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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위기 책임은 좌파 포퓰리즘'이 아닌 

자본주의 그 자체에 있다

 

고근형정책선전위원회

 


지난 620, 국제통화기금IMF은 아르헨티나에 500억 달러 규모 구제금융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지난 5, 외국자본이 급격하게 아르헨티나를 빠져나가고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가 급락하자 마크리 대통령이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약 한 달 만이다. 이 배경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있다는 데는 이의가 없어 보인다. 기준금리를 인상함으로써 미국은 더 안정적이고 수익성이 높은 투자처가 되었고, 이에 신흥국에 투자되었던 자본이 미국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신흥국 입장에서는 이같은 자본유출로 외환보유고가 떨어져 외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이른바 신흥국 위기설은 미국이 금리인상을 시사했을 때마다 제기된 주장이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뿐 아니라 브라질, 인도, 터키 등의 화폐가치 역시 연일 하락하고 있으며 자본가들은 아르헨티나의 위기가 이들 신흥국으로 옮겨가지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언론은 물론 서방언론 일부는 미 기준금리 인상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제기한다. 바로 아르헨티나의 고질적인 좌파 포퓰리즘 정책이 낳은 재정부채 확대가 그것이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재정 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표만 의식해 남발한 선심성 정책공약이 아르헨티나의 재정을 파탄 냈고, 그 결과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복지정책을 활발하게 실시했다면 재정지출이 확대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국가부채 역시 어느 정도 증가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포퓰리즘 정책이 구제금융 신청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주장은 타당한 듯 보인다. 역시 재정건전성을 위해 국가책임 복지나 사회공공성 강화 등은 포기해야 할 가치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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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와 IMF의 협상에 반대하는 아르헨티나 노동자민중이 25일 총파업에 나섰다. 시위 참가자가 "IMF는 빈곤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포퓰리즘' 네 글자에 지워진 자본의 책임

아르헨티나의 속사정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우선 현재 아르헨티나 대통령 마우리시오 마크리는 취임 직후부터 공무원 3만 명 해고 등 재정긴축 정책을 펼쳤다. 보수언론은 마크리가 재정긴축을 통해 국가부채를 줄여나가고 있으나 이전 12년간(2003~2015) 집권한 좌파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발생한 막대한 부채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재정의 활용 자체만을 비판할 뿐, 누구를 위한 재정정책이냐는 점, 즉 재정정책의 계급적 성격을 지워버리고 있다.

여기서 잠깐 아르헨티나의 경제사를 살펴보자. 1989년 고율의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자 당시 대통령 라온 알폰신이 정의당의 카를로스 메넴에게 정권을 조기 이양한다. 메넴은 국영부문의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통해 난관을 극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실업률은 꾸준히 올라 90년대 중반 18%를 넘겼고, 무엇보다 투명성 결여, 부패 스캔들로 인해 90년대 말 몰락하게 된다. 2000년에 들어 페소화 가치가 70% 하락하고 실업률은 21%, 빈곤률은 50%를 상회하는 수준에 이른다.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빈곤률은 전례 없는 노동자민중의 분노를 야기했고, 이른바 모두들 꺼져 버려라" 라는 시위가 전국을 뒤덮는다. 2001년 말 불과 13일 동안 3명의 대통령이 취임과 사퇴를 반복하는 등, 기존의 정치권은 이 분노를 감당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2003년 조기선거가 열리게 되고, 이 때 정의당의 네스토르 키르츠네르가 집권하게 된다.

그러나 키르츠네르 정권은 같은 당이었던 메넴 정권과는 180도 다른 방향을 걷는다. 그가 취임할 당시 높은 물가상승률로 인해 실질임금은 30%나 하락하고 있었다. 키르츠네르는 최저임금인상률을 제도화해 2003년부터 최저임금을 연평균 10%씩 상승시킨다. 또한 저소득층이 사용하는 생필품 가격을 정부가 직접 관리했으며, 수도, 가스, 전기 등 공공요금을 동결시켰다. 최저임금의 인상과 주요 품목 가격 안정을 통해 실질임금 인상의 효과를 만든 셈이다. 그 결과 200345.8%였던 빈곤율은 201416.1%로 감소했다. 실질임금의 상승과 함께 실업률 또한 200121%에서 6년 만에 한 자릿수 대로 떨어졌다.

물론 이 당시 비록 완벽하진 않더라도 높은 물가와 대중의 빈곤을 해소하는 데 국가 재정을 투여한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2003년~2007년 아르헨티나의 경제성장률 자체도 평균 8.8%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놀랍게도 재정적자 역시 2003년부터 마이너스, 즉 적자가 없는 상태로 돌아선다. 진짜 문제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시작된다. 페르난데스 정부가 경제위기로 인한 외환보유고 및 세원 감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재정적자가 악화된다. 이 와중에 일부 생산업주들이 정부의 조세정책에 반대하며 생산을 사보타주하는 일도 발생한다. 한편 공공요금과 생필품값 안정을 위해 정부는 계속 재정을 투여하고 아르헨티나의 재정적자는 2015GDP 대비 6.7%에 이른다. 동시기 재정위기를 겪었던 그리스(3.7%), 스페인(3.4%)보다도 높은 수치다.

마크리는 이런 상황을 틈타 2015년 대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정의당에 맞서 승리를 거뒀다. 마크리는 12년간 정의당 정부가 걸었던 노선의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 및 공무원 대량해고, 공공요금 인상, 노조 할 권리 탄압 등이다. 그 결과 2015년 이후 재정적자는 서서히 축소되고 있다. 노동자민중의 생존권과 함께 말이다. 노동자민중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정부의 재정지출은 필요한 만큼 할 수 있다. 문제는 재원 마련을 어디서, 어떻게 하냐는 점이고, 그것이 계급적이라는 사실이다. 아르헨티나의 재정정책을 둘러싼 보수언론의 문제제기는 재정정책의 계급성을 지워버리고, 그저 재정지출이 나쁘다고만 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첫째, 자본주의 그 자체의 동학이 빚은 공황이 결정적이었다는 점과 둘째, 재정 마련에 있어 자본가계급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생산거부 등을 통해 계급적으로저항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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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는 아니다!"



아직도 꿈틀거리는 08년 경제위기 후폭풍, 계급투쟁 새 도화선 될까

한국의 노동자민중이 경험했듯 IMF의 구제금융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한국 외환위기 당시 IMF는 정리해고제 도입을 비롯한 노동유연화 정책을 실현할 것을 한국정부에 요구했다. 이번 아르헨티나 구제금융에 있어 흥미로운 대목은, 당사국 대통령이 직접 재정긴축 방안을 IMF에 선 제시했다는 점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마크리가 제시한 재정긴축안에 만족스럽다"고 답한 뒤 500억 달러 차관을 승인했다. 실상 마크리가 제시한 안은 임금인상 억제, 공공부문 구조조정 등 기존 자신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전과 같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를 통해 미 기준금리 인상의 후폭풍 신흥국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속셈이다.

08년 경제위기가 초래한 재정위기,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내팽개친 자본가계급, 기준금리 인상으로 또다시 재정긴축을 강요하는 정부. 결국 아르헨티나 사태의 원인은 자본가와 자본주의 그 자체에 있다. 그 결과는 또다시 노동자민중을 수탈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아르헨티나 노동자민중은 본능적으로 IMF 구제금융의 의미를 알고 25일 전면 총파업 투쟁에 나섰다. 원인을 알고 있다면 해결책 역시 간명할 것이다. 과연 이번 IMF 구제금융에 맞선 아르헨티나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자본에 맞선 계급투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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