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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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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6.15 17:03

우경화 40년에 불어온 좌파의 돌풍

영국사회에 과감한 변화를 제안한 노동당의 선전

 

정주희조직국장

 


201768일 영국 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이 과반 의석 획득에 실패했다. 관세동맹 탈퇴를 포함한 하드 브렉시트를 천명하며 브렉시트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명목으로 테레사 메이 총리가 조기 총선을 소집했으나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기존 의석보다 14석을 잃은 것이다. 반면 제러미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은 초반 열세를 딛고 33석을 추가하며 약진했다. 노동당이 마지막으로 승리한 2005년 총선 이후 최다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비록 과반 의석을 획득하지는 못했으나 사회공공성과 노동중심성으로 기류를 변화하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이번 총선에서는 사회주의에 맞선 성채라 불리던 캔터베리에서도 현재 선거구가 획정된 1918년 이후 처음으로 노동당 후보가 당선할 정도로 파란이 일었다.

 

노동과 공공성의 강화로 회귀하다

코빈은 블레어-브라운 전 총리 세력과 정면충돌하며 고수해온 좌파적 태도를 바탕으로 선거에 임했다. 보수당의 노인요양지원 축소 공약이 치매세로 힐난을 받는 동안 노동당은 국가보건기구(NHS)300억 파운드의 재정을 추가 지출하고 의료대기시간을 단축하는 등 공공의료 접근성과 질을 제고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다. 이 재원을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과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증세로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교육 분야에서도 대학 등록금 폐지, 초등교육 재정지출 확대, 국가교육기구(NES) 설치를 약속했다. 철도, 에너지, , 우정산업을 사회적 소유로 전환할 것과 공공임대주택을 10만 호 공급할 것을 공언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대기업 조세 부담 강화, 노조법 재개정을 통한 노조활동 강화 등 전반적으로 대기업과 고소득자에게 부담을 강화하고 노동자 권리를 신장하겠다는 입장이 곳곳에 녹아있다.

노동당은 민영화 영역 재국유화, 사회보장제도 확충, 노동친화, 자본과 고소득자 증세를 방향으로 선거정책을 구성했다. 영국 의회 전반은 물론, 노동당에서도 블레어가 신노동당을 표방하며 1994년 당권을 장악한 이래 찾아보기 어려웠던 좌파적 태도를 견지했다. 1979년 보수당 집권 이후 수십 년 동안 NHS 축소와 민영화, 소득격차 심화, 자본 중심 정책 일색의 정부가 들어섰다. 1983년 총선 이후 야당이었던 노동당마저 우경화를 반복하며 장장 38년 동안 거대 양당이 서로 약간 다른 버전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경쟁해왔다. 그동안 대학 졸업이 ‘44천 파운드의 부채를 의미하는 과중한 교육비 부담, 가파르게 상승하는 집세와 주택난, 막중한 청년실업률을 비롯해 영국 사회가 직면한 빈곤과 상대적 박탈감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표심을 이동했다. 조기총선을 소집한 4월 보수당 지지율이 노동당보다 두 배를 기록하며 노동당은 기존 의석보다 90석 넘는 의석을 빼앗길 것이라는 관측을 초래했으나 선거운동 기간 노동당 지지율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선거운동 기간 중 발생한 두 차례의 테러는 종전 선거보다 공안 의제를 부상하게 했다. 물론 보수당 정부에서 내무장관을 역임한 메이 총리에 대한 책임론도 떠올랐지만, 전통적으로 이민자와 난민에 배타적인 보수당에 유리한 여론이 조성되기에도 충분한 여건이었다. 그러나 코빈은 정공법을 택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과 친교를 맺으며 스스로 이슬람 극단주의의 표적으로 내세운 영국의 친미, 친제국적 대외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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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수를 둔 좌파가 새판을 짜기 시작하다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의 승리는 블레어-브라운의 신노동당 기류를 좌파적으로 극복해내고 있으며 이같은 경향을 전통적인 노동당 지지세력은 물론 더욱 확장된 대중의 호응을 통해 강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15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패배한 후 새로운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부터 지난해까지 코빈을 향한 적대는 끊이지 않았다. 당권을 차지하고 있던 신노동당 세력, 당 후원자, 가디언을 위시한 친노동당 언론은 코빈의 급진성을 비판하며 정치적 접근이 아닌 급진적 운동만을 추구한다면 노동당이 더욱 위축할 것이라며 협박에 가까운 비판을 일삼았다.

보수언론도 코빈을 표적으로 포화를 날렸다. 지난 5월 공약 초안이 공개됐을 때 보수언론들은 코빈이 집권하면 보수당의 공적을 무위로 돌리고, 대처 이전 1970년대 경제위기 상태로 회귀할 것이라거나 노동조합이 강화되면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등 좌파 정책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았다. 당내외 정치세력과 언론의 노골적 공세에도 불구하고 코빈은 급진적, 좌파적 태도를 도리어 강력하게 표명함으로써 난국을 돌파했다.

또한 코빈은 브렉시트 동력에 힘입어 주도권을 확대하려던 보수당의 전략을 꺾었다. 브렉시트 찬반으로 나뉘어 있던 구도는 영국 내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유럽연합 탈퇴냐 잔류냐의 질문으로 환원해왔다. 실업난으로 인한 불만을 대륙에서 유입하는 이민자와 난민, 유럽연합 분담금 문제에 대한 이탈로 표현하게 했던 것이다.

당내에서도 반발이 존재했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반대했던 브렉시트임에도, 보수당은 브렉시트 직후 발빠르게 하드 브렉시트를 표방하는 메이를 대표로 추대하여 브렉시트 국민투표 과정에서 보인 자중지란을 정리하고 정치적 주도력을 회복하려 했다. 조기총선을 소집하며 하드 브렉시트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영국 사회에서 불평등과 경제난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며 대응책을 회피하고, 기왕에 찬성으로 결정된 브렉시트를 내세워 정국의 주도권을 강화하려던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코빈은 대중의 불만을 다른 방식이 아니라 의회와 정부가 수행해야 할 역할로 직접 제기했다. 이로써 하드 브렉시트 담론이 아니라 복지와 공공성의 강화를 선택하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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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NHS 민영화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모습 [사진 : 이유철]


시류에 역행한 좌파, 꾸준하고 구체적인 운동으로 이어가야

물론 한 차례의 선거로만 이 국면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또한 코빈이 몰고 온 좌파의 돌풍이 노동당을 어디까지 변형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영국 좌파 앞에는 브렉시트, 대외 및 군사정책, 난민 문제 등 구체화하고 변화할 사안이 산적해있고 점차 강화하는 고립주의·민족주의 경향에 대한 지속적인 대응을 이어갈 과제가 놓여있다. 정치운동만이 아니라 대중운동의 역할과 향배도 간과할 수 없다. 전후에 벗어나지 못한 영국 운동의 유서 깊은 의회중심성, 의회정치 의존성을 지양해가기도 해야 할 것 이다. 따라서 이번 노동당의 선전은 노동당만이 아니라 영국 운동 전반에 선거로 수렴되는 정치적 국면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어떤 운동을 회복하거나 형성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의 과제를 제기한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에서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이 신자유주의 이후 대안은 없다는 인식이 조직노동 내까지 체화되고, 극우적 대안이 발흥하는 경향에 필적할 맞수를 두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은 진보진영이 현실적 대안과 세련된 정치공학을 추구해야 한다는 20세기 후반 서구 사민주의 정당들의 기류에 역행했다. 주류 언론과 기성정치세력은 전통적인 선거전략의 역사를 강조하지만, 그보다 자본주의의 폐해와 그에 따른 노동자민중의 신음과 분노가 심원하고 거대함을 보여준 것이다. 2017년 영국 총선에서 정치공학과 선거전략만으로 해소할 수 없는 노동자와 민중의 불만을 제기할 언어가 필요하며, 좌파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각지의 좌파 돌풍이 그저 돌풍으로 그치지 않고 발흥하는 극우정치에 맞선 정치적 대안으로 서기 위해서는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정치운동의 방향과 실천을 가일층 구체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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