년 1차 러시아 혁명에 관해서도 ‘대중파업’은 ‘전위의 계몽에 의해 만들어졌다거나 우연히 결정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특정 시점에서 역사적 필연성에 따라 사회적 관계로부터 제기된 ‘역사적 현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로부터 3가지 주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① 대중파업은 고립된 행동이 아니다. 즉, 그때그때의 현실적인 상황에서 소수의 노동조합 지도부에 의해 일어나는 방어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파업은 ‘수년 또는 수십 년 간’ 지속한 계급투쟁의 모든 국면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총체적’인 것이다. ② 대중봉기에서 정치적 요인과 경제적 요인은 분리할 수 없으며, 변증법적 통일의 관계에 있다. ③ 대중파업은 직접 혁명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멀리 돌아서 혁명으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방편이다. 반면, 혁명은 대중파업 속에서 경제적 계기와 정치적 계기가 융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이러한 결론은 변증법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헤겔식 변증법과는 차이가 있다. 헤겔식 변증법은 노동조합 지도부나 전위당 같은 ‘이성’의 대리자(헤겔에게는 ‘세계사적 민족’으로서의 게르만족과 동일한 지평에 있는 자)를 내세운다. 반면, 룩셈부르크의 변증법과 ‘자발성’ 개념은 보편성과 총체성의 근간인 ‘타자의 타자성’(어떤 하나의 동일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을 지향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자기 자신을 생산해내고자 하는 자유의지에 기초했다고 할 수 있다.

 

 

 

1 로자 룩셈부르크(김경미‧송병헌 옮김),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 책세상, 2002, 22쪽.

 

2 같은 책, 82쪽.

 

3 같은 책, 88쪽.

 

4 같은 책, 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