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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영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지부장

 

 

민간업체에 내맡긴

건강보험 상담 업무…

직영화-직접고용은

모두를 위한 것

 

 

 

# 국민건강보험 상담 업무를 전담하는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3월 10일 다시 파업에 돌입했다. 지난 2월 25일 1차 파업을 멈추고 현장으로 복귀한 지 2주 만이다. 5천만 국민의 건강보험 관련 문의와 민원을 처리하는 이들은 정작 건강보험공단 직원이 아니라 외주 하청업체에 고용돼 있다. 가뜩이나 대부분 여성이자 하청 노동자로서 이중의 굴레를 겪어야 했던 이들은 ‘고객센터 직영화’를 요구하며 싸움에 나섰다. 정부와 사측의 묵묵부답 속에서도 이 노동자들의 투쟁은 꺾이지 않고 있다. 김숙영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지부장을 <변혁정치>가 만났다.

 

 

 

 

Q: 작년 10월에 “코로나와 여성노동”이라는 주제로 <변혁정치> 좌담회에 참석해주신 이후 거의 반년 만에 뵙게 됐어요.

 

 

그때 이후로 확 늙었어요. 이 흰머리 좀 보세요. 제가 원래 저혈압인데, 투쟁하면서 혈압이 정상이 됐어요. 사람들이 ‘병 고쳤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고객센터에서 일하기 전에는 유치원 교사도 해보고, 자영업도 해봤어요. 유치원 교사 일은 전공이 그쪽이다 보니 하게 됐는데, 일하는 건 좋았지만 큰애가 3학년일 때 관뒀어요. 어느 날 유치원에서 캠프를 다녀왔는데, 제가 없을 때 우리 아이가 동생이랑 놀다가 태권도학원 차를 긁었나 봐요. 그랬더니 그 태권도학원 하는 집 엄마가 우리 아이를 혼냈어요. 그 차에 긁힌 흔적이 많았는데, 그걸 우리 아이에게 ‘네가 다 이랬지’라고 몰아붙인 거죠. 우리 아이는 자기는 하나만 했다고 하는데도,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온 동네 사람이 둘러싸고 지켜보는 데서 혼낸 거죠. 속상하기도 했고, 다른 아이 보느라고 우리 아이 신경도 못 써준 게 너무 미안해서 제가 일을 관두게 됐어요.

 

그 이후로 경단녀(경력단절 여성)가 된 거죠. 그때 상담 분야에 관심이 있었는데, 건강보험 ‘고객상담’센터라고 하기에 상담과 관련이 있을 줄 알고 경험이 될 것 같아서 들어갔죠. 그런데 제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어요. 그래서 3개월 만에 관두려다 주변에서 말려서 계속하게 됐죠. 주변에 너무 힘들게 일하는 동료들이 있었어요. 퇴근한 지 5분도 안 돼서 뇌출혈로 쓰러진 동료도 보고, 관리자에게 찍혀서 1년 내내 고통받는 동료도 보고. 그때는 노동조합이 없어서 어찌할 줄을 몰랐죠.

 

제가 일반상담을 계속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도 싫고, 콜을 많이 받으려면 빨리빨리 끊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너무 싫었어요. 퇴근할 때가 되면 관리자가 계산기를 두드려요. 그러고선 ‘너 이제 5콜만 더 받으면 가산점 받는데 왜 벌써 가려고 하느냐’고 하죠. 연차 사용도 잘 못하게 했는데, 저는 일부러 한 달에 한 번씩 썼어요. 그때마다 불려갔죠. ‘나이도 많은데 철없이 연차를 쓴다’고. 그러다 어느 날 팀장이 ‘고객만족팀 일을 해보라’고 했어요. 민원이 너무 센 클레임 고객만 골라서 상담하는 부서였어요. 거기는 상담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고 별다른 간섭 없이 내 나름대로 고객들 성향을 파악해서 해결할 수 있다 보니, 저는 시키는 대로 하는 것보다 낫더라고요.

 

제가 노조활동 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사람들이 너무 놀랐죠. 노조 만들 때 주동자가 누구냐고 난리가 났었는데, 회사에서 끝까지 파악을 못 했어요. 나중에 퇴사한 분들도 전화해서 ‘너 이런 사람인줄 몰랐다. 응원한다’고 하더라고요.

 

 

 

 

Q. 어쩌다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셨나요?

 

 

2006년에 입사했는데, 일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개인정보를 엄청 많이 갖고 다양한 일을 하는데, ‘왜 이런 일을 일반 민간회사가 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고객이 물어보면 알아들을 수 있게 자세히, 천천히 설명해야 하는데 무작정 ‘콜을 빨리, 많이 받으라’고 하니까요. 그때는 이렇게 오래 다닐 줄 모르고 ‘그만두면 시민단체에 제보라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전화번호만 있으면 개인정보 조회가 다 가능하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이 직업이 꽤 오랫동안 직무능력이 쌓여야 하는 일인데, 회사가 노동자들을 가볍게 함부로 대하니까 사람들도 ‘하다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생각하고, 회사도 ‘싫으면 너희가 떠나라’는 식의 태도였죠. 2017년에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만들겠다고 해서 뭔가 바뀌겠거니 생각했는데, 국민연금이랑 근로복지공단 콜센터 쪽은 논의가 진척되는데도 건강보험공단은 소식이 없더라고요. 알면 알수록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주변에서도 ‘우리도 정규직 돼야 하는 거 아니야? 노조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의식이 생겼는데, 좀처럼 나서지는 못했어요. 처음에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하다 보니까 노조를 조직하게 됐고, 조직하다 보니 지부장까지 하게 된 거죠.

 

 

 

 

건강보험 개인정보를

민간업체에 내맡기는 현실

 

 

 

Q: 파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조합원들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파업을 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서로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건강보험공단이 우리가 상대하기에는 너무 큰 데다, 콜센터 노동자들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고 통제가 심했던 곳이라 ‘파업을 하지 않으면 우리 요구를 알리지도 못하겠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작년에 파업 준비하면서 코로나 때문에 교육이나 모임을 많이 못 했어요. 그래서 시작 전에는 우리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간부들도 엄청 고생 많았죠. 저도 그랬지만 가족들과의 문제를 한 번씩 겪어요. 일상이 무너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매일매일 주말도 없이 멀리 가서 며칠씩 있다가 오고, 몸도 망가지는 것 같고.

 

그렇게 준비를 했지만, 첫날 뚜껑을 열기 전에는 모르는 거잖아요. 많이 걱정했는데, 파업 첫날 다들 모인 걸 보고 엄청 감동이었어요. 파업 첫날인 2월 1일 전국에서 모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한자리에 모이지는 못했죠. 원주 본사 앞에 중앙대오가 있고, 지역별로 행진하면서 중간중간 견우직녀 만나듯이 스쳐 지나가게 기획했거든요. 그렇게 지나가면서 바람개비를 공단에 꽂는 퍼포먼스를 하고 모여서 구호도 외치다가, “저쪽에서 오는 동지들이 XX 지역 동지들입니다" 이런 식으로 만났어요. 조합원들이 나중에 하는 얘기가, 서로 마주치는 시간이 너무 짧고 경찰이 막아서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다들 너무 감동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부산지역 조합원들 같은 경우엔 5시간씩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차에서 음료수도 못 먹게 했어요. 그러느라 조합원들도 간부들도 엄청 고생 많이 했죠.

 

그리고 파업 중에 가족이 응원하는 편지글 읽기 같은 프로그램이 있어서, 남편이나 딸이 보낸 편지들을 읽었거든요. 그때 다들 많이 울었죠.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도 많아요. 남편 병간호해야 하는 분도 있었는데, 병석에 있던 그 남편분이 응원해주시기도 하고. 너무 감동적인 사연이 많죠.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 투쟁 일정 끝나고 물류센터나 편의점 같은 곳에 알바하러 가면서도 나오는 분들도 계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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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파업에서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파업할 때 저는 가장 좋았던 구호가 ‘콜센터 노동자의 노동가치를 인정하라’는 거였어요. 사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예전엔 대면으로 하던 많은 업무를 요즘에는 콜센터에서 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콜센터 업무를 중요한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죠.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가 모두 1,600여 명인데, 센터별로 남성은 10명 안팎이에요. 월급도 낮고, 사회적 인식도 이 일을 저평가하기 때문이지 않나 싶어요.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로 만나는, 눈에 안 보이는 노동자이다 보니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것 같아요.

 

이번 파업의 성과 중 하나는 시민들의 인식 변화랄까. 예전에는 전화 받다가 해결이 잘 안 되면 ‘너희는 공무원이니까, 책상머리에 앉아만 있으니까 우리가 하는 얘길 못 알아듣지’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공무원이 아니라 외주업체에 고용돼 있었다는 걸 알겠지 싶어서 속이 시원해요. 시위하다 보면 시민들이 잘 몰랐다고 하시면서 커피 같은 걸 사주고 가더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지금은 파업을 일단 마무리하고 현장에 복귀해서 준법투쟁을 하고 있는데, 곧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가 개편될 예정이에요. 그간 바뀐 적 없는 부과체계를 2018년에 1차, 2022년에 2차로 개편해요. 2018년 첫 개편 때 콜이 어마어마하게 몰렸는데,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상담사들을 교육한 게 아니라 공단에서 그냥 일방적으로 밀어 넣었어요. 상담노동자와 고객 모두 힘들게 된 거죠. 그때는 노동조합이 없었으니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 2022년에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가령 관련법이 좀 크게 바뀌면 아침에 일찍 출근시켜서 10분 동안 내용을 읽어줘요. 작게 바뀌는 건 그때그때 쪽지에 적어서 나눠주고. 코로나 때문에 저희 고객센터에서 질병관리본부 업무까지 했는데, 매일 뭐가 바뀌었어요. 그런데 쪽지로 적어주면 콜 받으면서 그 쪽지를 읽어야 하는데, 법이라 어려워서 집에 가서도 공부할 수밖에 없어요. 문제가 생겨도 회사에서는 ‘바뀐 거 나눠줬잖아’ 이런 식이고. 한 달에 한 번 시험을 봤는데, 공단에서 직접 문제를 냈어요.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공단이 그걸 제일 먼저 없애더라고요. 공단이 고객센터 노동자들을 직접 관리한다는 증거니까.

 

공공성을 위해 고객센터를 직영화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상담이 잘못되면 고객이 제일 피해를 보기 때문이에요. 업체가 하는 건 ‘코로나 때문에 어려우니 너희가 참아라’ 이런 식의 ‘정신교육’ 뿐이에요. 진짜 필요한 교육은 하지 않고.

 

건강보험공단 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 보면 개인적으로는 저희를 응원해요. 정규직 집행부는 고객센터 직고용을 반대하는데, 내부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정규직 노조 집행부 1번 공약이 ‘콜센터 직영화 반대’였어요. 30년이나 된, 우리보다 훨씬 오래된 노동조합이 그렇게 움직이는 게 마음 아팠죠. 콜센터 노동자를 직접고용한다고 해서 기존 정규직을 내보내고 우리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공부해서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막는 것도 아니고요. 같이 싸워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작년 10월부터 본사에서 1인 시위를 했는데, 이전까지 회의도 하면서 만났던 분들이 고개도 안 돌리고 지나가는 걸 보면서 ‘스스로 가두는구나’ 싶었어요. 정규직도 자신들에게 큰 문제가 생기면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이해받을 기회도 없이 공단의 방패막이가 돼서 이기적 집단으로 이용당하는 부분이 안타까워요. 사실 공단이 나쁘죠. ‘정규직 노조가 반대해서 직고용 못 한다’고 핑계를 대거든요. 저는 정규직이 우리가 싸울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콜센터 노동자의

노동가치를 인정하라”

 

 

 

Q. 최근 집단적인 여성노동자 투쟁이 많은데, 함께 연대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저는 집에서 아들 둘에 남편이 있고, 친정에도 딸은 저 혼자고 남자형제만 있었어요. 그러면서 느낀 건, 예전에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장이 돈을 벌어오면 어떻게든 먹고살 만했는데, 지금은 먹고사는 것만이 아니라 교육 같은 문제도 있고, 상대적으로 여성의 사회활동이 많아질 수밖에 없죠. 그런데 여성들이 일을 그만뒀다가 그나마 다시 들어가기 쉬운 곳이 마트나 청소, 콜센터, 요양보호사 같은 직종이에요. 대부분 저임금이고, 쉽게 해고하고.

 

이렇게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로서 임금은 낮고 처우는 열악하다 보니 ‘뭔가 해봐야 하는데 나 혼자서 될까?’ 하는 의식이 생기고, 함께 모여서 문제를 제기하고 투쟁하는 결과가 생기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앞으로 사회서비스 분야는 더 많아질 거고, 그쪽 분야에 여성 노동자들이 많이 진출해 있잖아요. 하지만 여전히 여성 노동자의 권리는 취약하고요. 그러니 코로나 이후 갈수록 더 투쟁이 활발해지지 않을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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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제가 여기서 15년 일하면서 느낀 건,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우는 게 노동자 입장에서 비정규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건강보험 자체의 중요성 때문이에요. 다른 공공기관 보면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로 전환하는 곳이 많은데, 그렇게 끝나면 사회적으로 손해예요. 사회가 발달할수록 의료복지가 중요한데, 그 기반은 건강보험 제도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 제도가 얼마나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인지 알리고,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고객센터의 역할이거든요. 최근 고객들이 부쩍 이런 얘길 많이 해요.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가 미국 같은 곳보다 좋은 건 알지만, 보험료가 자꾸 높아지니까 당장 너무 힘들어서 탈퇴하고 싶다’는 거죠. 이런 걸 보면서 ‘이 싸움은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다, 쉽지 않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상담하다 눈물이 펑펑 날 때가 많아요. 건강보험료 내기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듣다 보면요. 시민들이 같이 마음을 보태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함께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 만나는 것도 재밌고, 고객들과 통화하면서 어떤 사람일지 상상해가며 상담하는 것도 재밌어요. 주변에도 괜찮은 사람이 많은데, 자리를 못 잡고 떠도는 경우도 있어요. 전에는 예전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다른 데 가라, 여기는 30년 있어 봐야 남는 게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이 투쟁이 잘 돼서 좋은 일자리로 만들어 많은 사람이 여기서 오래 일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 혜연여성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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