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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2.2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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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시위. [사진: wikipedia]

 

 

 

 

 

미얀마 군부 쿠데타는

성공할 것인가?

 

 

나현필┃국제민주연대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다. 그동안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이하 ‘NLD’)과 군부는 연립정부 형태의 불안한 동거를 지속해 왔는데, 지난 2020년 11월 총선에서 다시 NLD가 승리하자 헌법 개정 등을 통해 권력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군부는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후 2015년 총선에서 NLD가 승리할 때까지 미얀마를 철권통치 해왔다. 긴 세월 미얀마의 권력을 독점했던 군부는 국제사회의 압력과 2007년 발생한 태풍 나르기스로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고자 2008년에 헌법을 개정해 민정 형태로 나아가는 실험을 시작했는데, 13년 만에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이를 되돌린 셈이다.

 

 

 

아웅산 수치의 성공과 실패

 

미얀마 민족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의 미얀마 점령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인 아웅산 장군은 미얀마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독립영웅이다. 1947년 미얀마 독립 이후 암살당한 아웅산 장군의 딸 수치는 존재만으로도 군부의 위협이었다.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아웅산 수치의 가택연금을 2010년에 해제했지만, 군부는 수치가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헌법에 독소조항을 만들어 두었다. 우선 외국 국적의 가족이 있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도록(아웅산 수치는 영국 유학 중 만난 영국인 배우자가 있다) 했고, 상하원 의석의 25%를 무조건 군부에 배정하게 했으며, 군 통수권을 군부가 유지하도록 했다. 이런 장치에도 불구하고 2015년 총선에서 NLD가 압승을 거두자 군부는 아웅산 수치가 대통령이 아닌 국가자문위원으로서 막후에서 사실상 최고지도자로 군림하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 정부는 기대를 받으며 2016년 출범했지만, 2017년 8월에 발생한 로힝야 학살은 그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다. 미얀마는 여러 소수민족으로 구성돼 있고, 소수민족들은 주류인 버마족에 맞서 독립투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로힝야족에 대한 군부의 학살을 옹호하는 아웅산 수치의 모습은 ‘민주주의 지도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군부의 학살 작전을 부정하거나 옹호하는 모습마저 보이면서, 군부와 타협해 정권을 유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아웅산 수치의 태도는 로힝야뿐만 아니라 미얀마 내 무슬림과 소수민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지속적으로 조장했다. 2020년 총선에서 소수민족과 무슬림 지역에서는 입후보와 투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이는 군부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명분을 제공했다. 물론 군부가 제도적으로 권력을 분점한 데다 실질적으로도 미얀마 경제와 사회 곳곳의 권력을 잡고 있는 현실을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학살의 책임을 아웅산 수치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미얀마 군부에 맞선

청년과 노동자들

 

지난 2007년, 미얀마 군부의 유가 인상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미얀마 내에서 ‘유일하게 군부에 맞설 수 있는 세력’으로 평가받던 불교 승려들이 집단적으로 시위를 주도하고 참여했지만, 군부는 실탄사격도 불사하면서 시위를 진압했다. 미얀마 군부의 절대적 영향력을 확인하는 사건이었다. 올해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도 군부가 별다른 저항 없이 권력을 찬탈할 것이라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쿠데타 이후 2주 정도 흐르는 동안 미얀마의 청년과 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시위대가 강력하게 군부에 맞서고 있다. 두 번의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NLD를 지지한 민심이 있긴 했지만 군부의 무자비한 폭력에 맞선 저항이 조직될 수 있을지 의문이 있었는데, 노동자들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과 만달레이에는 미얀마의 낮은 인건비를 노리고 진출한 중국과 한국의 의류봉제업체들이 입주해 있고,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이다) 저임금과 노조 탄압에 맞서 지속적으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싸워왔다.

 

경찰과 용역깡패의 폭력에 맞서 싸워 온 미얀마 노동자들은 쿠데타 국면에서 투쟁의 경험을 살려 조직적이고 단호한 저항을 만들어가고 있다. 미얀마 청년들 역시 시위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도 청년세대이지만, 2011년부터 이어진 미얀마의 민주주의 여정을 지켜본 청년들은 군부 쿠데타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물론, 청년과 노동자들의 저항 뒤에는 NLD에 압승을 안겨준 미얀마 국민들의 지지가 뒷받침되고 있으며, 아웅산 수치에 대한 실망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부를 용납할 수 없는 소수민족들도 군부 쿠데타 반대에 나서고 있다. 심지어 로힝야 난민들마저도 군부에 대한 반대시위에 나서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는

성공할 것인가?

 

군부는 성난 민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직까지 군인이 아닌 경찰력과 친정부 깡패들을 동원해 진압에 나서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군부가 실탄사격을 포함해 진압의 전면에 나설 경우 사태를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어 보이고, 아웅산 수치를 기소하면서 일단 현재 상황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쿠데타를 감행한 상황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언제든 전면적인 무력진압에 나설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원유와 가스를 중국 본토로 들여올 통로를 미얀마를 통해 확보한 중국의 암묵적 지지는 미얀마 군부의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군부가 전면적인 무력진압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게 분명한 상황에서, 관건은 미얀마 국민들의 선택에 달렸다: 군부를 이번 기회에 권력에서 축출할 것인가, 아니면 군부와 다시 타협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