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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8.16 20:02

사회주의 정치는

무엇일까?

사회주의와 계급

 

 

남구현┃경기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모순을 지적하며 노동자 입장에서 반(反)자본주의 정치를 표방하는 사상적 조류라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붙인 다양한 조류, 즉 초기 공상적(유토피아적) 사회주의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주창한 과학적 사회주의, 이를 이어받은 동구/서구 사회주의의 여러 조류와 지금 시기 새로 주목받는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 또는 유럽의 새로운 좌파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 정치는 여러 나라에서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조건의 차이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됐다. 이들은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지배에 반대한다는 성격을 공통으로 갖고 있다. 곧, 세계사적으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반대물이다.

 

그동안 이 지면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와 정치에 관한 문제를 다뤘다. 요약하면, 자본주의 국가는 마치 사회 전체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처럼 계급 중립적 외양을 취하고 있으나, 실상 자본주의에서 각 계급의 서로 충돌하는 이해가 정치적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지배계급의 이해가 내용적으로 관철된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노동계급의 독자적 정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초점을 ‘사회주의 정치’로 돌려보고자 한다. 사회주의가 진정 해방을 향한 기획이려면 사회주의 정치는 자본주의와 분명 달라야 하고, 더 우월해야 한다. 이 점에서 ‘현실 사회주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 앞에 사회주의를 진정한 대안으로 내놓기 위해, 과거의 뼈아픈 경험에서 교훈을 얻고 미래의 사회주의는 같은 잘못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맑스주의의 이상과 달리 소련을 위시한 현실 사회주의에서 국가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비대해졌으며, 비밀경찰이 사회 구성원을 사찰했다. 물론 혁명 이후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탈 위협이 상존했기에 그에 대처해야 한다는 점에서 거대한 국가의 필요성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동구권 사회주의 몰락은 제국주의 침탈 때문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봉기로 촉발됐다. 공산당이 배타적으로 지배하던 국가를 노동자 대중이 배척한 것이다. 노동계급은 새로운 사회의 주체로 선 것이 아니라 객체화됐고, 당과 국가는 절대화했다. 계급은 사라지지 않았고 새로운 형태의 지배가 등장했으며,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폐지됐다. 가령,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은 홍콩 시위 탄압에 이어 최근 미얀마 항쟁에서 드러나듯 군부 쿠데타 세력을 비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가의 소멸과 민주주의 완성 같은 맑스주의 주창자들의 관점은 잊혔다.

 

 

 

맑스의 공산주의

 

맑스는 자신의 입장을 ‘과학적 사회주의’로 칭하며 다른 사회주의 조류와 구분했다. 그의 최대 공적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① 자본주의를 역사 유물론 관점에서 분석했다. 즉,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등장한 여러 사회 형태 가운데 하나로서, 영구불멸하는 체제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맑스는 자본주의를 마치 인류의 유일한 생산양식인 것처럼 역사에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당대 부르주아 학자들을 비판했다.

 

②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성(differentia specifica, ‘종차’(種差)라고도 번역한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잉여가치(자본가에게는 ‘이윤’으로 나타남) 범주를 최초로 명확히 규정했다. 보통 맑스가 ‘노동가치설을 주장했다’고 하지만, 실제 맑스의 공적은 리카도를 비롯한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노동가치설을 비판하면서 잉여가치와 착취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켜 자본주의의 본질을 규명한 데 있다.

 

③ 나아가 맑스는 자본주의 모순을 지양하려는 노동계급 투쟁을 ‘계급 없는 사회’로의 전망 속에 배치했다. 당시의 계급투쟁, 그리고 무엇보다 파리코뮌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그는 혁명운동이 계급 지배 자체의 종식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봤다(‘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로 평가받는 파리코뮌에 관해서는 <변혁정치> 125호(4월 15일 자), 126호(5월 15일 자), 127호(6월 1일 자)에 연재한 “파리코뮌 150주년” 기획 번역(총 3회) 참조).

 

맑스가 제시한 공산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모순을 지양하고 계급 차이가 사라진 사회를 의미한다. 자본주의 모순이 기본적으로 타인 노동에 대한 사적(私的) 전유, 곧 착취를 통해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라 할 때, 착취가 사라진 사회(공산주의)에서 모든 사회구성원은 노동자로서 자신이 일한 만큼 그 노동량을 계산한 증서(화폐형태인 임금이 아니다)를 받아 소비재를 획득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각 생산자는 - 공제 이후에 - 그가 사회에 기여한 만큼 돌려받는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업적에 따라 배분받는’ 원칙이다. 각자는 자기가 일한 노동시간(사회적 필요노동시간으로 측정)만큼의 증서를 받고 그만큼의 소비품을 얻는다.

 

 

 

* Marx, Kritik des Gothaer Programms(<고타 강령 비판>), MEW19, 20쪽. 이 대목에 관해 ‘모두가 노동자로서 자신이 기여한 만큼 돌려받는다’는 부분만 읽고 ‘맑스가 노동능력이 제한된 장애인 등에 대해서는 분배에서 제외시켰다’고 비판하는 학자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구절 바로 앞에서 맑스는 ‘사회적 총 생산물에서 일정 부분을 공제한 후에 분배’한다고 지적했다. 즉, △사용된 생산수단의 대체비용 △생산 확장을 위한 부분 △자연재해 등을 대비한 예비 및 보험기금 따위를 일단 공제한 후에 나머지 몫을 소비품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이 중에서도 △직접 생산에 소요되지 않는 일반 행정비 △학교, 병원 등 사회적 필요 충족을 위한 부분 △노동 불능자를 위한 기금 등을 일단 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은 노동자가 생산한 것이므로 전부 돌려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맑스가 ‘모두 돌려받는 것은 아니’라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주장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공산주의 원리가 온전히 관철되지는 않는다. 착취자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 개인적 재능이나 업적 차이에 따라 어떤 사람은 다른 이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맑스는 이를 ‘공산주의 사회의 초기 단계’로 보았다. 반면 ‘공산주의 사회의 발전된 단계’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노동 분업 아래 개개인을 노예적으로 종속시키는 것과 함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대립이 사라진 이후에는, 노동이 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생활에서 첫째로 필요한 것이 된 이후에는, 개개인의 다양한 발전과 더불어 그들의 생산력이 발전하고 공동의 부의 원천이 넘쳐흐르게 된 이후에는 - 그때에는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협소한 지평을 뛰어넘을 수 있으며, 사회는 자신의 깃발에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능력에 따라, 누구에게나 그의 필요에 따라!’**

 

** 앞의 책,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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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arxists Internet Archive]

 

 

 

무계급 사회의 전망과

‘현실 사회주의’

 

맑스는 공산주의 사회를 ‘모든 구성원이 노동자가 됨으로써 계급 자체가 사라진 무(無)계급 사회’로 설정했다. 이와 함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 ‘혁명적 변혁의 시기’를 상정했고, 이 이행기에 해당하는 국가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개념화했다. 자본주의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봉건적 잔재가 사라지기까지 새로 등장하는 계급과 구시대의 잔재로 남아있는 계급이 혼재하며 정치적 격동기를 거친 것을 본 맑스는 부르주아지가 몰락한 후에도 계급이 남아 있는 한 도래할 사태를 예견하며 계급 지배 자체가 사라질 때까지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지배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무계급 사회로의 전망을 지켜내려면, 계급적 관점은 자본주의 이후에도 견지해야 한다. 부르주아지가 사라진다고 해서 모든 계급이 자동으로 철폐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 새로운 지배계급(관료층, 소련에서는 ‘노멘클라투라’라고 불린 고위 간부나 특권층)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계급이 남아 있으면 계급 간 쟁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역시 현실 역사가 보여주었다.

 

*** 쁘띠부르주아적 요소에 대한 레닌의 지적은 동구 사회주의 몰락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쁘띠부르주아적 혼란의 요소(이는 모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우리 혁명에서 농촌의 쁘띠부르주아적 성격과 후진성, 그리고 반동적 전쟁의 결과 때문에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가 소비에트에도 그 자취를 남길 수밖에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소비에트와 소비에트 권력의 조직을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 한다. 소비에트 성원을 “의원님” 또는 관료로 변형시키려는 쁘띠부르주아적 경향이 존재한다. 우리는 소비에트의 모든 성원을 실제 통치사업에 끌어들임으로써 이런 경향과 싸워야 한다.’ Lenin, Die nächsten Aufgaben der Sowjetmacht(<소비에트 정부의 당면 임무>), LW27, 263~264쪽.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그 사이의 이행기를 설정한 것은 초기 맑스주의자들에게 공통적이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회주의 국가들은 아직 이행 과정에 있었다. 그러나 동구 사회주의에서는 공산주의 첫째 단계를 ‘사회주의’로 부르면서 스스로를 그 단계로 구분했다. 단순히 단계를 구분하고 이름을 붙인 데서 끝난 게 아니다. 한편에서는 스스로를 ‘전(全)인민의 국가’라며 ‘무계급 사회에 도달했다’고 선포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생산양식론’을 들고나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마치 서로 다른 생산양식인 것처럼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사회주의 ‘단계’를 세분화하면서 해당 사회가 어느 단계까지 갔는지도 논란이 됐다. 이 가운데 많은 논쟁이 ‘해당 사회의 발전 양상을 얼마나 잘 드러낼 것인가’ 혹은 ‘공산주의를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계급사회 요소를 어떻게 변호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지금은 현실적 의미를 상실했다. 한편 오늘날까지도 현실 사회주의권에 대해 ‘공산주의 단계까지 이룩한 사회’라거나 ‘사회주의의 발전한 단계’라는 주장부터 ‘자본주의 국가’ 혹은 ‘변질한 노동자 국가’로 보는 입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견해가 혼재하고 있다.

 

현실에서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국가들은 대체로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중심부가 아니었으며, 반(反)제국주의-반(反)봉건의 과제를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전통적 자본가계급 없이 사회를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할지라도 발전한 자본주의를 능가하는 새로운 사회의 면모를 보여주지는 못했으며, 무계급 사회의 전망을 열어가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하고 대중의 저항이 확산하면서 새로운 정치가 요구되는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사회주의’라는 트라우마가 역사의 진전을 주저하게 만드는 오늘날이야말로 근본적 평가를 통해 과거의 잘못된 관점이나 관습, 환상을 넘어 사회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야 한다. Ad Fontes(‘근원으로 돌아가자’는 라틴어 문구로, 중세 암흑기에 근대를 열어간 개혁의 신호탄 같은 표현이었다)! 앞으로 이 지면에서는 맑스주의 초기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현실 사회주의의 경험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과 명령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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