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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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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6.17 21:10

혁명과 개량,

선거 전술과 계급 정치

 

 

남구현┃경기

 

 

 

이전 연재에서 자본주의 국가가 형식적으로 ‘계급 중립적’ 외양을 띠며 피지배계급의 정치적 진출이 이뤄지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급지배를 가능케 하는 구조를 내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변혁정치> 126호(5월 15일 자) 기사 “무엇이 국가의 계급성을 은폐하는가” 참고). 자본주의 국가의 이런 이중적 성격은 자본주의 모순을 지양하는 데 있어 개량주의 정치(곧 ‘자본주의 틀 내에서 체제 전환이 가능한가’의 문제)의 가능성과 한계를 둘러싸고 논란이 지속하는 원인이 됐다.

 

이번 글에서는 이 역사적 논쟁을 되짚으면서, 오늘날의 현실에 비춰 몇 가지 쟁점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개량주의를 둘러싼 논쟁

 

19세기 말~20세기 초,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나 레닌(1870~1924) 등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은 독일 사회민주당의 베른슈타인(1850~1932)이나 카우츠키(1854~1938) 류의 개량주의에 대한 비판을 주도했다. 룩셈부르크는 당시 대중의 자발적 투쟁 열기를 담아내지 못하던 사회민주당 지도부가 거대한 관료주의에 빠져 있음을 보며 개량주의 정치를 비판했고, 레닌은 노동자 정치세력이 경제투쟁에 매몰되어 혁명적 정세에 정치적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경제주의를 비판했다.

 

보통 룩셈부르크가 ‘대중의 자발적 의지’를 강조하고 레닌은 ‘혁명 사상에 충실한 전위 조직으로서 정당의 의식적 지도’를 강조했다며 ‘자발성 vs 의식성’으로 대비해 둘 중 하나를 택하는 방식으로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룩셈부르크가 자발성에 매몰되어 의식성을 도외시한 건 아니었다.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부는 대중의 자발적 경제투쟁이 총파업 등을 통해 혁명적 정치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고 ‘제도권 진출’이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대중투쟁을 관리‧통제했는데, 룩셈부르크는 이러한 ‘잘못된 의식성’을 비판했던 것이다.

 

레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차르(러시아어로 ‘군주’를 뜻함)의 폭압 정치에 맞서 대중의 경제적 불만이 전제군주정 자체에 대한 분노로 정치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동세력은 이런 대중적 움직임을 경제투쟁에 묶어두려 하거나, 투쟁하는 대중의 꽁무니나 쫓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조류를 공격했다는 점에서 레닌 역시 대중의 자발성을 무시하고 의식성만 강조했던 게 아니다.

 

물론, 룩셈부르크는 총파업을 강조했고 레닌은 혁명정당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에 관해서는 사회민주당의 제도정치 진출이 허용되며 대중투쟁을 관리했던 유럽과, 애초에 정치적 자유를 극심하게 억압했던 러시아의 역사적 조건이 달랐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룩셈부르크와 레닌 모두 ‘대중의 자발적 경제투쟁이 혁명적 정치투쟁으로 상승‧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 점에서 공통적이었으며, 당시 러시아의 1917년 10월 혁명과 독일의 1918년 11월 혁명으로 이어진 혁명적 정세가 논쟁의 배경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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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말 ~ 20세기 초, 혁명적 맑스주의의 입장에서 개량주의 비판을 주도한 레닌과 룩셈부르크. [사진: wikipedia]

 

 

이후 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끝나고 장기호황을 거친 1970년대 논쟁에서 다시금 개량주의 비판이 등장했다. 서구의 복지국가 혹은 사회국가적 발전이 ‘자본주의 중심부에서의 사회적 합의주의’와 ‘주변부에서의 전쟁 및 초과착취’에 기초했다는 점에서 개량주의가 다시 쟁점이 된 것이다. 68혁명과 맞물려 진행된 이 논쟁은 주로 복지국가의 환상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했다. 복지국가는 재생산 영역에서의 재분배에 국한되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본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며, ‘복지국가를 통한 개량주의 정치가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 국가가 경제로부터 얼마나 자율적일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다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며 민영화와 노동유연화, 복지 삭감이 대대적으로 시도되면서 ‘복지국가 위기론’을 중심으로 쟁점이 바뀌었다. 이후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하고 현실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면서 자본주의 지구화로 모순이 심화하는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저항도 지구적으로 확산했다. 다만, 그 저항의 내용은 연금 개악 저지나 긴축재정 반대, 일자리 확보와 노동유연화 저지 등 생존권 확보가 주를 이뤘다.

 

 

 

대중투쟁과 혁명운동,

어떻게 만날 것인가

 

한국에서는 자본주의 발전이 압축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 앞의 쟁점들이 뒤섞여 나타났다. 1980년대까지는 제국주의 문제와 함께 군부 독재와 자본주의 모순을 보는 관점, 또 운동 주체와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두고 한국 사회 성격 논쟁과 운동 노선 논쟁이 있었다. 민주화 이후 1990년대부터는 신자유주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노동과 복지 문제를 둘러싸고 사회적 쟁투가 벌어졌다. 오늘날에는 비정규직 양산과 보편 복지 등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는 가운데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최저임금 인상이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의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자본의 공세가 수십 년간 지속하면서 생존권을 방어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문제는 이런 투쟁과 혁명운동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을 세우는 행태다. 한편으로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이러한 투쟁을 ‘개량 혹은 개혁을 쟁취하는 투쟁’으로만 국한하고 정치투쟁으로의 발전을 가로막거나, 그 반대로 이런 일상적 대중투쟁 자체와 거리를 두며 모종의 ‘순수한’ 혁명적 정치운동이 가능하다고 믿는 편향이 그것이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자본주의 위기가 장기화한 데다 코로나 확산까지 덮치면서 생존의 문제가 악화하는 시기로, ‘개량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뒤에서 언급하듯, ‘개량’과 ‘개량주의’의 차이에 유의해야 한다)의 의미 역시 그에 맞게 재설정해야 한다. 임금과 노동, 여성, 환경, 소수자 문제 등을 둘러싸고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대부분의 투쟁은 일차적으로는 해당 문제에 관한 개량 혹은 개혁을 쟁취하려는 성격을 띤다. 혁명적 정세는 진공 속에서 뜬금없이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계기마다 터져 나오는 이러한 투쟁과 더불어 그 속에서 이를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사회주의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에 기반한다. 개량주의의 문제는 ‘개량 투쟁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개량 투쟁을 절대화하면서 정작 질적 전환이 일어나는 혁명적 정세에서는 급진적 진전을 가로막는다는 점에 있다. 가령,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게 부분적 개량으로 근본적 모순을 은폐하는 식이다.

 

이는 정치 영역에서 ‘선거나 의회정치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선거나 의회정치 참여는 정치 영역에서의 개량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고전적으로는 ‘평화적 이행의 가능성’과 ‘폭력적 봉기의 필연성’을 두고 논쟁이 거듭됐다. 예컨대 맑스와 엥겔스는 당시 상대적으로 의회민주주의가 발전한 영국 같은 경우 ‘평화로운 이행의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부르주아 의회정치에 대단히 비판적이었으며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출산의 고통은 피할 수 없다’는 진술도 남겼다. 마치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옳을까?

 

한국에서도 선거 참여에 대해 개량주의라고 비판하는 입장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슬로건 아래 제도권 진출을 시도한 입장으로 크게 나뉘어왔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양자 모두 결함을 드러냈다. 일단 ‘선거 무용론’에 관해 말하자면, 주기적 선거로 운동의 성과를 보수 야당(때로는 여당)이 가져가며 개혁 실패와 역사적 반동을 반복하는 과정에 무기력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다른 한편, 제도권 진출을 시도한 흐름은 부르주아 세력처럼 ‘명망가 중심의 정치’로 변질되는 동시에 노동계급 정치를 방기하면서 민주당 세력의 주도권에 포섭되는 것으로 귀결했다.

 

앞에서 ‘개량주의에 빠지지 않는 개량 투쟁’의 필요성을 지적했는데, 제도정치에 관해서도 ‘선거주의에 빠지지 않는 선거 대응’이 요구된다. 선거 전술이 노동자 정치의 전부가 아님은 분명하다. 총파업을 위시한 공장의 정치, 집회 및 시위 등 가두의 정치는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제도정치가 아니라 항쟁을 통해 해결책을 찾은 우리 역사에서 위력을 발휘해왔다. 정치의 연장선에서 물리적 충돌은 피할 수 없는 내재적 속성이고, 세계사에서 모든 민중항쟁은 지배자들의 폭력에 의해 학살로 끝나든지 이를 꺾음으로써 승리를 쟁취하든지 어느 하나로 귀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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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량주의의 문제는 '개량 투쟁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개량 투쟁을 절대화하면서 정작 질적 전환이 일어나는 혁명적 정세에서는 급진적 진전을 가로막는다는 점에 있다. 가령,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게 부분적 개량으로 근본적 모순을 은폐하는 식이다." [사진: 노동과세계(백승호)]

 

 

 

노동계급 독자성

 

예전 연재에서 우리는 19세기 프랑스 계급투쟁 역사를 돌아보며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었다. 새로 등장한 부르주아지는 구질서 봉건세력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우는 과정에서 왕당파에 맞서 ‘공화주의’를 내세워 대립했으나, 그 ‘새로운 공화국’은 노동계급에 적대적이었다(<변혁정치> 122호(2월 15일 자) 기사 “계급으로부터 중립적인 정치는 없다” 참고). 공화주의는 형식적 민주주의라는 틀 내에서 노동계급을 억압하는 우익의 이데올로기가 됐다. 한편,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자 정치’를 자처했으나 개량주의에 빠져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기득권을 지켰으며, 나아가 ‘제3의 길’ 노선을 채택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하고 노동유연화에 앞장섰다.

 

한국에서도 수차례 항쟁의 역사에서 ‘개혁’을 부르짖으며 등장한 민주당 세력은 번번이 노동자에게 등을 돌렸다. ‘촛불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권도 예외가 아니다. 촛불항쟁 당시에는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적폐를 청산하고자 하는 대중적 요구가 분출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에는 ‘검찰개혁’ 외에는 모든 게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만병통치약’처럼 얘기하던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숱한 권력형 비리를 제쳐두고 전교조 해직교사 채용 문제를 ‘1호 수사 사건’으로 선정했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유럽이나 ‘사회주의 모국’을 자처했던 러시아, 그리고 한국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진전시키려는 자와 더 이상의 진전을 가로막고 현 상태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자 혹은 거꾸로 되돌리려는 자들이 쟁투를 벌여왔으며, 그 속에서 각 계급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표현했다. 지금까지 역사는 혁명과 그 성과의 찬탈, 왜곡 그리고 반동을 되풀이하며 조금씩 진전했다. 역사를 진전시키려는 세력이 무력화될 때 역사는 후퇴했다.

 

노동계급 정치라는 관점에서 우리는 역사로부터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구시대의 잔재가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나는 것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구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에 멈추지 않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계급은 다른 계급에 기댈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독자 정치를 펼쳐나가야 한다. 새로운 사회를 기획하고 실현할 정치적 주체를 형성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렇지 못할 때 노동자들은 하나의 대오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개약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리고 지배계급은 이를 각개격파한다). 정규직/비정규직, 대사업장/중소사업장, 남성/여성, 정신노동/육체노동 등의 차이를 넘고 업종과 지역을 넘어 하나의 ‘계급’으로서 정치적 대응을 시작할 때, 노동계급은 전체 사회를 책임지는 보편 계급으로 상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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