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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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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9.15 08:19

노동자 이종수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누구에게나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고 나면 겨울이 온다. 사계四季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 그러나 자본과 노동의 사계는 그렇지 않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그 불평등은 더욱 깊고 빠르게 진행됐다.

자고 일어나면 몇십 명씩, 몇백 명씩, 몇천 명씩 직장에서 잘려 거리에 내몰렸다. 그도 아니면 눈 감았다 뜬 사이에 회사가 사라져 버려 수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거리로 밀려났다. “너 나 할 것 없이 어려우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가 아니었다. 정부가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조금만 노동자의 입장을 이해했더라도, 그토록 돈만 좇는 자본가의 심정에만 몰입하지 않았더라도, 그토록 노동자의 희생만을 집요하고 무자비하게 요구하지 않았더라도, 하루아침에 가족의 생존이 달린 일터를 잃는 노동자가 죽는 일도 좀 적었을 것이고, 죽지 못해 비참하게 사는 노동자도 좀 적었을 것이고, 사계절 내내 투쟁의 거리에 서 있는 노동자들도 좀 적었을 것이다. 너무나 많은 노동자들이 쫓겨나고, 죽고, 투쟁했다.

 

투쟁 속에서 성장하고 각성하다

<우리들의 사계>*의 주인공인 노동자 이종수는 투쟁의 거리로 나온 이 노동자들 중에 한 명이었다. 22년간 다니던 삼미특수강이 부도가 나자 포항제철이 인수했는데, 포철은 삼미특수강의 모든 자산을 인수하면서 2천이 넘는 노동자의 고용승계는 책임지지 않았다. 그는 오백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소위 삼미특수강 고용승계투쟁에 나섰다. 조그마한 키에 마른 이종수는 머리가 살짝 벗겨져 이마가 훤한, 내성적이고 순종적인 노동자였다. “지각 조퇴 전혀 안 하고. 사람이 안 죽으면 월차도 안 찾아 먹고. 이렇게 내 나름대로 회사가 나를 먹여 살려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평생직장이라고 믿고 죽을 때까지 열심히 일만 해왔습니다.”

늦봄에 시작된 상경투쟁으로 서울에 온 그의 눈에 비친 거대한 포스코 본사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낮인데도 어두운 감을 느꼈고 상당히 음산하고 차가웠습니다. 6조라는 큰돈을 들일 만큼 이런 엄청난 건물이 과연 공기업 포항제철에 필요한가. 부당하지 않는가.” 투쟁을 시작할 때는 정말 금방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한 달이 넘어가고 100일이 넘어갔다. 여름 내내 길거리에서 더위와 모기, 그리고 씻지 못한 끈적거림과도 싸우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동료들과 싸우고, 그러다가 술 마시고, 꿋꿋하게 버티자고 서로 화해하고 위로하고, 이것을 반복하면서 여름을 보냈으나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투쟁의 성과는 하나도 없었지만, 그는 이 투쟁 속에서 닥치는 대로 읽고 생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민주노총이나 연맹, 노동조합에서 나오는 유인물신문책자, 저는 빠짐없이 읽었습니다. 모르는 용어를 알고 싶어도 물어볼 데가 없어서, 읽는 데 상당히 애로가 많았어요. 공동대책위에서 오셔서 하는 강의 듣고 교육 받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새로운 것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중앙노동위의 승소판결이 난 겨울쯤에 그는 이 판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될 정도로 이미 많이 변해 있었다. “중앙노동위에서 우리의 승소판결이 났지만 우리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 전에 지방노동위 재판에 참석해봤는데 위원들이 힘이 없고 약해보여서 포항제철을 상대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포항제철이 승복하지 않는 한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운동은 세상을 살리는 운동입니다

<우리들의 사계>는 투쟁 시작 후 1년 반 정도의 삼미특수강 고용승계투쟁을 담고 있다. 투쟁을 보고서처럼 만들지 않기 위해 별별 짓을 다 하다가, 운 좋게도 노동자 이종수를 만났다. 투쟁기간 동안 그의 성장기가 구성의 한 축이고, 투쟁과정이 또 한 축으로, 서로 교차되는 서술구조를 가졌다. 이런 구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이종수라는 캐릭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이 완성된 후에도, 5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던 투쟁은 2001년에 법원이 포항제철의 손을 들어주면서 아주 비극적으로 끝났다. 노동자 이종수의 투쟁도 끝났다.

우주가 지구를 만들고 지구가 자연을 만들고 자연이 인간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노동을 만들고 노동이 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해치면 그에 따른 피해는 인간이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자본이 노동을 해치면 그에 따른 피해는 반드시 자본이 받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거나 망치면 인류는 멸망합니다. 자본이 노동을 해치고 죽이면 이 세상은 결국 멸망합니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지구를 살리는, 세상을 살리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사계>의 마지막 장면이자 이종수의 마지막 인터뷰다.

 

* <우리들의 사계> : 19985/72/제작: 삼미특수강 노동조합-노동자뉴스제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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