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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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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프롤레타리아트 역사에

등장하다

 

여성의 시각으로 본

자본의 시초 축적과 ‘임금 가부장제’

 

<소개하는 책>

실비아 페데리치(황성원‧김민철 옮김), 『캘리번과 마녀』, 갈무리, 2011.

 

 

정은희┃기관지위원회

 

 

 

“마치 인클로저가 농민들로부터 공유지를 박탈한 것처럼 마녀사냥은 여성들로부터 신체를 박탈했다. 따라서 신체는 노동의 생산을 위한 기계로 전락하지 않게 막아 주던 모든 예방장치에서 ‘해방되었다’. 화형대의 광경은 공유지에 둘러쳐진 담장보다 더 무시무시한 장벽을 여성의 신체 주변에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 <캘리번과 마녀> 272쪽

(※ 이하에서 별도 제목 없이 괄호 안에 표기한 쪽수는 모두 이 책임.)

 

 

 

페미니스트, 사회주의자, 성 소수자, 빈민…. 주류가 외면하고 심지어 혐오하는 이들에겐 ‘마녀’가 과거나 남의 이야기 같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런 이들에게 아마도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는 이미 잘 알려진 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임금 가부장제’라고 부른 자본주의적 가부장제가 어떻게 출현했는지 이 책을 통해 역사적으로 분석해냈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에 다시 한번 주목하고 싶다.

 

<캘리번과 마녀>는 여성의 관점에서 본 자본의 시초 축적에 관한 기록지다. 저자 페데리치에 따르면, 시초 축적은 착취할 수 있는 노동자와 자본의 단순한 축적과 집중이 아니라, 노동계급 내부에서의 차이와 분할의 축적이었으며, ‘인종’과 나이 외에도 성별에 따라 세워진 위계제가 계급지배와 근대 프롤레타리아트 형성의 근간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마녀사냥’은 지배계급이 저항적 여성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상대로 벌인 테러로,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낳은 ‘여성 길들이기’의 집약이었다고 규정한다. 나아가 이 같은 ‘마녀사냥’은 자본주의가 시작된 유럽뿐 아니라 제국주의적 침략을 통해 제3 세계에서도 자행됐고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자본의 시초 축적과

여성 프롤레타리아트의 창출

 

우선 페데리치는 맑스가 <자본론>에서 제시했던 ‘자본의 시초 축적’ 개념(자본주의 생산관계는 교과서에서 가르치듯 평화롭게 정착된 게 아니라, 소규모 농민 등 민중에 대한 폭력적인 수탈을 통해 최초의 자본축적이 이뤄지면서 뿌리내렸다는 것)을 끌어오면서도, 그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여성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역사를 재서술한다. 그는 맑스가 시초 축적 개념을 통해 ‘봉건적 반동’을 자본주의적 경제의 발전에 결부시키고, 자본주의 체제 발전의 역사적‧논리적 조건을 밝혀내며 제국주의를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페데리치에 따르면 맑스는 이를 산업노동자의 관점에서 분석했을 따름이며, 자본주의가 노동인구 재생산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가져다준 심대한 변화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101~102쪽).

 

페데리치는 이와는 달리, 봉건사회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이후의 변화과정을 여성의 입장에서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봉건시대 여성 농노는 모든 면에서 2등의 지위를 가졌지만, 후일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로운’ 여성보다 남성 친족에게 덜 의존했고, 육체적‧사회적‧정신적으로 덜 차별받았으며, 남성의 필요에도 덜 종속됐다(51쪽). 그 이유는 ‘영주의 권위가 여성의 남편과 아버지의 권위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또한 봉건시대 촌락에서는 재화를 생산하는 것과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 사이에 사회적 분리가 전혀 없었으며, 양자 모두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세사회에서 공동체가 가족에 우선했다는 점과 여성 농노의 일(세탁, 바느질, 추수, 공유지에서 가축 돌보기 등)이 대개 다른 여성들과 협동하는 것이었음을 고려하면, 노동의 성적 분업이 여성에게는 고립이 아닌 힘과 보호의 원천이 됐다고 한다(52쪽).

 

그러나 페데리치는 유럽에서 15세기 후반 식민지로의 팽창과 동시에 시작된 토지 사유화가 ‘농노의 프롤레타리아트로의 전환’을 추동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이것은 여성에게 더욱 가혹했으며 자본주의적 성별 분업을 야기했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봉건시대 공유지의 사회적 기능은 특히 여성에게 중요했는데, 여성은 토지에 대한 권리나 사회적 권력이 더 약했기에 생존과 독립, 사회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유지에 더 의존했기 때문이었다(115쪽). 결과적으로 여성은 자본주의로의 전환기에 인클로저(자본주의 생산관계 도입 초기에 소농민의 농지나 공유지를 박탈하고 지주-자본가의 배타적 소유로 전환시킨 것)의 충격 때문에 남성보다 더욱 먹고 살기가 어려워졌다. 토지가 사유화되고 화폐관계가 경제생활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활동은 오히려 완전히 가치를 박탈당한 재생산(출산 및 가사) 노동에 점점 더 한정됐다(120쪽).

 

페데리치에 따르면, 이 과정은 19세기에 ‘전업주부’가 생겨나면서 정점에 달했다. 이를 통해 노동의 성적 분업은 여성을 재생산 노동에 가뒀을 뿐 아니라, 남성에 대한 의존을 더욱 심화함으로써 국가와 고용주들이 여성의 노동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남성의 임금을 이용할 수 있게끔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처럼 (상품) 생산이 (노동인구) 재생산과 분리되면서, 여성의 무보수 노동을 착취하기 위해 임금과 시장을 자본주의적으로 이용하는 전략이 발달하게 됐다고 본다. 즉 ‘임금 가부장제’의 출현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과 재생산의 분리가 여성 프롤레타리아트를 창출했다는 점이라고 꼽는다(121~122쪽). 자본주의는 남성과 여성 간의 권력 차이와 (‘자연적 열등함’이라는 핑계로 이뤄진) 여성 부불노동(지불되지 않는 노동, 곧 무보수 노동)의 은폐 덕택에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 노동시간’을 확대할 수 있었고, 여성노동을 축적하는 방편으로 남성의 임금을 이용할 수 있었다며, 이 둘은 많은 경우 계급 적대를 성별 간 적대관계로 굴절시키는 작용도 했다고 지적한다(191쪽).

 

 

 

인구위기와 경제위기

그리고 마녀사냥

 

이러한 여성의 사회적 추락은 경제적 변화 속에서 추동됐지만, 한편에선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수반한다고 한다. 즉, 출산을 규제하고 재생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 주도권을 파괴하기 위해 국가가 새로이 ‘훈육’ 조치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페데리치는 1620~30년대 정점에 이른 인구위기와 경제위기 속에서 노동‧인구‧부의 축적 사이의 상호관계가 정치 논쟁의 전면에 등장했으며, 그 결과 국가가 출산을 관리하고 피임‧낙태‧영아살해 등을 강력하게 처벌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계급의 재생산 통제가 집약된 것이 바로 ‘마녀사냥’이었다고 제기한다. 페데리치는 16~17세기 동안 유럽 국가에서 수십만 명의 여성이 재판을 받고 고문당하며 산 채로 화형당하거나 교수형에 처해진 이 과정을 ‘여성에 대한 국가의 테러’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결국 여성의 신체는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노동인구를 확대시키는 도구로 변질됐다고 지적한다(140~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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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세 유럽 마녀사냥 당시 화형당하는 사람들. [사진: wikipedia]

 

 

페데리치에 따르면, 16세기에 ‘사술(邪術: 요사스런 술법)을 부린다’고 고발당한 대다수의 피소자 마녀들은 가난한 농민여성(날품팔이, 임금노동자)이었고, 기소한 자들은 부유한 특권층이었다. 잉글랜드 지방에서는 마녀들이 주로 생활보호 대상 노파이거나 걸식으로 연명하던 여성이었으며, 대체로 과부나 독신이 많았다고 한다. 아울러 이들의 ‘사술’로 지목된 것은 일종의 계급투쟁이었다. 그것은 적선을 거부한 사람에게 거지가 내뱉는 저주, 임대료 미납, 공공부조에 대한 요구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인구위기가 절정에 달한 17세기까지는 재생산과 관련된 범죄들이 마녀재판에서 두드러졌다. 즉, 낙태를 알선했거나, 아이들을 죽이는 영아살해 집단에 속해 있거나, 아이들을 악마에게 바쳤다는 이유로 기소당했다. 이로 인해 페데리치는 마녀사냥이 출산 통제를 범죄화하고 여성의 신체, 특히 자궁을 인구 증가와 노동력 생산 및 축적을 위해 봉사하도록 했던 시도(266~270쪽)라고 지적한다. 또한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문란한 여성들’(창녀나 간통한 여성, 결혼과 출산의 구속 밖에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행사한 여성) 또한 마녀였다고 밝힌다. 나아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비난하며, 새로운 자본주의적 노동규율에 순응시키는 광범위한 성생활 재구조화의 수단이기도 했다고 지적한다(288쪽).

 

결과적으로 페데리치는 마녀사냥이 폭력적인 자본주의의 성 정치로서 현재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이 점에서 페데리치는 맑스와는 달리 자본주의 발달과정을 인간해방의 필연적인 절차로 보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집단을 부단히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필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불어 페데리치는 푸코나 데카르트 등을 비판하며 노동자 신체에 대한 자본주의적 규율과 마녀사냥을 함께 논한다.

 

 

 

이외에도 이 책은 ‘마녀’라고 불린 여성들의 실생활, 이들의 저항과 연대 등 흥미로운 이야기 그리고 한편으로는 처절한 사연을 기록한다. 국가가 심문하고 고문하며 처형한 마녀들이기에 그들의 기록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그럼에도 초기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여성 프롤레타리아트가 어떻게 창출됐는지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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