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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직후

구조조정 투쟁이 묻어나는 소품들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조금 된 생각인데, 나는 해방 후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 TOP10’ 안에 정리해고를 막아낸, 민주노총이 선도했던 1996년과 1997년 전국노동자 총파업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투쟁 당시가 아니라, 총파업 1년 뒤 민주노총 뿐 아니라 우리사회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이고 난 후,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난 후, 지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그때 정리해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일 년 전 총파업 때보다 더 죽기 살기로 싸워서 막아냈더라면, 지금과 같은 괴물들이 많지 않고, 괴물 같은 사회가 되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노동자에게 고통 전가하는 경제위기 시대의 도래

IMF 직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구조조정을 해야만 나라를 구할 수 있고 이를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연일 떠들더니, 결국 노동자들이 총파업으로 막아낸 정리해고가 법제화됐다. 이어서 언론에서 일상으로 만나는 풍경은,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희생이 필요하다그래서 적게는 몇십 명에서 크게는 만 명을 헤아리는 수효의 인원을 거침없이 정리해고 했다혹은 정리해고 할 계획이다라는 글씨였다. 그리고 정리해고가 법제화 된 이후에, 우리들 일상은 정리해고 투쟁, 소위 구조조정 투쟁이 만들어낸 풍경들이었다. 이 시기에 우리의 대부분 작업들은 이 울타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 시기 주요 장편 작품들도 마찬가지이고 짧은 단편 혹은 소품들도 그랬다.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희망으로 전진>*1998년 공공연맹이 주최한 구조조정 저지투쟁 집회용으로 제작됐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구조조정은 공공기관에서 가장 먼저 시작돼서, 당시 공공노동자들의 집회와 투쟁이 많았다. 이 영상은 하나의 집회 상영용으로 간단하게 제작을 의뢰한 것이었지만, 우리의 영상 작업에 상당히 중요한 것들을 담고 있었다. 작품 자체에 대해서도 공공노동자 투쟁 뿐 아니라 당시 한국사회의 대부분의 투쟁을 담고 있어서 이 시기 구조조정 투쟁을 일람할 수 있는 중요한 영상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것은 지금은 규모가 천 명이 넘어가는 집회에서 웬만하면 선동적인 집회영상을 상영하지만, 당시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모인 야외 집회에서 영상을 상영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매체에 대한 고민과 아이디어가 많았던 당시 공공연맹 담당자의 앞선 감각 덕분에 야외 상영이 처음 시도될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집회용 영상물이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일상의 풍경으로 자리 잡은 정리해고

이듬해, 공공연맹은 또 다시 집회에서 상영할 영상을 의뢰했다. 완성된 작품은 25분짜리 영상으로, 공공노동자의 현실과 과거 투쟁 역사를 모두 다룬, 상영용을 빙자한 교육물이었다. 한 번의 상영으로 끝내기엔 제작을 의뢰한 쪽이나 제작을 하는 쪽이나 서로 아까워서 좀 더 오래 활용할 수 있게 만들다 보니 점점 내용이 더해지고 시간도 길어졌다. 그리고 그 작품은 그렇게 한 번의 상영이 아니라 교육물로 좀 더 오래 쓰였다. 작품의 제목 또한 그런 성격을 잘 담고 있었다. 누구는 노뉴단의 작품 제목 중에서 제일 좋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제목은 <더 많은 노동자들이 깨어나고 있다>**이다.

 

이 비디오는 외환과 금융위기로 시작된 IMF상황 속에서 더 이상 나약한 은행원이기를 거부하고 힘찬 노동자로 우뚝 서서 금융노동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일구어낸 서울은행 노동자의 자랑스런 투쟁을 기록한 영상물입니다.” 이런 스크롤 자막으로 시작된 <희망은 따로 없다>***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은행 구조조정으로 퇴출위기에 놓인 서울은행(하나은행으로 통폐합)1년여 간의 구조조정 투쟁을 담고 있다. 누구보다도 치열했지만 투쟁은 서울은행 노동자들이 하나은행 노동자로 되고 끝났다. 누구도 원치 않았지만 그렇게 됐다. 하루아침에 멀쩡한 일터를 폐쇄하거나 합병하는 방식으로 날려버리고, 그 과정에서 해고가 밥먹듯이 벌어졌으니, 누가 구조조정을 원했겠나.

 

*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희망으로 전진> : 1998/32/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노동자뉴스제작단

** <더 많은 노동자들이 깨어나고 있다> : 1999/25/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노동자뉴스제작단

*** <희망은 따로 없다> : 1999/38/서울은행노동조합-노동자뉴스제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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