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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

가격 인상과

백신 불평등

 

‘악마의 맷돌’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내맡겨진 백신

 

 

안종호┃강원(내과 전문의)

 

 

 

백신 불평등과 양극화

 

지난해 12월 8일 영국이 세계 최초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후, 올해 9월 11일 기준 전세계 코로나19 백신 접종 수는 57억 건에 달한다. 얼핏 보면 백신 접종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듯하다.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는 60~70% 이상의 접종률을 보이고, 중동의 석유 부국 아랍에미리트는 무려 접종률 90%를 자랑한다.

 

하지만 아프리카 상황은 전혀 딴판이다. 부룬디와 에리트레아에서는 백신 접종이 시작되지도 않았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성인 0.01%만 접종을 완료했고, 탄자니아는 0.37%, 나이지리아는 0.69%, 이집트는 약 2% 정도에 불과하다(아프리카는 아니지만, 베트남 역시 접종률이 2% 남짓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 백신 접종에서 불균등과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국제 통계 사이트 <아워 월드 인 데이터 Our World in Data>에 따르면, 지난 8월 17일까지 세계 인구 가운데 31.7%가 백신을 1회 이상 접종했다. 뒤집어 말하면, 세계인 10명 중 7명은 아직 백신을 한 번도 맞지 못했다는 뜻이다. 8월 24일 AFP 공식 통계에 의하면, 세계은행 기준 고소득 국가의 백신 접종은 100명당 평균 111회를 기록했지만, 저소득 국가에서는 2.4회에 불과했다.

 

이렇듯 백신 접종의 심각한 양극화와 불평등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주요국 지도자들에게 ‘코로나19 백신의 공급 불평등 문제를 해소해달라’고 재차 요구했고, 몇몇 선진자본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는 ‘부스터 샷’(추가 접종)을 올해 말까지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18일 미국 보건복지부는 “다음 달 20일부터 모든 미국인을 대상으로 부스터 샷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 이스라엘은 7월 12일부터 세계 최초로 부스터 샷 접종을 시작했고, 이후 접종 대상자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도 이미 부스터 샷 접종을 시작했거나 예정하고 있다. 일본 역시 이르면 오는 10월, 늦어도 내년에는 부스터 샷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대다수 저소득 국가와 개발도상국이 여전히 백신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선진자본주의 국가가 부스터 샷까지 추진함에 따라 백신 양극화와 불평등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부스터 샷’ 논란과

백신 불평등의 악화

 

‘부스터 샷’은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는 백신의 예방 효과를 다시 높이기 위해 접종 완료 후 추가로 맞는 백신을 의미한다. 화이자 백신의 경우 2차 접종 후 2개월마다 백신 효능이 약 6%씩 떨어지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4~5개월 만에 효능이 77%에서 67%로 낮아진다. 기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해 94%가량의 예방률을 발휘했던 화이자 백신은 델타 변이 확산 이후 64%까지 효과가 하락했다. 접종을 마친 사람에게서 이른바 ‘돌파 감염’이 나타나고, 집단면역 수준으로까지 접종을 완료한 국가에서도 델타 변이 때문에 코로나19 재확산 현상이 뚜렷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부스터 샷이 항체 생성 수준을 높이고 델타 변이에 대한 중화항체(바이러스의 영향을 중화시켜 면역을 형성하는 항체) 수준을 약 5~7배 정도 증가시킨다’는 제약회사들의 연구 결과는 부스터 샷을 진행할 명분을 제공했다.

 

하지만 부스터 샷의 효능과 부작용을 둘러싸고 전문가 사이에서도 여전히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과학적 근거가 아직 부족하고, 그 필요성과 접종 대상에 관해서도 견해가 분분하다. 즉, 지금은 부스터 샷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시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접종이 더디거나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지역과 국가에서 접종률을 높임으로써 세계적인 수준에서 빠르게 집단면역을 달성하는 일이다. 일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집단면역이나 부스터 샷을 통해 해당 지역의 면역성을 높인다고 한들,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노출된 지역에서는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염병 대유행은 지역과 국경을 넘어 반복된다.

 

따라서 고소득 국가들의 백신 독점과 부스터 샷으로 백신 불평등이 심화할수록, 코로나19 확산과 변이는 더욱 악화할 게 분명하다. 이는 범죄행위와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차 접종을 위해 유럽연합(EU)은 인구의 3배가 넘는 백신을 사들였다. 미국 방역 당국도 백신 2억 회분을 추가 구매했고, 이스라엘 역시 이미 지난 4월 내년도 화이자 백신 1,800만 회분을 추가 계약했다. 일본은 내년에 쓸 모더나 백신 5,000만 회분을 지난 7월 계약했다. 고소득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선구매(입도선매) 방식으로 백신을 선점해 싹쓸이하다시피 독점하더니, 이제 ‘부스터 샷’ 명분으로 또다시 백신을 사재기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내맡겨진 백신

 

이렇게 고소득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백신을 독점할 수 있는 건 백신이 오로지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내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백신의 생산과 판매를 제약회사가 독점하고 제약자본의 독점적 이윤에 근거해 시장원리에 따라 거래하기 때문에, 결국 ‘지불 능력’에 따라 백신이 분배될 수밖에 없다. 자선단체로 구성된 백신연대 ‘피플스 백신 얼라이언스(PVA: People's Vaccine Alliance)’가 지난 8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의 90%는 부유한 국가에, 그것도 생산원가보다 무려 24배나 비싸게 팔렸다고 한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세계적으로 백신을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한 국제 백신공급사업 프로그램인 ‘코백스’에조차 생산원가(1.2달러)보다 5배나 비싼 가격으로 백신을 판매했다. 제약자본의 독점적 이윤 추구와 시장질서 속에 백신을 독점하는 고소득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행태까지 겹치며 저소득 국가나 힘없는 나라에서는 백신을 구경하기조차 힘들게 됐다.

 

이런 와중에도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와 모더나는 유럽연합에 납품하는 코로나19 백신 가격을 각각 25%와 10%씩 올렸다. 이에 따라 화이자 백신 가격은 1회분당 15.5유로(2만 1천 원)에서 19.5유로(2만 7천 원)로 올랐고, 모더나 백신도 22.6달러(2만 6천 원)에서 25.5달러(2만 9천 원)로 비싸졌다. 델타 변이 확산에 따른 부스터 샷 필요성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보다 효능이 높다’는 3상 임상시험 결과가 나오자, ‘백신 효과가 있어 가치가 상승했다’며 가격을 인상한 것이다. 유럽연합을 시작으로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도 도미노처럼 가격 인상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동안 백신을 구하지 못해 제대로 접종할 수 없었던 가난한 나라에서는 백신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에 관해 화이자 최고 경영책임자 존 영은 ‘백신으로 이윤을 얻을 생각’이라며 노골적으로 이윤 추구 속내를 밝혔다. 백신 가격 상승으로 화이자와 모더나의 매출액이 내년에는 860억 달러(약 100조 원)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결국,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장 이익을 본 건 백신을 생산한 제약자본이다. 이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등 9명은 보유자산 10억 달러(약 1조 1,180억 원)를 넘긴 ‘억만장자’에 새로이 이름을 올렸다. 특히 모더나 CEO 스테반 방셀, 그리고 미국 화이자와 백신을 공동으로 개발한 독일기업 바이오엔테크 CEO 우우르 샤힌이 새로 탄생한 억만장자 중 1위를 차지했다. 둘 다 현재 순자산액이 약 40억 달러(약 4조 5천억 원)에 이른다.

 

이렇듯 백신은 제약자본의 이윤 추구 도구로 전락했지만, 사실 코로나19 백신의 개발과 생산에는 엄청난 공적 자금이 들어갔다. 모더나 백신은 공공기관에서 개발하고 제조비용 전체가 공적 자금으로 이뤄졌다. 화이자 백신 역시 미국과 독일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받았고,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개발과 생산도 전적으로 공적 자금으로 지원됐다. 그런데도 백신에 대한 독점권은 제약자본이 가져갔다. 공적으로 개발하고 공적 자금으로 생산했으나, 제약기업의 특허가 되고 상품화되어 자본의 이윤 추구 수단이 된 것이다.

 

 

 

백신 생산과 분배의

공공화‧사회화가 필요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전세계 인구 70% 이상이 백신을 접종해서 집단면역을 달성해야 한다. 그러려면 백신을 전세계적으로 공평하고 적절하게 분배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감염병혁신연합(CEPI)이 공동으로 주관해 국제적 백신공급 프로그램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구성했고, 선진국 85곳과 개발도상국 92곳 등 모두 177개국이 여기에 참여했다.

 

하지만 고소득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체면치레처럼 분담금만 내고서는 코백스를 통하지 않고 각 제약자본과 접촉해 직접 백신을 구매했으며, 그 과정에서 백신을 싹쓸이해갔다.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백신 독점으로 심지어 코백스조차 백신을 구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세계적으로 백신을 공평하고 효과적으로 분배하기 위해 만든 코백스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백신의 독점적 생산과 시장 거래를 그대로 둔 채 ‘분배의 정의’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발생한 한계다. 그리고 그조차도 강제력을 갖지 못했기에 더더욱 ‘분배의 정의’조차 실현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백신을 진정 공평하고 적절하게 분배하기 위해서는 ‘분배의 정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제약자본의 독점화된 생산과 독점 이윤 추구, 백신이 상품화되어 자본주의 시장질서에서 거래되는 상황을 그대로 둔다면, ‘공평한 백신 분배’는 요원한 일이다. 결국, 백신 불평등을 해소하고 공평하게 분배하려면 제약자본의 독점 이윤을 추구하는 지금의 독점적 생산을 공공적 생산으로 바꾸고, 시장 거래가 아닌 공적 분배를 해야 한다. 나아가 생산과 분배의 전 영역을 공공화‧사회화할 때 비로소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자본주의 생산체계와 시장질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유발한 근원이자, 그 피해까지 차등화하고 불평등을 더욱 증폭시킴으로써 사회를 파괴하는 ‘악마의 맷돌’이다. 이 체제를 뒤엎어야 파괴를 멈추고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사회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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