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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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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5.15 19:54

차별에 관한 내면의 풍경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제작을 기획하는 가장 초반, 우리는 제작을 의뢰하는 쪽과 제작 회의라는 것을 한다. 이때 참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이 제작을 해야 하는 엄중한 시대적역사적 사명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도 하고,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잘 모르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한다. 의외로 제작 회의의 99%는 이런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정작 이 회의의 목적은 1% 속에 있다. 1%는 대개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제작을 하는 데 돈이 얼마 드는지? 언제까지 만들 수 있는지? 돈과 시간 이야기이다. 명분과 가치, 당위성에 죽고 사는 사람들에게 종종 이 1%를 정말로 1%의 사소한 이야기로 취급해서 종종 낭패를 보기도 한다. <노동자는 노동자다>* 때 우리는 그런 낭패를 제대로 맛봤다.

 

구조화된 차별의 심연(深淵)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나

982, ‘경영상 위기라는 단서가 붙어서 정리해고가 통과되자, 갑자기 대한민국의 크고 작은 많은 기업들이 경영상 위기에 처해져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정리해고를 해대기 시작했다. 정리해고는 끝이 아니었다. 정리해고 직후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고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경영상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얼마나 의욕적으로 이 새로운 고용에 집중을 했는지 4년만인 2001년에, 비정규직은 정규직 노동자의 파업을 무력화 할 만큼 급속도로 늘어났다. 정규직과의 차별 또한 생각보다 깊고 광범위하고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급기야,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은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자신과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는 노동자다>는 이런 정규직의 태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기획됐다.

이 작업은 마치 자신이 서 있는 땅 밑이 서서히 갈라지는 느낌이나, 방바닥 틈새로 서서히 중독가스가 스며드는 느낌을 전달하려고 하는 일과 비슷했다. 구체적인 정보보다는 이런 느낌을 함께 느껴서, 하나의 노동자로 단결하여 함께 노동하고 투쟁해야겠다는 자각에 이르게 하는 것이 작업자의 의도였다. 느낌과 정서를 기본 서사로 했기 때문에 강요하는 것 같은 내레이션이 없는 긴 교육물을 기획했다. 새로운 방식의 교육물이 나올 듯했다. 작업자는 무척 애썼다. 그러나 느낌과 정서로만 설득해내기에는 우리의 역량도 모자랐고, 다뤄야하는 내용도 너무 구체적이고 분석적이기까지 해서, 작업이 진행될수록 단순해지고 명확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해지고 모호해졌다. 끝내 작업자가 방황을 했고, 작업은 언제 끝날지 몰랐다. 작업자에게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차별과 분리에 대한 충격이 너무 커서, 돈을 받고 일정 시간 안에 제작을 완성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중요하고 시급한 교육이라 생각해서 나름 제작비도 제대로 주고 제작기일도 충분히 줬다고 생각한 제작의뢰자는 처음에는 함께 걱정을 해주다가, 예정된 완성 기일에서 몇 달이 지나가자 제작의뢰 측 담당자는 이 작업에서 손을 떼고 화가 난 총괄책임자는 제작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겠다며 계약을 파기하자고 했고, 그에 따른 손해배상도 우리한테 물리겠다고 했다. 이런 류의 일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너무 일방적이고 자의적으로 제작완료일을 생각했다. 99%의 이야기로 변명을 하면서 1%를 지키지 못한 것을 용서해달라고 밤늦도록 전화통에 매달려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너무 창피했지만 계약이 파기되지 않고 작품이 완성될 수 있게 된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쉬움은 컸지만 미워할 수 없는 우리의 모습

작품은 당시 투쟁 중이던 캐리어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투쟁과 그 투쟁에 무관심하고 냉담하기까지 한 정규직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부터, 자본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분리 전략에 대한 이야기,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단결투쟁을 해야 하는 당위성에 관한 이야기, 실제로 인천제철 포항지회와 대구 상신브레이크 동지들이 단결투쟁을 위해 현장에서 실천하는 작은 이야기, 그리고 사내하청노동자 투쟁을 함께 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정규직 노동자의 해고투쟁 이야기까지, 당시 노동자계급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점차 벌어지는 간극과 차별에 충격 받고 당황하는 노동운동의 풍경風景들을 담아냈다. 작품의 완결성으로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고, 교육용으로 크게 활용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경제위기 구조조정 당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극을 거칠고 어설펐지만 예민하게 느끼려고 했던 그때 우리의 미워할 수 없는 초상肖像이었다.

 

* <노동자는 노동자다> : 20018/40/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노동자뉴스제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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