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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노협 와해 공작에 맞선

업무조사 거부 투쟁*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업무조사 거부 노조위원장 첫 구속' 소식을 다룬 

1990년 3월 13일자 동아일보 기사.



전노협은 창립대회를 사수했지만 자본과 정권의 집중 포화를 맞게 된다. 자본과 정권의 전노협 와해를 위한 공작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났다. 업무조사, 무노동무임금 등 각종 지침으로 현장을 탄압해 전노협 탈퇴를 강요하였고, 지도부를 구속수배해 조직력 와해를 꾀했으며, 경제위기설 등 각종 이데올로기 공세로 노동운동을 고립시키고 자본 중심의 제도를 안착시키려 했다.

전노협은 출범과 동시에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여느냐아니면 다시 자본과 정권 주도의 노사관계로 회귀하느냐라는 갈림길에 놓였으며 전노협 사수투쟁은 전노협 해산까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노협 탈퇴만 약속하면 무사하게 해주겠다.”

전노협 발족을 앞두고 노동부는 전노협준비위가 조합원들로부터 전노협 건설기금을 걷고 있으며 발족 뒤에는 매달 1인당 1백 원의 회비(의무금)을 받기로 한 사실과 관련 이는 조합비의 변태지출이며 업무조사를 실시해 시정 조치할 것을 검토한다고 운을 띄웠다(1990.1.14자 한겨레신문). 이어 119일 노태우 정권은 산업평화 특별대책반 회의를 열어 최근 자칭 민주노조들이 노조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 이념적 사회운동을 전개하면서 위법, 부당한 조합비 집행, 결성기금 징수, 전횡적 노조운영 등으로 건전 노조활동 및 산업평화 정착에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면서 전노협 가입 노조에 대한 업무조사권 발동에 대한 지침을 마련했다. 정권은 행정관청은 필요시 노조의 경리 상황, 기타 관계서류를 제출케 해 조사할 수 있다는 노동조합법 제30조를 근거로 한 지침이라고 했지만 법은 진정·고발이 있거나 조직 내 분규 발생, 회계정리에 대해 지도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해 업무조사권을 인정하고 있었으니 타당성이 없는 것이었다.

업무조사를 나온 근로감독관이 전노협 탈퇴만 약속하면 무사하게 해주겠다.”며 탈퇴를 노골적으로 요구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결국 전노협 가입 노조라는 이유로 전국에서 129개 사업장이 업무조사 대상이 되었다. 전노협이 자본이 허락하는 범위 내의 노조활동을 벗어나 이념적 사회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업무조사? “니 돈이냐? 이 새끼야!”

전노협은 업무조사 거부투쟁을 결정했고 현장에서는 이에 따른 투쟁들이 이어졌다. 서노협처럼 업무조사거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응한 지노협도 있었다. 업무조사 거부를 이유로 삼성제약노조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구속되고 한양대병원노조 위원장이 수배되었으며 서울대병원노조 위원장도 고발되었다. (이러한 탄압은 91년 초까지도 계속되었고 단위노조 위원장 구속 수배도 계속되었다.) 서노협 업무조사공대위는 업무조사 탄압 즉각 중지, 구속자 석방, 수배 해제를 요구하며 평민당사에서 철야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업무조사 거부 깃을 가슴에 달아 항의하기도 했고 위원장 구속에 항의해 집행부 전원이 점거 항의농성을 벌인 사업장도 있었다.

정권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전노협을 탈퇴한 사업장도 있었지만 전노협 탈퇴 공작을 깨기 위한 조합원, 간부들의 결의는 높았다. 대우전자부품노조의 업무조사 거부투쟁은 당시 현장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례다. 위원장이었던 양규헌은 여성조합원들이 업무조사를 나온 근로감독관을 위협하고 수모를 줘 통쾌하게 몰아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우전자부품노조에는 11월 말에 업무조사를 실시하겠다는 내용의 노동부 공문이 접수되었다. 당시 전노협이 업무조사 거부투쟁 지침을 내렸지만 구체적 전술은 사업장의 조직력과 상황에 따라 달랐다고 한다. 대우전자부품노조 간부들은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남성 조합원들은 밖에서 쇠파이프를 쾅쾅 내리치고 화염병을 들었다 놨다 하며 분위기를 잡았고, 여성 조합원들은 니 돈이냐? 이 새끼야!”라며 업무조사 나온 근로감독관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감독관이 나이도 어린 게 왜 이래?”라고 하자 나이도 어린 애들한테 맞아 봐라!”, ”오늘 다 죽여 버려!”라며 되받아쳤다. 그 기세에 눌려 도망치던 근로감독관을 한 여성 조합원이 따라가 잡아채자 술집 여자마냥 왜 이래?”라고 했으니 기름에 불을 부은 격이다. 달걀과 고춧가루가 퍼부어졌고 일하던 노동자들이 와 말릴 정도였단다.

대우전자부품노조의 간부, 조합원들이 업무조사에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저항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근로감독관이) 돌아갈 때 다른 사업장 가면 정말 죽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자는 것이었단다. 이 투쟁 후 간부들은 전노협 사수와 노동운동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자본은 위원장이 수배 중인 틈을 타 노조를 와해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겠지만 어긋났다. 전노협 사수 투쟁은 현장 조합원의 힘으로 시작되었다.

 

* [전노협백서][전노협1990-1995], 그리고 양규헌 구술을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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