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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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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들과 함께 하는

해방은 없다(1)

 

 

<소개하는 책>

조지 오웰(정영목 옮김),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2001.

 

 

이주용┃기관지위원장

 

 

 

 

* 이 글은 <변혁정치> 이번 122호와 다음 123호에 걸쳐 게재됩니다.

 

 

스탈린 체제를 우화로 비판한 『동물농장』,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1984』.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이름을 날리게 한 작품이다. 이 때문인지 오웰은 ‘반공 작가’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오웰은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규정했고, 부르주아 질서를 혐오했으며, 노동계급이 스스로를 해방시킨 시공간에 찬사를 보냈다. 그는 스페인 내전(1936~39)에서 “맑스주의 통일노동자당”(POUM) 소속 의용군으로 참전해 파시즘에 맞서 직접 총을 들고 싸웠고, 그 속에서 노동계급의 급진적 분출을 ‘부르주아(혹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방어’라는 틀로 억제하려는 자들에게 분노했다.

 

오웰이 스탈린주의에 격렬한 증오를 표출한 것은 그가 부르주아 지식인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인데, 이는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서 겪은 생생한 경험에 기인한다. 다음 호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사회주의자 의용군 조지 오웰을 당시 동란의 스페인에서 목숨 걸고 도망치듯 빠져나올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은 파시스트가 아니라 스탈린주의 공산당으로부터의 정치적 탄압과 체포, 숙청이었다. 후일 그는 『동물농장』 출간(1945) 직후 발표한 글에서 사회주의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바로 그 견지에서 스탈린주의를 적대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스페인 내전이었음을 밝힌다.

 

 

“스페인 전쟁과 1936-1937년의 기타 사건들은 정세를 결정적으로 바꿔놓았고 그 이후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1936년 이후 내가 진지하게 쓴 작품들은 그 한 줄 한 줄이 모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해 씌어졌다.”

- <나는 왜 쓰는가>(1946)에서

 

[조지 오웰(정영목 옮김),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2011, 305쪽 “옮긴이의 말”에서 재인용.]

 

(당초 취재를 위해 떠난 것이었지만) 스페인에 도착하자마자 그를 곧바로 의용군에 자원입대하게 했던 혁명의 열기, 그리고 그 혁명을 배반한 자들에 의해 노동계급의 열망이 꺾이고 급기야 오웰 자신도 생명을 위협받으며 탈출하기에 이르러 극에 달한 분노. 이것이 1938년 그가 『카탈로니아 찬가』를 쓰게 된 이유였다(이 작품은 소설이 아니라 르포 형식의 참전 수기에 가까우며, 비유나 우화가 아니라 직접적인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동란의 스페인과 계급투쟁

 

1-2차 세계대전 사이의 이 시기에 관해 이탈리아 파시즘과 독일 나치즘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스페인에서의 파시스트 쿠데타와 내전, 결과적으로 1970년대까지 30년 이상 이어진 군부 독재 체제는 상대적으로 낯설지도 모른다. 당시 유럽 전반에 걸쳐 극우파 운동이 확산하고 있었고, 스페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스페인 노동계급은 우익에 맞선 봉기와 파업 등 격렬한 저항을 일으켰고, 비로소 파시즘에 제동을 걸 계급투쟁의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계 곳곳의 사회주의자들과 반(反)파시스트 활동가‧지식인들이 이른바 “국제여단” 혹은 여러 형태의 의용군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싸운 것은 바로 그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고, 오웰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페인 내전을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1936년 7월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비롯한 스페인 군부가 일으킨 파시스트 쿠데타다. 이들의 무력행동은 당시 스페인을 격동으로 몰아넣은 계급투쟁의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스페인 군부는 이보다 앞선 1923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는 등 우익의 보루 역할을 공격적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왕실을 등에 업은 독재 정권은 1920년대 발흥하던 노동운동의 저항에 직면하는 한편, 결정적으로 1929년 대공황을 맞아 무능함을 여실히 드러내며 붕괴한다. 곧이어 1931년 실시된 선거에서 공화파(왕정과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세력)가 대거 승리해 국왕을 퇴위시키고 공화정을 수립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변화를 가능케 했던 노동자와 농민의 대중운동이 급진화하면서 부르주아 정부는 그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계급적 한계를 노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1933년 보수주의 우익이 총집결해 선거로 집권하자 ‘우익의 발호에 맞서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는 흐름이 형성됐고, 자유주의 ‘좌익’부터 사회당과 공산당, 아나키스트 세력까지 아우르는 계급 연합 “인민전선”이 탄생한다(이 계급 연합은 대중의 혁명적 열기를 억누름으로써 파시스트 세력의 승리와 독재 정권 수립으로 귀결하는 비극의 씨앗이 된다). 인민전선은 1936년 총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았는데, 이에 군부는 파시스트 세력과 보수주의 세력 등을 규합해 곧바로 인민전선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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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내전 당시 파시스트 쿠데타에 맞서 참전하기 위해 자원한 사람들. [사진: wikipedia]

 

 

 

카탈로니아,

노동자 권력의 싹이 움트다

 

대도시 바르셀로나가 위치한 스페인 북동부 지역 카탈로니아는 당시 노동계급과 좌익의 힘이 가장 강력한 곳 가운데 하나였다(오웰이 스페인에 도착해 참전한 지역도 이곳이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카탈로니아’ 찬가인 이유다). 1936년 12월, 내전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카탈로니아에 발을 디딘 오웰은 자신이 처음 마주한 노동계급의 ‘해방구’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로서는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은 도시에 들어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좀 크다 싶은 건물은 거의 예외 없이 노동자들이 장악했다.… 상점과 카페마다 집산화되었다는 글이 붙어 있었다.… 굴종적인 말투나 격식을 차린 말투까지도 일시에 사라졌다.… 거의 모두가 노동계급의 거칠거칠한 옷을 입었다.… 나는 그 도시의 모습을 보자마자 내가 싸워서 지킬 만한 어떤 가치가 있다고 확신했다.… 이 시기에도 빵을 구하려는 줄은 종종 수백 미터씩 늘어서곤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사람들은 만족해했고 희망이 넘쳤다. 실업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혁명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갑자기 평등과 자유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있었다. 인간은 자본주의 기계의 톱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 『카탈로니아 찬가』 11~13쪽

(※ 이하 별도 제목 없이 괄호로 표기한 쪽수는 모두 이 책.)

 

 

중앙 정부의 계급 연합(인민전선 정부)과는 다른 형태의 권력, 곧 노동계급과 농민 등 민중의 훨씬 급진적인 권력이 맹아를 드러내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스페인의 노동계급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민주주의>를 지키고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프랑코에 저항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저항과 병행하여 분명히 혁명적인 성격을 지닌 폭동이 일어났다-어쩌면 그들의 저항은 주로 그 같은 폭동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농민은 친파시스트적인 대지주의 소유지들을 접수했다. 산업과 교통수단의 집산화와 더불어 지역 위원회, 낡은 친자본주의적 경찰력을 대체하는 노동자 순찰대, 노동조합에 기반을 둔 노동자 의용군 등을 통하여 거칠게나마 노동자 정부를 세워보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지방정부가 혁명 위원회와 공존하는 지역도 있었다.… 스페인에서 벌어진 일은 사실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혁명의 시작이었다.” (68~71쪽)

 

 

하지만 인민전선 정부는 이러한 혁명적 분출을 억제하려 했다. 군부 쿠데타에 직면해 일사불란하게 병력을 동원하기도 지휘하기도 어려웠던 정부로서는 파시즘에 맞선 정파별 좌익 의용군과 노동대중의 힘에 한동안 의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권력 형성과 급진적 행동은 인민전선의 한 축을 이루는 부르주아지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실상 파시스트 쿠데타가 곧바로 정권 탈취에 성공하지 못하고 장장 3년에 걸친 내전으로 돌입하게 된 까닭은 각지에서 노동자들이 무장을 갖추고 군부에 맞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기 때문이었음에도, 인민전선 정부는 쿠데타 초기에 ‘무기를 달라’고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이를 내주는 것조차 꺼렸다. 이는 얼마 뒤 정부가 소련의 지원을 바탕으로 일정하게 통제력을 갖추게 됐을 때 노동계급을 무장해제시키며 탄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심지어 파시스트 쿠데타 세력과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그리고 노동계급의 혁명을 와해시키면서 부르주아지와 연합하는 선두에 다름 아닌 스탈린주의 공산당이 섰다는 사실은, 전선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피 흘리며 싸웠던 오웰을 격분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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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 [사진: wikipedia]

 

 

 

혁명을 억누른 ‘계급 동맹’

 

 

“소련을 배후에 둔 공산당은 전력을 기울여 혁명에 반대했다. 이 단계에서 혁명은 치명적이며, 스페인의 목표는 노동자 통제가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테제였다. 어떻게 공산주의자들의 의견이 <자유주의적> 자본가들의 의견과 똑같을 수 있는지…. 인민전선이라고 알려진 이 동맹은 본질적으로 적들 사이의 동맹이다. 이것은 한쪽이 다른 쪽을 삼키면 언제든지 끝나게 된다.… 나중에 우익 세력[인민전선 정부 내의 우익: 인용자]이 상황을 완전히 장악했을 때, 공산주의자들은 혁명 지도자들을 추적하는 일에 있어 자유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지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71, 78~79쪽)

 

 

이 무렵 공산당이 파시즘에 맞선 투쟁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진시키는 게 아니라 자본가계급과 연합해 ‘부르주아 민주주의 수호’로 제한하려 한 것은 비단 스페인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이 점은 다음 호에서 좀 더 살펴보겠다). 특히 파시스트 세력과 내전을 치르고 있던 스페인에서 이는 거대한 비극으로 귀결하는데,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수준을 이미 한참 넘어서 자신들의 해방을 스스로 쟁취해가던 노동계급은 파시즘을 분쇄할 가장 강력한 군대였다. 그러나 점차 실물화하던 노동계급 권력의 맹아를 짓누름으로써 인민전선 정부는 몰락을 앞당기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혁명적 정책으로 프랑코의 후방을 공격하는 것이 어려운-불가능하지는 않을지라도-일이었다[는 점이다: 인용자]. 1937년 여름, 프랑코는 정부와 비슷한 군대로 정부보다 더 많은 인구를 장악하고 있었다.… 프랑코의 영토 내에 있는 인민, 적어도 도시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들이 프랑코를 좋아했다거나 그를 원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인민전선 정부가 계속 우익 쪽으로 움직여가면서 정부의 우월성은 점점 빛을 잃었다.… 공산주의 정책의 전체적 경향은 이 전쟁을 평범하고 비혁명적인 전쟁으로 축소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전쟁에서는 인민전선 정부가 극도로 불리했다.” (94~95쪽)

 

 

오웰은 “소비에트 러시아라는 엄청난 위세를 등에 업고 세계의 노동자들에게 <민주적 스페인>이 아닌 <혁명적 스페인>의 이름으로 호소했다면 아마 큰 호응을 얻어낼 수 있었을 것”(94쪽)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우익에 맞서기 위해 부르주아지(혹은 자유주의자)와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노선에 반대했다. 이런 정치는 우익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정치적으로 각성하는 노동계급에 대해 ‘자본가들을 위협해선 안 된다’며 그 투쟁을 억제하고 무력화시킴으로써 오히려 우익을 돕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전기 스페인은 바로 그 길로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게다가 같은 시기 소련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대숙청의 폭풍이 목숨 걸고 전선을 지키던 스페인의 사회주의자들 앞에도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