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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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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로드맵,

무엇이 문제인가?

 

이주용정책국장


 

지난 1018일 문재인정부 일자리위원회는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이하 로드맵)><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정부는 향후 5년간의 고용·노동 정책방향을 집약하고 있는데,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책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지난 7<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도 드러났듯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각종 전환 예외사유와 자회사·무기계약직 같은 꼼수, 별도직군 신설 및 차등적 임금체계 등 차별과 배제를 심화한다. 신규고용창출에 있어서는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와 사회서비스 시장화, 창업 및 벤처투자 확대 등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마저 계승한다.

 

노동자는 차별심화, 기업은 규제완화

<로드맵>이 제시한 중점과제를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으로 나눠 살펴보자.

먼저 공공부문은 일자리 81만 개 창출과 비정규직 대책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 81만 개 중 20만 개는 신규충원이 아닌 기존 비정규직을 전환한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비정규직 제로시대라는 말과 달리 이 20만 개 일자리에 국한한다.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추계에서 20만 명의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에 포함하는 등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는데, 무기계약직·기간제·파견용역을 합하면 정부 추산으로만 50만 명이다. <로드맵>은 이 가운데 40%만을 전환한다는 것이며 이조차도 간접고용인 자회사 전환을 종용하고, 정규직 전환비용을 최소화한다며 차별적 임금체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신규충원도 문제다. 정부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을 제약하는 총액인건비제도를 유지해 고용비용을 최소화하겠다고 한다. 결국 비정규직 양산의 핵심 기제인 파견법·기간제법은 건드리지 않고 총액인건비제도로 추가지출도 제한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제 살 깎아먹기를 강요하는 것이다.

민간부문 일자리 창출 부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업지원과 규제완화로 채웠다. 핵심은 창업 촉진산업경쟁력 제고 및 신산업서비스업 육성이다. 일단 실업난과 불안정 일자리 양산의 해결책으로 사실상 자영업이나 다름없는 창업을 일자리 창출이라고 포장해 제시하는 것부터 기만이다. 정부는 모험투자 규제완화 등을 통해 벤처생태계를 조성한다고 하는데, 이는 이미 2000년대 초 거품으로 막을 내린 벤처경제를 되풀이하는 것뿐이다.

한편 산업경쟁력 제고와 신산업·서비스업 육성 부분은 박근혜정부와 완전히 일치한다. 자동차·조선 등 주력산업에서는 일자리 창출과 반대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조선업은 생산능력 감축과 기존 인력 타 업종 이직, 여타 주력산업에서는 선제적 사업재편을 지원하는데, 이는 박근혜정부가 마련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과 원샷법 등 선제적 구조조정 정책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의료를 포함한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해 시장을 개척한다고 하는데 이는 박근혜정부의 규제프리존특별법 등 일련의 사회서비스 민영화 정책을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국무총리 이낙연을 비롯해 정부여당 주요 인사들이 규제프리존법 통과를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외에도 신산업을 지원한다며 개인정보 수집·활용에 대한 규제를 타파하고 인증기준 없는 신제품도 6개월 내 시장출시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이윤을 위해 정보·안전의 권리까지 침해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쯤이면 일자리 로드맵이 아니라 규제완화 로드맵이라고 불러야 한다.

 

정부책임 방기를 사회적 경제로 포장하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이하 활성화 방안)>은 로드맵 중 민간일자리 창출방안의 일환이지만 여기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며 별도로 발표했다. 정부는 사회적 경제가 새로운 일자리의 보고라며 시장성과 사회적 가치를 병행 추구포용적 성장의 주역이라고 치켜세운다. 그러나 실상은 정부가 책임져야 할 사회서비스를 시장에 맡기고 이 부문에서 창업을 유도해 일자리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활성화 방안>은 사회적 기업 진출분야를 확대하겠다며 취약계층에 대한 돌봄·간병·가사서비스 등 복지서비스, 주거난 해결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 등을 거론하고 있다. 한국의 복지체계에서는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이 많아 그에 대한 복지서비스 공급은 정부의 정책목표로 삼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책임 대신 기업의 영역으로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활성화 방안>이 우수사례로 거론한 것 중에는 대학에서 학생들이 급식봉사를 하고 그 대가로 식권을 받아 취약계층 학우에게 전달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이는 사회적 경제의 우수함이라기보다 복지체계 미비와 국가책임 방기를 드러내는 사례다. 주거권 역시 마찬가지인데 정부가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업들이 참여하는 기업형 임대주택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정부는 사회적 기업들이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 고용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고용불안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의 고용불안과 양극화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곧 신자유주의 노동체제를 청산하지 않은 채 소규모 협동조합이나 상대적으로 노동자를 배려하는 사업체를 몇 개 만든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사회적 기업 역시 이윤을 확보해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가혹한 착취와 노동탄압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 경제는 노동과 복지 양자 모두에 대한 정부의 책임방기를 은폐하는 포장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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