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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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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용

기관지위원장

 

 

“사회주의 대중화,

꾸준히 해나갈 준비가

되어있나요?”

 

 

# 변혁당 기관지 <변혁정치>는 매월 2회, 격주로 발행된다. 서른세 번의 창간준비호를 내고, 2015년 5월 12일 1호를 시작으로 올해 120호를 맞았다. 그 시간 동안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가 ‘사회변혁노동자당’이 됐고, 기관지위원장은 두 번 바뀌었다.

 

기관지위원장은 격주로 기관지를 기획하고, 글을 쓰고, 교정과 편집을 거쳐 우체국 발송 작업까지 책임진다. 발송을 끝내고 돌아서면 다음 호 기획이 코앞이다. 며칠이라도 늦어지면 마음이 닳는다. 실제 얼마나 읽히는지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일은 매월 두 번,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변혁정치>가 2년째 기관지를 맡고 있는 이주용 기관지위원장을 만났다.

 

 

 

 

세상 향한 불만에

방향을 알려준 사회주의

 

주용 씨는 2009년 대학에 입학했다. 용산 참사와 쌍용차 정리해고 등 굵직한 현안이 이어지던 해였다. 세상에 불만은 많지만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드러내야 할지 몰랐던 주용 씨에게 대학 정치서클에서 만난 선배들이 ‘사회주의’를 알려줬다.

 

“1997년에 IMF가 터지고 아버지가 해고되셨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아침에 학교 가려고 준비를 하는데, 아버지가 회사에 나가지 않는 그 모습이요. 왜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도 해고되고, 왜 어떤 사람들은 별일 안 해도 엄청난 돈을 받는 걸까, 불만의 씨앗이 움텄죠. 집회 현장과 세미나 등에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조직에 들어가게 됐어요.”

 

 

2010년, ‘사노위’(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가 결성됐고 주용 씨도 함께했다. 사노위는 소규모 서클이 아닌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하자는 목표가 있었다. 주용 씨는 당장 몇 년 뒤에 자신이 무엇을 하든, 일단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군대 전역 직전인 2016년 1월, 사회변혁노동자당이 출범했다.

 

“양과 질이 도약해서 당으로 전환한 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도 사회주의를 전면화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적인 정치활동을 결의한 거라 봤어요. 당시 군대 갔다 와서도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지역으로 가고 싶었는데, 군대에 있었으니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잖아요. 전체적인 감도 익힐 겸 중앙당 정책국장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중앙 활동을 이렇게 오래 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네요.(웃음)”

 

 

 

백지로 마주하는

기획안 고민할 때가 가장 어려워…

후원, 구독자 조직하는

당원들이 가장 큰 힘

 

이후 주용 씨는 2016~17년 정책국장, 18년 정책위원장을 거쳐 19년부터 기관지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의 목표는 ‘사회주의 정론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의 기관지라면 학습, 조직, 선전 모든 면에서 역할을 해야죠. 두꺼운 책이 아니라도 기관지 읽는 이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고, 우리 당을 알리는 선전의 매체이기도 해야 하고, 이로써 결국 당원들의 조직 수단이 돼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있어요. 2020년에는 기관지 단어 사용부터 내용 초점까지 ‘사회주의’로 관통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주의가 무엇이고, 현실의 투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끊임없이 말하는 거죠.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지만, 가장 아쉬운 건 ‘그래서 왜 사회주의당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은 잘 다루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기관지 한 호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길고도 험난하다. 어떤 내용으로 지면을 채울지 기획안부터 짜야 한다. 주용 씨는 이 백지를 마주할 때가 가장 어려운 단계라고 했다. 국내외 기사를 찾아보는 것은 물론 주변에 의견을 구하고, 정세브리핑 자료도 틈틈이 찾아본다. 이를 바탕으로 기획안을 만들고, 기관지위원회에서 보완한다. 주제에 따라 필자를 섭외하고, 정해진 날짜까지 원고를 모은다. 그 글을 다듬고 완성하는 것도 주용 씨와 기관지위원회의 몫이다. 이후 편집‧디자인을 거쳐 기관지를 인쇄소에 넘긴다. 종이로 나온 기관지를 일일이 봉투에 넣고 우체국에 가서 발송하는 것도 손수 하는 일이다. 이는 주로 사무실에 있는 중앙집행위원회 성원들과 함께한다. 마지막으로 기사를 하나하나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기관지위원회에서 평가까지 하면 한 호가 마무리된다. 벅찬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리적인 시간은 기관지를 포장하고 발송할 때 많이 드는데, 기획 단계가 가장 어려워요. 어떤 소재를 잡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일이지만, 다루고 싶은 주제가 있다고 다 글이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그 글을 쓸 사람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 단계죠. 주제에 대해서는 ‘이 사안을 사회주의와 연결시킬 수 있나’를 최우선으로 고민하는데, 2020년에는 구조조정과 국유화 키워드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주용 씨는 당원들이 후원자나 구독자를 조직할 때 가장 뿌듯하다.

 

“어떤 분들은 거의 매호 구독, 후원을 조직해오세요. 주변에 공유하고 싶은 기사가 있다고,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할 때 정말 뿌듯하죠. 작게는 한 호를 마쳤을 때, 어찌 됐든 하나가 끝났구나 하는 뿌듯함이 있어요.”

 

 

그렇다면 2020년, 가장 주목받은 기사는 무엇이었을까.

 

“변혁당이 작년 초에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계획을 냈잖아요. 그즈음 사회주의 조직들과 진행한 토론회 기사가 가장 조회 수가 높아요. 이론적이고 딱딱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논쟁적인 사안과 운동 노선에 대한 기사도 주목도가 높아요. 기관지위원장인 저도 의외였어요. <변혁정치>를 읽는 분들은 변혁당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글을 원하는 거죠.”

 

 

 

“사회주의 대중화,

끈기가 필요한

지난한 길일 수밖에 없어…

우리는 그럴 준비가 되었나”

 

변혁당은 1월 말 총회를 앞두고 있다. 주용 씨는 총회준비위원회에도 결합하며 2021년 사업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작년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의 평가 또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이 시‧도당, 분회 등 우리 당의 골간 조직으로, 당원의 자기 사업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아요. 사회주의 대중화 계획은 처음부터 3년을 목표로 했고, 그 첫해를 지난 거예요. 대중화 계획의 핵심은 우리가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 자체가 갖는 의미가 있다고 봐요. 하지만 3년으로는 부족하죠. 사실 굉장히 오래 걸리는 사업이에요. 격동하던 러시아에서도 당 건설하고 혁명에 성공하는 데 20년이 걸렸잖아요. 버니 샌더스와 DSA(미국 민주사회주의자 그룹)도 근 몇 년 사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DSA가 건설된 게 1982년이에요. 40여 년을 이어온 조직이라는 거죠. 그들이 성취한 측면만 보고, 오래되고 끈질긴 활동을 전개했던 걸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전국민 의료보험, 최저임금 15달러, 그린뉴딜 등 의제운동, 지역과 노동자투쟁의 결합과 조직 등을 이어왔죠. DSA 노선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사회주의는 구호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 또한 짧은 시간 내에 사회주의를 대중화하기는 쉽지 않아요. 끈기가 요구되는 지난한 이 과업에서 우리는 버틸 준비가 되어있는가, 그 준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을 함께 던지는 총회라고 봐요.”

 

 

주용 씨는 올해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의 핵심은 지역 시‧도당과 분회의 활동이라고 진단했다.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을 공중전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지역과 활동공간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만들 것인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아주 구체적인 사업 기획과 집행이 필요해요. 중앙의 사업기획만으로는 사회주의 대중화를 이룰 수 없어요. 대중화 사업을 분회에서 고민하고, 자체적인 활동을 만들어야 해요.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을 당원들이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당 조직이 몸이라면 당원은 세포잖아요. 세포가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죽는 거고, 역으로 세포가 움직여야 몸이 살아나는 거죠.”

 

 

마지막으로 주용 씨에게 사회주의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대중이 품은 불만을 새로운 질서로 만들어줄 힘”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기준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뷰= 나위기관지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