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노동유연화 뒷문 열어준 

버스 노사정합의

 

권미정경기

 




지난 227일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이 개정되었다. ‘노동시간·휴식시간 특례조항적용 업종이 26개에서 5개로 축소되면서, 노선버스업(시내, 시외,마을, 농어촌)은 특례업종에서 빠졌다.

그간 버스 운전노동자들은 특례업종이라는 이유로 잠을 자다 말다 이틀, 삼일 연속으로 운전석에 앉아야만 했다.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노선버스 노동자들은 20187월부터 1주 최장 68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고 20197월부터 순차적으로 152시간 노동시간을 적용 받는다. 하루 17시간 이상 운전하는 격일제나 복격일제는 12교대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무제한 노동에 제동 걸었더니

2016년 기준, 경기도 버스노동자의 76%2019년부터 주 52시간 적용을 받는다. 12교대제 시행을 위해 노동자들을 추가 고용해야 하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그 노동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졸음운전과 대형 사고의 요인인 장시간 노동을 부추겼던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업종폐기 투쟁은 버스노동자들의 과로노동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법이 개정되자 버스자본단체인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운송사업조합)12교대제 시행을 하려면 약 24천 명의 노동자가 더 필요하지만 추가 고용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7월 버스 대란을 예고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7월이 되기 전에 버스 노선통폐합, 운행시간 축소 등의 대책을 세우라는 공문을 각 지자체에 보냈다. 버스자본은 그러면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게 되니 특례업종 폐지를 5년 유예하자”, “탄력근로시간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했다. 이어서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 현장안착 지원대책을 통해 현재의 운행수준이 저하되지 않도록 유연 근로시간제를 활용토록 지도하겠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한국노총 자동차노동조합연맹(자노련)은 정부와 자본을 압박하며 투쟁하기 보다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검토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요구했다.

 

유연 근로시간제, 다시 장시간 노동을

버스 노동자들은 하루 일하고 하루 쉬면서 받는 기본급만으로는 생활이 안 되기 때문에, 각종 수당과 연계된 2~4일씩의 연속근무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루 17시간 이상의 장시간 중노동, 저임금 운전노동은 신규 인력충원의 걸림돌이 되었고, 입사해도 금방 다시 퇴사하는 일이 반복된다. 항상적으로 인력부족 상태다 보니 연월차도 사용하기 어렵다. 이런 버스 현장의 노동환경은 인력충원을 언제나 어렵게 만들었다.

특례업종 축소에도 버스자본은 필요인원 충원을 위한 실질적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노사교섭으로 교대제를 준비하는 사업장은 없었다. 4월말 경기도가 도내 버스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버스업체의 79%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임금 감소가 있을 것이라 답했다. 삭감되는 임금은 평균 22% 정도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버스자본은 필요인원 충원을 위한 노동환경 개선 노력은 없이, 마을버스에서 일하던 노동자를 시내버스로 빼가고, 광역버스로 빼가는 방식으로 밑돌 빼기식 돌려막기만 했다. 그리고 버스자본이 요구했던 대로, 정부의 지도대로, 버스 현장에는 유연 근로시간제인 탄력근로시간제를 도입하자는 노사정합의가 이뤄졌다. 특례업종에서 노선버스가 빠진 이유가 현실적으로 사라졌고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지난 531일 국토부, 고용노동부, 운송사업조합, 자노련은 노선버스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노사정 선언문을 발표했다. 정부는 더 많은 돈을 업체에 지원하고 행정적 지원을 보장했고, 자노련은 현재만큼 긴 시간 노동을 약속했고, 자본은 임금감소를 보전하고 신규채용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노동시간 단축은 도루묵, 임금만 삭감

그들의 사회적 대화는 버스노동자들에 대해 유연근무를 적용한다는 합의로 귀결했다. 탄력근로시간제는 노동시간에 대한 제약범위를 넓혀준다. 탄력근로시간제에서는 하루 8시간이라는 기준은 없고 2주간, 3개월간 평균을 냈을 때 1주 기본 소정노동시간이 48시간만 넘지 않으면 된다. 그러니 연장까지 합치면 2주 단위 시행에서는 한주 최대 76시간까지 가능하다. 장시간노동은 탄력근로시간제로 인해 눌러앉았다.

게다가 지금보다 임금을 덜 지급할 수도 있다. 현재는 하루 17시간 노동 중 8시간은 기본급으로, 나머지 9시간은 연장근로수당으로 지급된다. 그런데 탄력근로시간제는 하루 노동시간의 제한이 없어서 격일제로 일하는 하루 17시간 중 연장근로수당이 발생하는 시간은 1시간이면 된다. 총노동시간과 근무형태가 동일한데 연장수당을 삭감하는 방법이 노사정합의의 결과인 것이다. ‘안전한 버스과로 없는 버스라는 사회적 약속도 사라졌다.

이런 편법을 동원하여 12교대제를 미루고 노동조건을 저하시키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버스 현장의 다수노조인 자노련은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을 탄력 근로시간제도입을 통해 전면화해주고 있다. 버스자본은 아무런 타격이 없다. 신규 채용을 하면 정부 지원은 늘어나고, 정부 지원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탄력근로시간제를 유지하면 된다. 노동시간 단축을 이유로 노동시간임금 유연성만 높아지고 인력충원은 뒷전이다. 버스 노사정합의는 노동시간 단축, 인력충원, 노동조건 개선, 안전한 버스를 현실화시켜나가겠다는 의지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