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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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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은 없었다

그러나 싸우는 여자들이

새로 쓰는 세상이 있다!

 

폐업과 해고에 맞서 싸운 여자들의 기록

 

 

<소개하는 책>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 『회사가 사라졌다』, 파시클, 2020.

 

 

선지현┃충북

 

 

 

가부장제, 자본만의 문제인가?

 

‘너희 먹여 살리려고 일한다’는 아버지와 같은 훈계를 늘어놓으며 가부장을 자처하는 회사 사장에게 중년의 여성노동은 남성노동과는 또 다른 의미가 덧붙여진다. 반찬값이나 벌려고 나온 여자들이니 최저임금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일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반복 업무라고 생각하니 언제든 없애고 갈아치워도 되는 일자리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앞세우는 사회에서 집안일도 하고 반찬값도 버는 시간제 일자리는 여성에게 딱 맞는 조건이라고 강변한다. 자본은 이렇게 여성노동을 더 아래로 내려놓고 자기들 마음대로 짓밟았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의 기록은 익숙한 여성노동의 현실에 여성들의 삶의 이력이 덧붙여지면서 생생해진다.

 

‘또록’은 한 발 더 내딛는다. 농사일, 애 보기, 집안일, 임신과 출산을 거친 중년여성들의 보상조차 받지 못한 가려진 노동의 문제를 드러낸다. 또록의 기록은 거기서 머물지 않고 노동자 투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가부장제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알리고 사회적 지지를 얻는다는 이유로 헌신적인 어머니, 사랑스러운 딸, 고생하는 아내를 등장시키는 일들. 여성차별을 호소하기 위해 가족주의와 모성 담론에 기대는 차별적이고 고착화된 성별분업의 언어들, 가정과 일을 모두 억척스럽게 해내는 자랑스러운 어머니를 앞세우는 것들이 모두 가부장제의 굴레를 더 유지시키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이를 통해 ‘또록’은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 나서는 싸움 안에서 가부장제와 가족주의라는 규범에 대한 탐색과 열린 토론을 제안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에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대목이다.

 

 

 

폐업과 해고는 사회적인 문제

 

저임금‧시간제 일자리로 여성을 모는 것은 기업만이 아니었다. 기업의 성장을 촉진한다며 무수히 많은 포상을 쏟아내는 국가의 정책은 안정된 일자리가 아닌 5시간짜리 시간제 일자리를 양산했다. 시간제 일자리는 대부분 여성으로 채워졌다. 사회적으로 조장된 노동의 위계는 여성들의 심각한 저임금‧불안정노동의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재생산하고, 그녀들을 막다른 길로 내모는 해고‧폐업의 문제를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 이런 해고와 폐업이 개인과 개별 기업의 문제일까?

 

고용과 이직을 전전하며 살아온 여성들은 회사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하청의 하청으로, 집에서의 부업으로 몰렸다.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여성들을 내쫓은 기업들은 값싼 여성노동보다 더 저렴한 이주노동으로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렇게 노동의 위계와 저임금구조는 더 촘촘하고 단단해진다. 그런데도 폐업은 사장 개인의 재산을 처분하는 문제일 뿐인가?

 

기업이 어려워지면 정부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한다. 노동자들은 고통분담이라는 이름으로 가혹한 희생을 강요당한다. ‘손실을 사회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살아난 기업의 이윤은 또 자본이 독점한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해외로 물량을 빼돌리고, 회사 문을 닫는 경우도 많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업체를 폐업하고 다시 차리는 일은 다반사다. 여기에 회사가 사라지면서 드러나는 대기업의 납품 장난질, 금융투기 등의 문제는 이 사회의 독버섯 같은 병폐다. 자! 그럼에도 폐업에 맞선 투쟁은 답이 없기 때문에 해봐야 소용없다고 할 것인가?

 

‘또록’은 성진, 신영, 레이테크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하며 폐업은 개인 사업주가 공장 하나 닫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는 걸 생생하게 드러낸다.

 

그렇기에 폐업으로 내쫓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나는 것은 ‘해결책이 없어 타는 막차’가 돼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을 통해 투쟁하면서 노동의 존엄을 지키고, 이 속에서 노동조합은 부당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며 권리를 찾아가는 ‘선택’이 돼야 한다. 폐업을 사회적인 문제로 공론화하면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또록’이 폐업‧해고에 맞선 여성노동을 기록하는 이유다.

 

 

 

싸우는 여자들이 쓰는

새로운 세상

 

돌을 캐서 가족의 밥을 먹였던 아버지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란 큰딸 은옥.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어머니의 몫을 나누기 위해 열다섯 어린 나이에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을 다니면서도 글 쓰는 걸 좋아했던 정숙. 고생의 대서사시를 조각조각 쏟아 내 엄마, 그리고 엄마의 엄마를 떠올리게 했던 이순. ‘누구의 엄마’라고 하지 않고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는 회사가 좋았다던 해선. 그녀들은 모두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을 거부하고 노동조합을 만나 투쟁했다.

 

그녀들의 투쟁은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하지만 후회로 남았던 지난날을 곱씹으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위해 싸움을 선택했다. 싸우는 동안 그녀들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져보는 자기 시간’을 경험했다고 한다. 힘들 때 의지할 수 있었던 노동조합을 만났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사람들이 너무 소중해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투쟁하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이는 분명 싸우는 여자들이 쓰는 새로운 세상의 풍경이었다.

당신도 그 세상의 풍경을 엿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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