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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혐오 넘어서는 사회를 향해

차별금지법 제정과 그 운동을 위해

 

소성욱사회운동위원회


 

1. 변화의 바람에 오히려 꺼진 성소수자들의 촛불

들끓었던 변화의 기운과 촛불의 광화문이 벌써 과거가 된 지 오래됐다.그러나 성소수자들 역시 그 지난한 과거, 그 과정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내고 투쟁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변화의 바람 속에서 어떤 대선후보자들은 동성애에 대해, 그것도 모두가 보는 TV를 통해 혐오를 버젓이 드러낸 것도 사실, 많은 이들은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 모두가 간절히 바랐던 변화에 성소수자의 인권은 없었다. 아니, 사회적 강자에 의해 삭제됐다. 어떤 사람들은 대의를 위해 소수자들이 인내해야 한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성소수자의 인권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성소수자의 인권은 인권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동성애), 반대하지요라고 떳떳이 얘기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2. 변화의 바람과 함께 덩달아 커져가는 성소수자 혐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그것이 앞을 향하든 뒤를 향하든 말이다. 그러나 그 변화의 바람과 함께 왜 성소수자 혐오라는 불의의 불꽃까지 뜨겁게 타오르고 있을까. 성소수자 혐오세력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로 더더욱 밀접히 결집하고 있다. 그 논리는 철저히보수세력의 후진적인 사고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가령 성소수자들을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라 들먹이며 가족의 붕괴/노동력 재생산 불가의 문제로 연결시킨다든가, 에이즈가 죽음의 질병인 것처럼 공포를 조장하며 국가적 차원의 복지와 권리보장이 부당하다는 듯이 호도한다. 그밖에도 도덕과 윤리, 자연의 섭리를 운운하며 마치 이 세상이 성소수자들에 의해 멸망할 것처럼 이야기한다. 뜨겁게 타올랐던 변화에 대한 열망은 사실 변화에 대한 두려움보다 작았던 것이 아닐까.

 

3. 촛불을 들었던 성소수자들은

촛불을 들었던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촛불보다 뜨거운 열망의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간절한 마음으로 차별반대를 외치고 있다. 소위 여성/남성스럽지 않은 여/남의 성소수자들, 그리고 여성도 남성도 아니거나 이분법적 성별규정을 거부하고 속할 수 없는(속하지 않는) 성소수자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다움에, 강제로 맞지 않는 옷을 입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거나 일터를 잃는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철저하게 배제당하는 교육 속에서 삶에 대한 의지를 상실하거나 폭력에 노출 당한다. /남으로만 분리된 문 앞에서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때로는 그 어느 문으로도 들어가지 못한 채 뒤돌아 서는 성소수자들.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의 경계를 넘나드는 성소수자들은 당연하게도, 당연하지 않게 소외되고 삭제된다.

 

4.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차별금지법 차별금지조항에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 빠졌을 경우에는 법 제정에 찬성할 수 있다.”는 사람들을 말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특정 집단을 향해서는 부당한 차별이 허용되기를 바란다고 역해석할 수 있다. 어느 집단은 차별하면 안 되고, 어느 집단은 차별해도 된다? 그것은 불가능해야 한다. 사회적 강자가 가지고 있는 그 강한 힘을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기에 우리는 미약하게나마 제도적인 시도로 변화의 물꼬를 터보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라는 두 가지의 개념만으로는 이 세상의 섹슈얼리티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개념이 기본적으로 우리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개념이기에, 성소수자 차별을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을 막아야 하기에, 우리는 차별금지법에서 이 조항을 뺄 수 없다고 10년이 넘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5. 혐오를 넘어서, 제도를 넘어서, 끊임없이 무지개를 그리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곳곳에 무지개 깃발이 높이 오르고 있다. 퀴어문화축제만 해도 서울 뿐 아니라 대구, 부산, 제주까지 확산되어 개최되었다. 물론 혐오세력의 힐난과 조롱도 전국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성소수자들은 계속 무지개를 그리고 깃발을 올린다.

무지개는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무지개 빛깔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뒤에 수많은 눈물과 처절함이 그 다양한 빛깔을 채우고 있다.

향후에는 더 많은 지역에서 무지개 깃발이 휘날릴 것이 기대되고 있다. 함께 무지개를 그리자. 보이지 않는 무지개 뒤의 눈물을 우리도 같이 흘리자. 공감하자. 처절한 행복과 당당한 눈물을 느끼자. 우리의 적기가 무지개의 붉은 부분이 되어 하늘에서 펄럭일 때 우리가 바라는 해방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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