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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집배노동자들의 죽음,

국민조사위원회는 집배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올곧게 담아내야 한다


조혜연인천



집배원 노동자들의 심각한 노동실태는 수많은 숫자들이 말해주고 있다. 이것저것 볼 필요도 없다. 집배원 노동자들 중 업무와 연관된 사망자 수만 올해 들어 7월까지 12명이다. 이중 과로사가 5, 자살이 5, 사고사가 2명이다. 2016년에도 8, 최근 5년간 70여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수 자체도 심각하지만, 사망의 원인을 보면 문제의 핵심은 과로와 이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다.

 

과연 실화인가 싶은 초장시간 노동

집배노동자들은 평소에도 하루 평균 10.8시간, 폭주기 및 특별수송기(명절, 선거 등)에는 하루 13~15시간 까지도 일을 하고, 연평균 노동시간은 3,364시간에 이른다(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보고서, 2013). 반면, 2015년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들의 노동시간이 주당 47.8시간(연간 2,488시간)이라고 주장했는데 위 자료와 비교할 것도 없이 우정사업본부에서 제공하는 자료인 <초과근무세부내역>에 따른 실제 노동시간을 분석한 결과(연간 2,888시간)와 비교해 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집배노동자들은 실제로 3,000시간이 넘도록 일하고 있지만 2,488시간만 노동으로 인정을 받고 나머지는 초과노동을 하고도 수당을 받지 못하는 무료노동을 해오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초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집배원들은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을 모두 합해도 휴식시간이 하루 한 시간을 넘지 않는다.

집배원들의 실제 노동시간을 바탕으로, 추가로 필요한 집배 인력을 계산해보면 28.8% 증원이 필요하고, 이를 근거로 공공운수노조 집배노조는 4,600여명의 인원충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명확한 현실 앞에서도 우정사업본부는 황당한 주장을 이어오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2016, <집배원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장시간노동의 원인이 집배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낮고, 집배노동자들이 태만하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쉽게 말해 초과근무수당을 받기위해 일부러 초과근무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 있는 인원도 남아돌아서 인원충원을 할 필요는 없고, 인원이 남는 지역의 우체국 인원을 모자라는 우체국으로 돌리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환노위 법안심사소위는 노동시간 제한 특례업종을 26개에서 10개로 줄이는 데 합의해 집배업무 역시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이를 적용받는 것은 비정규직인 상시계약집배원에 한해서이다. 정규직 집배노동자들은 공무원법의 적용을 받아 여전히 무제한 노동이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니다.

 

우체국도 비정규직 백화점

우리나라에 편지와 소포를 배달하는 집배노동자는 현재 18,000여명. 이 중 5,200여명은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상시계약집배원(직접고용 비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정규직 집배원과 함께 똑같이 일한다), 위탁택배기사(소포를 처리하는 집배원으로 주로 차량에 실어야 하는 큰 택배물량을 담당하고 작은 택배들은 일반 집배원이 편지와 함께 처리한다), 재택위탁 집배원(아파트 단지 등 일부 지역의 우편물량을 통으로 위탁받아 처리한다) 등 비정규직의 형태도 다양하다. 이 비정규직을 뺀 나머지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철밥통인 공무원 집배원이다. 이외에도 우정사업본부 관할이긴 하지만 민간인에게 위탁하여 운영이 되고 있는 별정우체국이 우체국이 없는 면단위에 분포해 있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도 공무원이 아니다.

철밥통인 정규직 집배원이 철밥통을 지키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일은 위에 살펴본 바와 같고, 짐작하다시피 상시계약집배원들은 정규직과 똑같이 일하면서도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 재택과 택배기사들은 개인사업자인 특수고용직이다. 재택의 경우 최근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하여 1심과 2심을 승소하고 3심을 진행 중에 있다고 한다. 우정사업본부의 다양한 꼼수로 인한 복잡다단한 우체국의 구조와 비정규직의 문제까지 거론하자면 밤을 새야 할 판이다.

 

인력충원만이 해결책

우정사업본부는 늘 적자를 주장한다. 그래서 비용을 더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늘리고 외주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의 업무는 우편업무 뿐만이 아니다. 우체국예금도 있고 보험도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20125,657억 경영수지 흑자를 기록했는데(예금부문 2,824억 흑자, 보험부문 3,540억 흑자, 우편업무 707억 적자) 이 중에서 우편업무의 적자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집배원 1인당 담당 가구는 2015년 기준 일본 378가구, 미국 514가구인데, 한국은 1160가구다. 한국이 일본의 4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이 와중에 우정사업본부는 올 하반기에 100(?!)을 충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이번 정부 추경예산안에서 이마저도 제외되었다.

최근 집배노동자 죽음의 행렬을 멈춰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계기로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시민사회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출범했다. 대책위는 810일 출범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에 집배노동자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한 국민조사위원회를 꾸릴 것을 요구했다. 한편, 우정사업본부와 우정노조(한국노총 소속)도 국민조사위원회에 합류할 전망이다. 집배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던 당사자들이기에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설 수밖에 없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집배노동자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과 인력충원 등 민주노조의 요구가 국민조사위원회의 공식 입장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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