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이슈┃‘MZ’의 분노,

‘공정성’이 시대정신?

 

 

‘투쟁 멈춰’?

타협부터 멈춰야 한다

 

민주노조운동,

2030 노동자들과 전진하기 위해

 

 

김한주┃금속노조 교육부장

이주용┃기관지위원장

 

 

 

최근 대기업 사무직과 IT업계에서 젊은 층이 주축을 이룬 ‘새로운’ 노조 건설 흐름이 부각되고 있다. 자본가들에게도 이들은 큰 관심사다. 가령 <조선일보>는 지난 4월 27일 자 1면 기사로 현대차그룹 사무연구직 노조 출범 소식을 다뤘는데, 그 외에도 기사들을 훑어보면 ‘MZ세대는 투쟁이나 파업보다 능력과 공정성에 입각한 각자의 성과 보상에 더 관심을 둔다’는 식의 ‘차별적 정체성’으로 이들을 묶어두려는 게 눈에 띈다.

 

이러다 보니 이른바 ‘MZ세대 노조’를 바라보는 노동운동 진영의 시각도 복잡하게 교차한다. ‘노동조합’으로 모이는 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공정성’이나 능력주의가 강조되는 데 대한 비판적 시선도 존재한다. 게다가 언론이 부각하는 건 상대적으로 고임금-고학력 혹은 대기업‧전문직에 집중돼 있다. 한편으론 위기의식도 있다. 과거 민주노조운동의 동력을 형성한 노동자층이 대거 정년을 맞는다. 예컨대 금속노조 조합원 약 19만 명 가운데 2018~22년까지 5년간 정년퇴직 누적 인원은 2만 명. 2018년 기준 조합원 40%가 50대인지라, 이후에도 매년 5~6천 명씩 현장을 떠난다. 하지만 이 공백을 메울 청년 조합원은 그만큼 유입되지 않는다. 청년 노동자 사이에서 계급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민주노조운동이 점점 소멸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근래 대기업 사무/전문직 노동조합 결성을 ‘특수 사례’로 간주하고 선을 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 가운데 능력주의 요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와 동시에 청년 노동자들이 불만을 품게 된 기저에는 그간 노조운동이 놓치거나 방기했던 중요한 문제들이 쌓이면서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즉, 기존 노조운동이 노동계급 청년층의 대표성을 얻는 데 무엇이 부족했는지 짚어보면서, 현재 언론의 관심 밖에 있는 수많은 청년 노동자에게 민주노조운동이 뻗어나갈 계기로 삼아야 한다.

 

미리 밝혀두지만, 우리는 노조가 투쟁을 자제하면서 ‘온건한 이미지’로 청년을 조직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청년 노동자를 ‘겉모습으로 유인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다. 관건은 ‘투쟁이냐 노사협조냐’가 아니라, 어떤 요구를 걸고 얼마나 제대로 투쟁하느냐의 문제다.

 

 

 

‘정의선 씨가 셀프 승진하고

자기 연봉 올릴 동안…’

 

최근 노조를 결성한 대기업 사무연구직의 요구는 ‘공정한 성과급’에 국한되지 않는다. 실제 그들의 분노는 상당 부분 사측을 향한다. 회사 이익이 늘어도 자신들의 임금이나 노동조건은 개선될 기미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사무연구직 노동조합은 지난 3월 노조 설립을 준비하며 직원들로부터 300여 개에 달하는 설문조사 답변을 받았다. 여기에는 각자 느낀 가장 심각한 문제의 ‘타입’이 적혔다. 종합해보면 ‘제도 개선’이 54개로 가장 많았고, ‘성과급 기준’ 42개, ‘야근’ 19개, ‘보상 기준’ 18개, ‘조직문화 개선’ 16개, ‘포괄임금제 폐지’ 14개, ‘공정성’ 13개 등이었다. ‘과한 생산직 노조 금지’를 꼽은 답변은 4개에 그쳤다.

 

가장 많은 불만이 쏟아진 ‘제도 개선’ 문제에 관해서는 구체적 응답도 여럿 있었다. “기존 노조 단체협약만 수평 전개했어도 제도 개선에 큰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고과별 임금 차별을 금지하고, 휴일, 연월차에 동일 적용했으면 좋겠다.” “별정직으로 8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장직도 아니고 사무직도 아닌 사각지대에서 교대근무, 휴일근무 없이 가정을 지킬 수 없는 한 집안의 가장입니다. 월급으로는 부족해 마이너스 통장으로 살다가 성과급으로 갚는 삶을 8년째 살고 있네요.” “기본급 180만 원, 상여까지 해서 실수령액 300만 원도 안 됩니다. 성과급 500% 이런 것보다 기본급 인상이 우선입니다.”

 

민주노조운동은 이런 분노를 계급적으로 끌어들였어야 했다. 현대차 사무연구직 노조는 블라인드에 게시한 ‘사무직노조 준비’라는 글에서 재벌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이 글은 ‘작년 말 정의선 씨는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으로 자체 승진했다’는 말로 시작하면서 현대차 이윤이 총수일가에게만 돌아갔다고 지적한다. 사무연구직 노조 오픈채팅방에서는 정의선 회장이 ‘플라스틱 사용은 줄이고, 업사이클링 제품은 늘리고’라는 문구와 함께 등장한 캠페인 사진을 ‘직원 임금은 줄이고, 내 연봉은 60억 올리고’라는 문구로 바꿔 공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존 노동조합은 신입사원 임금 삭감이나 노동조건 차별을 방관했다. ‘회사 수익구조가 개선되는데 왜 신입사원 연봉은 줄이냐’는 원성이 터져 나오고, 연봉 삭감이 탄력적으로 가능한 성과급에 불만이 쏟아진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는 근본 원인을 ‘낮은 기본급 비중’에서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임금체계를 복잡하게 만들어 유연화하려는 대기업 자본에 맞서 싸우기보다, 사측의 전략을 ‘적당히’ 수용하면서 작년에는 아예 임금 동결에 합의하는 등 타협적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런 투쟁은 현실화하지 못했다. 신규 노동자 임금‧노동조건을 상향해 격차를 해소하고 기본급 확대를 핵심 과제로 제기하는 투쟁은 민주노조가 마땅히 벌여야 할 싸움이지 않은가.

 

126_25.jpg

△ 2018년 현대차 노사 단체교섭. [사진: 금속노동자]

 

 

 

직무급제 전환이

‘MZ를 위한 대안’?

대다수 청년 노동자는

임금체계 자체도 없어

 

한편, 자본가들은 이런 흐름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발 빠르게 이용해 ‘호봉제 폐지와 직무급제 도입’을 ‘대안’이라고 선전한다. ‘MZ세대는 능력과 업무에 따라 평가받는 직무급을 선호한다’는 주장과 함께. 그렇다면 노조운동이 ‘청년층의 호응’을 얻기 위해 직무급제로의 임금체계 재편을 받아들여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직무급제가 업무별 차등 임금으로 노동자 간 격차를 심화‧고착화하고 대다수의 임금을 체계적으로 낮게 속박한다는 점은 일단 차치하겠다. 문제는 현재(2020년 기준) 이 나라 사업장의 60%는 아예 기본급 운영체계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2015년에는 46.6%였다).1 그나마 호봉제라도 있는 곳은 전체의 14%에 그친다(2015년: 24.5%). 노조가 있거나 300인 이상 사업장이면 대부분(95%) 어떤 형태든 기본급 운영체계가 있지만, 300인 미만이거나 노조가 없는 곳은 이 수치가 40%를 밑돈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 따르면, 노조가 조직된 사업장은 전체의 4.5%에 불과하며(100인 미만 사업장은 4.2%, 300인 미만도 4.5%로 유사) 제조업에서도 이 비율은 고작 2%다.

 

결국 ‘MZ세대는 직무급을 선호한다’는 주장은 자본의 입맛대로 현실을 재단한 것일 뿐이다. 청년이든 중년이든, (특히 중소 규모나 무노조 사업장의) 대다수 노동자에겐 안정적 임금을 확보할 장치조차 없다. 이 점에서 우리는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오민규 동지가 페이스북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대목에 공감한다.

 

“‘노사담합’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곳 역시 기껏해야 재벌 원청사의 생산직 부문입니다. 그 밑의 하청 연쇄사슬로 들어가면 노동자 임금 못 빼앗아 안달인 사용자들로 가득 찹니다. 직무급제 논의 따위가 끼어들어올 여지가 단 0.00001의 공간도 없어요.… 논의가 제대로 된 방향을 가지려면,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책임이 강제되어야 합니다. 도급 노동에 대한 적정임금 책정 의무를 재벌 원청사에게 지우고 말이죠. 지금 현대차 사무직 노동자들이 성과 분배를 주장하는 그 큰 파이의 이윤들, 그건 현대차 노동자들만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 아닙니다. 수많은 하도급 노동자들의 피땀, 그들을 착취한 결과물이 절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걸 MZ세대에게만 보장해주잔 논리 자체부터 말이 안 됩니다.”

 

민주노조운동이 착목할 지점도 여기다. 이것만으로 청년 노동자층을 모두 포괄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여기서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다단계 공급사슬 중간과 말단에 있는 노동자들의 안정적 임금 책정을 원청이 책임지게 강제하는 투쟁을 만들고 앞장선다면, 그간 노조를 만들 엄두도 내기 어려웠거나 스스로 ‘X소기업’이라 자조하며 열악한 조건에 불만을 품었던 하청/중소 사업장 청년 노동자들에게도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으로 한발 다가갈 수 있다. 자본의 천문학적 이윤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노동자들의 호응도 끌어낼 수 없는 ‘사회연대기금’(혹은 ‘정규직 양보’ 등 각종 ‘사회적 합의’) 같은 시혜적 떡고물이 아니라, 이런 투쟁이야말로 진정한 연대이자 계급대표성을 확보할 지름길 아닐까.

 

 

 

‘이미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청년들의 가장 큰 고통이기도 한 취업난과 불안정노동에 관해서도 민주노조운동의 역할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여기에는 ‘국가책임 일자리 운동’2을 비롯해 근래 불안정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는 플랫폼‧물류산업 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 투쟁 등 여러 과제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를 제기하고자 한다.

 

예컨대, 지금도 제조업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18.8%, 그중에서도 상용직의 24%가 몰려 있는3 비교적 ‘양질의 일자리’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그 정점에 있는 완성차, 특히 현대차‧기아‧한국지엠은 단체협약을 통해 정년퇴직 등 결원 발생 시 신규채용이나 충원을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의 구조조정 압력 속에 노조는 신규채용 요구를 강하게 내세우지 않거나 암묵적으로 포기하고 있다. 정년퇴직이 대거 발생해도 신규채용 없이 인원 감소에 합의한다면, 아무리 ‘청년사업’에 열을 올린들 당장 현장에 청년 노동자 유입이 차단되거나 급감한 상태에서 노조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부터 천문학적 사내유보금으로 신규채용을 대폭 확대하라고 요구하며 싸울 때, 현재 외면당하고 있는 수많은 청년 예비노동자들의 분노와 공명하며 조금씩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

 

사실 미디어가 말하는 ‘MZ세대 노조’는 명명부터 틀렸다. 이들이 광범한 청년 노동자층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언론의 조명을 받는 건 대기업 입사라는 최종 경쟁을 따낸 극히 일부의 경우다. 출발선부터 달라 경쟁에서 낙오하거나 애초 경쟁에 진입하지도 못한 대다수 청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단지 확대실업자 10명 중 3명이 청년이고, 지니계수가 가장 높은 세대라는 식의 통계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들 대다수 청년 노동자의 목소리를 결집하고 자본주의에 맞선 한목소리로 내세워야 민주노조운동의 지속도 가능하다.

 

126_26.jpg

△ 올해 노동절을 앞두고 민주노총이 '방송국 개국 이벤트'로 개최한 게임대회.

 

 

그런데도 지금 청년을 바라보는 운동 진영의 오판은 여전하다. 민주노조운동이 계급적으로 전진해야 할 과제는 제쳐두고, 겉으로 ‘청년과 공감하는 노조’, ‘구식에서 벗어난 트렌디한 노조’로 접근하는 방식 말이다. 비근한 예로, 민주노총은 지난 4월 30일 방송국 개국 행사로 게임대회를 열고 여기에 500명이 참여했다고 청년사업 ‘흥행’을 알렸다. 2021년 민주노총 청년사업 계획을 보면 ‘청년사업 워크샵’, ‘청년사업 담당자 연석회의’, ‘청년 간부 육성 사업’, ‘조직 문화 개선 사업’ 등이 주를 이룬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다종다양한 ‘청년사업’이 아니라, 실제 청년 노동자들의 분노를 수렴할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투쟁이다. 노동운동의 조직과 변화는 겉모습이 아니라 계급적 관점에 입각한 진단과 성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1 노동부, <2020년 6월 기준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

 

 

2 <변혁정치> 이번 호 바로 앞의 기사 및 124호(4월 1일 자) 기사 “국가책임 일자리 운동을 제안하며” 참고.

 

 

3 통계청, <2020년 하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취업자의 산업 및 직업별 특성>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