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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공공성과 안전 지키는 싸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 해고와 차별 정당화하는 법원과 공사 측 태도는 상식 밖 - 


지난 5월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철도 해고자와 KTX 승무원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토부와 철도공사는 KTX 승무원 문제에 대해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을 따름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진 문제라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김승하 KTX열차승무지부장은 비록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할 지라도 부당한 현실을 반드시 바꾸고 싶다고 말한다. 조합원 총회를 준비하느라 설레임과 긴장이 교차하던 어느 날, 김승하 지부장을 <변혁정치>가 만났다.



Q 먼저 KTX 여승무원 투쟁에 대해 간략한 소개 말씀 부탁 드려요.

A 지금까지 11년 동안 투쟁을 이어 오다 보니까, 사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약간 암담하네요. (웃음) 간단히 말씀드리면, 철도공사에 비정규직 외주위탁으로 고용된 여승무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으로 싸움에 돌입했는데요. 일단은 저희가 외주위탁 됨에 따라 안전업무를 할 수 없는승무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리고 자회사로 인해 생기는 온갖 노동환경의 불합리성과 중간착취, 이런 부분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시작한 것이기도 해요. 또한 여승무원 업무에 대한 외주화를 통해 야기된 여성차별의 문제도 갖고 있었어요. 또 한 가지는 취업사기 문제도 걸려 있는데요, 저희는 분명히 당시 철도청(현 철도공사 '코레일')으로부터 일 년 뒤 정규직화, 그리고 항공사 승무원보다 더 나은 대우를 약속 받고 KTX를 선택했었거든요. 그런데 일 년 뒤에 그렇게 나 몰라라 하는 걸 보면서, 국가가 사기행각을 벌였다는 배신감도 적지 않았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랑했던 일터를 바로잡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승무업무는 안전과 무관?

Q 그간 코레일 측은 수차례 자회사 취업을 제시했으나 지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정부도 비정규직 대책으로 자회사 채용 방안을 고려하고 있고, 실제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자회사로 채용해 '정규직화했다'고 표현하는 곳들도 많은데요. 그렇다면 당시 KTX여승무원들이 자회사 채용을 거부한 까닭은 무엇이었나요?

A 자회사였기 때문에 저희가 그런 고통, 불합리한 노동환경 속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고. 또 자회사로 남아있는 한 KTX승무원은 안전을 담당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임금이나 고용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문제도 있었지만, 자회사라는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KTX승무원 문제는 영영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거부했던 거예요. 사실 승무원이 안전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잖아요. 만약 이런 자회사 구조를 저희가 인정한다면 철도공사의 (사용자) 책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KTX 공공성과 안전도 결국 포기하고 마는 거라고 판단했어요.

 

Q 2015년 대법에서 패소는 지난 10년여의 투쟁에서 가슴 아픈 기억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여승무원을 코레일 직원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당시 대법 판결의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A 대법판결(근로자지위확인소송)은 그야말로 어이없는 판결이었고, 정말 이명박근혜정부였기 때문에 이런 판결이 나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요즘 들어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직 시절 판결들이 거세게 비판받고 있잖아요. 대법원이라는 곳이 정치적으로 전혀 독립되어 있지 않은 기관이라는 걸 그때 많이 느꼈어요. 그 판결문만 보면 이 세상에 외주위탁 못할 업무가 없고. 어떤 증거를 갖고 오더라도 내가 보기엔 아니야라고 손쉽게 승소와 패소를 가를 수 있는 그런 판결문이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불법파견 문제에서 가장 핵심은 ‘KTX승무원들이 안전을 담당하지 않기 때문에, 철도공사가 적법도급이다.’라는 대목이에요. 그러니까 (철도공사가) 서비스업무만을 분리해서 도급을 준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여기서 관건은 열차팀장이 승무원에게 지시나 관리감독을 했는가 여부에요. 당연히 저희는 열차팀장의 지시에 따라서 열차 안에서 함께 협업하지 않으면 업무 자체가 되지 않았는데도, 법원은 이렇게 판결했어요. “그건 지시한 게 아니라, 계약서대로 업무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감수한 절차에 불과하다.”라고 얘기했거든요. 이것만 봐도 얼마나 얼토당토 않는 말장난인지 알 수 있죠. 또 그런 판결들이 저희 문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서비스직 외주위탁된 분야에도 선례로 남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은 언젠가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고, 사법개혁이 정말 절실한 이유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Q 대법 판결 이후 안타깝게도 조합원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죠. 이 판결에서 패소하면서 철도공사에 의해 갑자기 1인당 1억 원에 가까운 빚을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A 저희 문제가 12심 소송을 거치면서 법원이 철도공사에 밀린 임금과 소송비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었거든요. 그런데 결국 파기환송심에서 최종패소하면서 4년 동안 지급받았던 임금이 고스란히 빚으로 되돌아온 거예요. 아시다시피 철도공사라는 게 공기업이고 그간 사장이 낙하산으로 매번 교체돼 왔잖아요. 문제의 발단은 노무현정부 때 이철 사장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당시 이철 사장이 노사합의한 내용을 뒤집고 타결을 무산시켰던 게 지금까지 온 거거든요. 그 뒤로 새로운 사장이 와도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거죠.

그 때문에 저희 승무원들은 지금까지도 큰 고통을 받고 있어요. 그 뒤 최연혜 사장이 취임하면서, 법원 판결에 불복하고 대법원까지 이 문제를 끌고 온 거잖아요. 그런데 최연혜 사장이 재직하던 기간 중에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건 게 아니라,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를 접수하면서 사장직을 내려놓던 바로 그날 내용증명을 보낸 거예요. 그렇게 법적인 절차를 진행시키고, 뒤이어 취임한 홍순만 사장 체제에서 소송을 건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법정이자율이 15%씩 계속 붙고 있습니다.

요 근래에도 법원에서 날아오는 서류들이 있어요. 조합원 중에 한 분은 초인종 소리만 들어도 깜짝 놀라서 아예 초인종을 없애버리기까지 했대요. 그만큼 이게 큰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아요. 11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왔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이 강인한 분들이라 생각했었는데, 실은 모두들 어렵게 견뎌왔고 정말 이러다가 어느 순간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였음을 알게 됐죠.

 

Q 새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가이드라인 발표 후 철도공사는 관련 절차에 착수했고, 승무업무 역시 대표적인 외주업무로 논의에 포함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현재 논의에 진척이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전망은 어떤가요?

A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논의테이블에서 결정하는 것이 어디는 직접고용으로, 그리고 어디는 자회사로 가는, 딱 이 정도거든요. 해당 업무가 예산상에 맞는가,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인가를 오히려 실무적으로 논의하는 테이블에 가깝다고 보여져요. 아직까지 잘 진행된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이명박근혜정부에서 추진해온 외주화, 민영화 정책의 방향과 지금 이 논의는 완전히 배치되잖아요. 특히나 철도공사의 경우에는 정부의 민영화 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행해온 기관이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올해 6월까지만 해도 외주위탁업체를 모집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새 정부의 정책기조가 나오고 나서야 멈춘 거예요. 지금도 철도공사의 태도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어요. “우리가 김대중, 노무현 시절을 다 겪어보지 않았느냐. 그때도 별다를 바 없이 외주화 진행돼 왔고, 지금 문재인정부에서도 초반에만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멈출 것이다.”라는 식이에요. 잠깐 지나가는 소낙비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이런 걸 보면 철도 안 적폐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고 보여져요. 이런 철도공사에 대해 앞으로 많은 질타와 견제가 필요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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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해고승무원 문제 여론화할 것

Q 최근에는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정규직 전환대상을 둘러싼 형평성,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저희가 철도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것을 두고 시험도 안 보고 정규직 시켜 달라는 거냐, 시험 보고 공채로 들어온 사람은 뭐가 되느냐고 묻는 분들도 간혹 계세요. 저희의 경우에는 물론 취업 사기라는 문제도 걸려 있지만, 비정규직은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고 해서 위험하고 고된 노동환경에 내몰린 채 일해도 된다는 걸 의미하진 않잖아요. 이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결국에는 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도 좋은 일자리가 보장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철도 현장에 외주위탁된 인원만 9천여 명에 달하는데요, 그중 절반 이상이 55세 이상의 고령자라고 합니다. 외주화된 일자리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면, 그만큼 좋은 일자리가 사회적으로 확충될 수 있다고 봐요.

 

Q 앞으로의 투쟁 계획과 동지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이번에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10월이 코앞이고 조만간 추석연휴도 다가오잖아요. 철도공사가 제기한 소송을 재판부가 강제조정에 넘겼는데, 그 기일이 1023일이에요. 만약 그 이전에 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본안소송에 들어가고 강제집행에 들어가게 되죠. 이게 법적으로 돈 문제로 결론이 나 버리면 앞으로 문제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거예요. 그리고, 디데이(임금반환 강제집행)가 존재하는 만큼 10월 전에 이 문제를 더 큰 이슈로 만들어 풀어가야 한다 판단하고 있고, 그 계획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하나 더 드릴 말씀은, 요즘엔 정말 여론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근에 MBC, KBS 방송사 노조들이 파업 중이잖아요. ‘PD수첩이나 추적60팀에서 KTX 해고 승무원 문제를 취재하고 있었는데, 투쟁이 벌어지면서 아직 방영을 못 하고 있거든요. 우리 모두의 힘으로 언론적폐도 시급히 청산하고, 저희 문제도 재조명되는 계기를 맞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터뷰=임용현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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