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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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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만

위험에 내몰리는 이유

 

임용현기관지위원장




지난달 16, 충북지역에 최대 300mm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지며 6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되는 등 각종 피해가 잇따랐다(이번 폭우로 청주와 괴산에서만 44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날 내린 비는 연간 강수량의 20~25%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폭우였다. 특히 오전 710분부터 810분 사이에는 시간당 91.8mm물폭탄이 쏟아지면서 피해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청주의 젖줄인 무심천을 비롯한 주요 하천변 수위가 급속도로 올라가 인근 지역 곳곳이 범람했고, 저지대에 형성된 상가와 주택가 곳곳도 침수 피해를 입었다. 시내 도로의 침수 상황 역시 심각했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소식이 있었다. 폭우로 파손된 도로 일부 구간의 긴급복구 작업에 나섰던 도로관리사업소 비정규직(무기계약직) 노동자가 사망한 것이다. 그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무려 14시간 동안이나 도로 위에 있어야 했고, 보수 작업을 마치자마자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720, 숨진 노동자에 대한 순직을 인정하라는 국가인권위의 권고가 있었지만, 인사혁신처의 답변은 세월호 기간제 교사에 대한 순직 인정을 한사코 거부하던 때와 마찬가지였다. “공무 중 사망했더라도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순직 인정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폭우로 인한 피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역대 7월의 일 강수량으로는 2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16일에 이어, 723일에도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폭우가 쏟아졌다. 이로 인해 인천 시내 저지대에 자리 잡은 주택 수백 채가 침수되었고, 물에 잠긴 반지하 주택에서는 치매를 앓던 90대 노인이 익사하는 참변까지 일어났다.

 

물폭탄과 불볕더위에 쓰러지는 사람들

한편에서는 폭염으로 인한 피해도 속출했다. 중부지방이 사상 최악의 물폭탄으로 난리통을 겪고 있는 사이, 남부지방은 끝 간 데 없이 치솟는 불볕더위에 시달려야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폭염특보가 발효되는 가운데, 지난 82일 세종시 건설현장에서는 섭씨33도 이상의 폭염에도 물그늘휴식 제공 등 안전예방수칙을 지키지 않아 20대 건설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최근에는 이같은 문제의 원인을 짚어볼 수 있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호 교수팀이 2009~2012년 서울지역 전체 사망자 33,544명을 대상으로 매년 6~8월 중 폭염이 지역별로 사망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 교육수준이 낮고 가난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8% 높은 것으로 추산됐다. 또 상대적으로 녹지공간이 적은 지역에서 거주하는 사람은 사망위험이 18% 높았고, 주변에 의료기관이 부족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역시 사망위험이 19% 높았다.

, 주로 주거 및 노동환경이나 공중보건이 취약한 지역과 계층에게 폭염은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마나 다름없는 것이다. 소득의 10% 이상을 냉난방비로 써야 하는 이른바 에너지 빈곤층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어디론가 훌쩍 피서를 떠나는 것도, 방 안에서 더위를 식히려 선풍기, 에어컨 같은 냉방장치를 가동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이들이 전국적으로 170만 가구에 이르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건설노동자의 경우는 또 어떠한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금속 또는 광물, 유리제품 등을 가공하거나 운반, 취급하는 장소 등에 한해 고열작업에 대한 예방조치를 두고 있다. 하지만, 건설노동자를 비롯해 옥외작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폭염 작업에 대해서는 정작 어떠한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업주에 대한 어떠한 구속력도 없는 가이드라인만이 존재할 뿐이다.) 2012, 경영계와 전문가들의 반대로 고열 작업 기준의 확대는 무산됐고, 아직까지도 폭염시 작업중단은 법제화되지 않고 있다. 행정당국이 아무리 폭염기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고 권고한다 해도, 결국 당장 먹고사는 게 시급한 노동자들에게 작업중지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처지다.

 

왜 가난할수록 재난에 취약한가

이처럼 폭우와 폭염이 한꺼번에 엄습하는 재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회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 특권층만큼은 안전지대에서 그들만의 삶을 만끽한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재난으로부터 피폐해진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들을 익히 보아왔다. 장대비를 맞으며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도로 보수에 온힘을 쏟았던 충북도 도로관리사업소 비정규직노동자의 모습이 그랬다. 반면, 소수 특권층은 이 끔찍한 재난참사와는 무관하다는 듯 거리낌 없이 행동한다. 충북지역 폭우로 피해복구가 아직 한창일 무렵, 충북도의원들은 외유성 해외연수를 떠나면서 세간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난은 삶을 유지하는 근간인 의식주를 송두리째 앗아가는 재앙이지만, 실제로 이들 특권층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산비탈이나 저지대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한 지역이 아니라, 평탄한 지대에서 설계와 관리가 잘 된 안전한 곳에서 지내기 때문이다.

결국 불평등한 시스템은 자연재해가 야기하는 결과에서도 불평등을 초래한다. 이렇듯 재난은 자연현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불평등한 사회체제가 온존하는 이상 재난은 부유한 자들을 피해 유독 가난한 이들에게만 끔찍한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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