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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건강권 보장의 시작,

생리대를 공공재로

 

허성실학생위원장

 


최근 생리대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부실 검사와 비리 연루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를 계기로 여성건강권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는 제기가 나오고 있다. 극심한 생리통 문제가 일평생 본인의 체질 때문이라고 여겨 왔던 많은 여성들은, ‘순수’, ‘깨끗한이라는 명칭으로 포장해왔던 생리대의 배신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생리대를 둘러싼 아이러니

여성이라면 누구나 급히 생리대를 빌릴 때 귓속말로 너 생리대 있어?’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거나,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구매할 때 먼저 말하지 않아도 검은 봉투에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생리대는 숨기고 가려져야 하는 물건처럼 여겨졌다. 이는 곧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생리를 하는 과정과 방법은 사소한 일이며 오히려 숨겨야 하는 일로 간주된다는 의미다. 터무니없이 비싼 생리대 가격은 또 어떤가. 여성이 안전하고 깨끗하게 생리대를 사용하고 싶으면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그 비용을 지불하지 못한 결과 겪게 되는 질병은 개인의 책임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질병을 치료하고자 산부인과에 가는 것조차 주변 시선과 손가락질이 두려워 잘 찾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생리대에 대한 검사 기준이 미흡하고, 심지어 유해물질이 검출되고 가격이 끝없이 인상되더라도 이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도 없는 상황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한 달에 한 번씩 겪어야 하는 생리에 대한 비용과 책임이 오로지 여성에게로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자본의 이윤에 후순위로 밀려나는 여성건강권

이번 생리대 유해물질 검출 사태는 여성건강권보다 기업의 이윤 추구가 앞서는 구조 하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문제였다. 여성이기 때문에 매달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생리대는 기호가 아닌 필수품이며, 사회가 함께 부담하는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를 국가가 외면한 채 생리대 공급을 기업에 내맡긴 순간, 생산에 드는 비용은 최소화하고 그에 대한 이윤은 극대화하려는 자본의 논리가 생리대와 여성의 몸에도 씌워질 수밖에 없다. 자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안전하고 값싼 생리대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값싸게 만든 생리대를 많이 팔아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해물질뿐만 아니라, 꼼수 가격 인상, 정부와 기업 간의 결탁 역시 빗겨 나가기 어려웠다. 이처럼 기업의 이윤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사회에서, 여성의 몸과 건강권은 부차적인 문제인 듯 취급된다.

생리대 문제를 포함한 여성노동자들의 건강권은 어떠한가? 실제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 남성노동자보다 경제적 지위가 낮을 뿐 아니라 산업보건의 예방 및 관리, 그리고 산업재해 발생 시의 보상과 치료 정도 등의 측면에 있어서도 정규직 중심의 노동안전보건 정책에서 배제되고 있다. ·월차 휴가, 연장·야간근로수당 등의 조항이 적용되지 않거나 유산 및 출산과 관련된 권리와 육아휴직, 병가 등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실정이다. 게다가 가사노동으로 인한 이중고까지 겪어야 한다.

최근 많은 반발이 있었던 낙태금지법을 보더라도 후순위로 밀려나는 여성건강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낙태죄로 규율되는 임신중지는 불법적인 의료시술이나 허가받지 않은 유사의료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임신 출산에 대한 지원이 미미한 상황에서 임신중지 또한 국가의 규율로 통제되기에, 경제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여성들의 몸에 대한 권리와 재생산권, 건강권은 방치되고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여성건강권의 보장을 위해서는

최근 이슈가 됐던 깔창 생리대’, 생리대 시장의 과반을 점유하고 있는 유한킴벌리의 가격인상 횡포 등 생리대 문제로 인해 여성들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뒤늦게 공론화되고 있다. 이번 생리대 유해물질 검출 사태로 많은 여성들과 노동시민사회단체에서도 나도 안전한 생리대를 사용하고 싶다는 목소리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들은 당연한 권리가 지켜지지도 않을뿐더러, 비싼 값을 내고 지불한 생리대조차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없는 현실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렇기에 생리대의 공공재화와 무상 제공을 통해 정부가 책임 있게 여성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가족의 균형은커녕, 임금노동과 가사노동을 병행하면서도 노동시장과 사회복지에서 주변화되어 있는 여성들의 건강은 권리가 아닌 문제’,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여성건강권은 매우 저조한 수준이며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도 많다. 우선 비리 연루·유해물질 검출 생리대 기업에 대한 엄중 처벌, 생리대의 공공재화와 전면적인 국가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기업에서는 유급 생리휴가를, 대학에서는 생리공결을 보장해야 한다. 나아가, 낙태금지법을 폐지하고, 여성의 재생산권과 몸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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