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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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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도구이길 거부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안지완학생위원회

 

[사진 : 불꽃페미액션 페이스북]   


청와대로부터 답변이 올라왔다. 지난 930일 제안된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이름의 국민 청원이 20만 명을 돌파했기 때문이었다. 조국 민정수석은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여성의 자기결정권 외에 불법 임신중절은 태아 대 여성, 전면금지 대 전면허용 식의 대립 구도를 넘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2017122일 광화문 광장에선 작년을 연상시키는 검은 시위가 벌어졌다. 20161015일에는 보건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해당 의사에게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의료법 개정안에 분노하며 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왔었다. 올해의 낙태죄 폐지 투쟁은 작년의 요구보다 한발 나아간 것이었다. 더 이상 여성들의 몸을 저출산율 극복 정책의 일환으로 보거나 이미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요구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그 시각 종교계에서는 사회 내 팽배한 생명경시 풍조를 경계하겠다며 낙태죄 폐지 반대 행동을 개시했다. 또 다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사이의 권리 충돌, 제로섬 게임의 논의로 좁혀진 듯한 구도가 만들어졌다.

 

임신중절이 개인적 선택이 아닌 이유

지금껏 있어왔던 낙태 찬반론이 그러하듯 여기서 여성은 개인의 윤리적인 판단만으로 낙태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성이 왜 낙태를 하게 되었는지, 사회적으로 낙태는 왜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전제와 구체적인 현실은 낙태를 일방적으로 저지르는 여성의 세계에선 찾아볼 수 없다.

매년 17만 명의 여성이 낙태를 하고 있다. 여성 세 명 중 한 명이 낙태를 경험하고 있고 기혼여성 28.6% 비혼 여성 49.4%1회 이상 낙태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낙태가 죄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선 이 모든 경험들이 개인적인 영역으로 남아 죄의식 속에 갇혀버리게 된다. 언젠가는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정상 가족 프레임에 갇혀있는 사회 통념도 낙태죄 논의에서 현실을 묵과하기 좋은 조건으로 작용한다. 이성애 중심 정상가족 결혼을 통한 결합 이후에 가지는 성관계만이 합법적인 성생활이기에 현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비혼 남녀의 성관계와 그로 인한 임신은 불법이다. 불법으로 여겨지는 성생활의 증거가 여성의 몸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임신은 성이 문란한 개인의 문제로 조야하게 축소된다.

아이를 키우는 데 사회적 안전망이 보장되지 않은 현실 역시 조명 받지 못한다. 인간은 혼자 크는 존재가 아니란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누군가의 지속적인 돌봄 노동과 가사 육아 노동, 교육 등 수많은 사회적인 관계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생존권이 철저하게 시장경제에 맡겨져 있는 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이 모든 필요들은 개인 부담으로 전가된다.

이 밖에도 여성이 임신중절을 할 수 밖에 없는 조건, 상황, 관계는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우린 이제 여성과 남성의 관계, 육아가 가능한 사회적 지원 체계, 본질적으로는 한 인간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이를 낳아서 제대로 된 양육을 할 수 있도록 양육과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이뤄진 사회로의 이행을 어떻게 현실화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비혼임에도, 장애아를 낳아도, 여아를 낳아도 차별 받지 않는 사회적 토대의 구축이 이뤄진 다음에서야 여성의 선택권은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다. 이 모든 사회적 논의를 나중으로 유보하고 낙태죄에 해당하는 여성을 처벌하겠다는 국가의 행보는 지극히 폭력적이며 위선적이다. 더구나 과거에는 국가가 낙태를 피임 방법으로 규정하며 인구 억제 정책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회적 재생산권의 쟁취를 위한 투쟁

지난 1월 행정자치부가 홈페이지에 저출산 극복 프로젝트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게시했다. 지도에서 여성들은 사람이 아닌 아이를 생산하는 자궁으로 기재될 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분했고 여성은 출산의 도구가 아니라는 합의점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더 나아가 여성억압의 핵심에 놓여있는 재생산활동 전반에 저항하며 이것의 사회적 의미를 고찰하고 가치를 상승시키는 운동을 지속해나가야 한다. 나의 몸은 나의 것이라는 재생산 권리의 주체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상의 운동을 말이다. 모든 여성은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에 대한 접근권이 필요하다. 낙태를 선택할 권리와 하지 않을 권리 모두 선택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작년 검은 시위가 이목을 끌었을 때 친구가 한 신문사에 본인의 임신중절 경험을 기고했었다. 글이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사 밑에 달린 댓글은 하나같이 친구를 비난하고 욕하는 글이었고 난 댓글로도 그 친구의 용기를 응원해줄 수가 없었다. 일 년이 지났지만, 여성이 처한 현실은 변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변화는 있었다. 더 많은 여성이 본인의 이야기를 본인의 입으로 말하면서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고 명명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의 움직임들을 더 큰 운동으로 추동하기 위해 우리도 더 열심히 투쟁을 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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