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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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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9.01 08:28

큰이십팔점무당벌레

 

텃밭에 가면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비가 쏟아진다. 내리기 시작한 비는 양동이로 들이붓듯 억수같이 쏟아진다. 여름 내내 비가 오락가락한다. 지난봄엔 가뭄 때문에 흙먼지가 폴폴 날리던 밭은 곤죽이 되어 버렸다. 발이 쑥쑥 빠지는 밭에서 이젠 길고 끔찍했던 가뭄은 어림조차 되지 않는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 탓에 텃밭 농사는 엉망이 되었다.

이런 날씨에 낭패를 당한 건 사람뿐이 아닌 모양이다. 긴 가뭄과 뒤이어 계속되는 폭우 때문인지 텃밭에 벌레가 눈에 띄게 줄었다. 어스름해지면 수십 마리가 떼로 달려들어 물어대던 모기의 극성이 훨씬 덜해졌다. 올해 말라리아 발병이 예년에 견주어 70퍼센트로 줄어들었다고 하니, 그만큼 모기가 줄었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잠자리나 나비도 줄었고 주말농장 정자 처마에 붙어 있는 쌍살벌 집은 크기가 초여름 그대로다. 무엇보다 큰이십팔점무당벌레는 텃밭에서 한 마리도 보이질 않는다.

큰이십팔점무당벌레는 텃밭에 흔히 심는 감자나 가지, 토마토 같은 가지과 식물 잎을 즐겨먹는다. 한국산 무당벌레 90여 종 가운데 잎을 먹는 것은 큰이십팔점무당벌레와 이십팔점무당벌레, 곱추무당벌레, 중국무당벌레 따위 5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 무당벌레는 진딧물이나 깍지벌레를 잡아먹어서 살아 있는 농약 구실을 하는 농사에 이로운 벌레들이다. 진딧물을 먹는 무당벌레와 잎을 먹는 큰이십팔점무당벌레는 먹는 것은 다르지만 됫박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과 검은 점이 박혀 있는 게 닮았다. 하지만 반질반질 윤이 나는 무당벌레와 달리 큰이십팔점무당벌레는 온몸이 잔털로 덮여서 뿌옇게 보인다. 큰이십팔점무당벌레와 이십팔점무당벌레는 똑같이 가지과 식물을 먹고 생김새도 꼭 닮아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더운 곳에 사는 이십팔점무당벌레는 주로 남부 지역에서 볼 수 있고, 중부 지역에서 볼 수있는 것은 대개 큰이십팔점무당벌레다.

큰이십팔점무당벌레는 가지과 작물 가운데서도 감자를 특히 좋아해서, 초여름 감자밭에 가면 알부터 애벌레, 번데기, 어른벌레를 다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맘때면 병을 들고 가서 일일이 손으로 잡아주었다. 청소년 텃밭에서는 아이들과 한바탕 소탕 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올해는 아무리 찾아봐도 큰이십팔점무당벌레를 볼 수 없다. 감자를 캘 때까지도 큰이십팔점무당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큰이십팔점무당벌레가 한 마리도 꼬이지 않았지만 감자 농사는 완전히 망쳤다. 봄 가뭄이 심해 감자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는데 그나마도 장마가 시작되고 나서 뒤늦게 캐는 바람에 알이 굵은 것은 다 썩어버렸다. 큰이십팔점무당벌레가 극성을 부렸던 지난해는 오히려 감자 농사가 잘 되었다.

큰이십팔점무당벌레가 보이지 않으니 비로소 깨달았다. 전부터 당연히 여겨왔던 것을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큰이십팔점무당벌레는 감자 농사에 큰 영향을 주지 않거나 어쩌면 큰이십팔점무당벌레가 감자 잎을 갉아먹어서 감자 농사가 잘 될 수도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큰이십팔점무당벌레는 감자를 죽일 만큼 잎을 갉아먹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벌레를 없애려고 농약을 치는 것을 텃밭에서 보지 못했다. 대개 손으로 대충 잡아주는 정도이다. 지난해엔 이마저도 하지 않았다. 감자는 잎이 무성하면 양분이 잎으로만 가기에 순을 많이 쳐 준다. 그래야 양분이 땅속줄기로 가서 감자알이 굵어진다. 큰이십팔점무당벌레는 적당히 감자 잎을 먹어 주어 게으른 농부가 하지 않는 감자 잎을 쳐 주는 수고로움을 대신 해 주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웃 텃밭 아주머니 얘기다. “농사는 매번 달라. 오래 지어도 매번 또 새롭거든. 오이가 지난해엔 잘 됐는데 올해는 여러 번 다시 심었는데도 다 망쳤어. 수박도 망했어. 그래도 알게 된 게 있어. 내년엔 또 다르게 해 볼 거야.” 작은 텃밭에서 몸으로 겪으며 알아가는 생태적 지혜다. 아주머니께서는 팔뚝만큼 큼직하고 미끈한 가지를 잔뜩 주셨다. 그나마 이런 날씨에서도 가지는 잘 자랐다. 큰이십팔점무당벌레가 잎을 갉아먹지 않아서 가지 잎도 미끈하다. 큰이십팔점무당벌레가 몇 마리 붙어 있어도 가지는 그만큼 잘 자랐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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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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