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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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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적 퀴어축제는 가능하다

 

황강 한성소수자해방투쟁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19회를 맞는 이번 서울 퀴어축제에서도 구글, 미국 대사관, 유럽연합 대표부 등 대기업들과 각국 정부가 부스를 확보했다. 최근 몇 년간, 사기업들과 그 대표자인 정부는 스스로를 성소수자 운동의 주인공인 것처럼 홍보해 왔다. 이런 핑크워싱은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당사자들과 지지자들이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를 정의하고 의제를 제시할 수 있는 투쟁, ‘스톤월 항쟁으로 대표되는 저항적 성소수자 투쟁의 전통이 힘을 잃었다는 징표이다.

 

스톤월 항쟁의 전통과 그 유실

흔히 1969년 뉴욕에서 있었던 스톤월 항쟁을 오늘날 성소수자 운동의 상징적 시초로 간주하곤 한다. 노동계급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성판매 남성 등이 경찰의 폭압에 저항해 음지화되었던 자신들의 술집 스톤월 인을 거점으로 두고 며칠간 영웅적으로 저항했던 것이었다. 비록 19세기 말부터 동성애에 대한 억압을 완화하려는 시도들은 꾸준히 있어 왔으나, 사회 전반의 낙인과 편견을 완전히 부정하기보다는 개혁을 이끌어내려는 방어적인 전술을 취해왔다. 권력에 대해 전면적으로 문제시하고 본격적으로 저항한 경우는 스톤월 항쟁이 처음이었다.

스톤월 항쟁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특히 2차 대전 이후로 미국 대도시들에서 성소수자 하위문화가 자생적으로 발전해온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또한,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68혁명의 맥락에서 전반적 사회변혁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전화되던 정세 역시 성소수자들에게 주요한 영감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한번 터진 성소수자들의 분노가 사회변혁적 문구 하에 동성애 해방운동으로 조직화되도록 했다.

하지만 68혁명 전반과 마찬가지로, 동성애 해방운동 역시 변혁적 동력을 빠르게 상실했다. 동성애 해방운동 내부의 고질적인 남성중심성은 많은 레즈비언들로 하여금 독자적 실천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으며, 그러한 경합 과정 속에 잠재되어 있던 성별이분법적, 본질주의적 시각은 다시 다른 성소수자들의 온전한 정치적 주체화를 옭아매었다. 성별이분법과 본질주의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성소수자 운동 내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와 함께 어느 정도 정립되었을 즈음에는, 이미 그러한 문제의식을 전체 사회를 바꾸는 운동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실천적 동력이 상당 부분 상실된 상태였다.

 

주류화 이상의 성소수자 운동으로

해방이 아닌 소비의 장을 만들고 자유주의적 입법 이상의 목표를 고민하지 않는 운동이 주류가 되어갈수록, 그것은 오직 일부만을 위한 운동이 된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투쟁 주체들에 의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전복적이고 급진적인 고민들이 실제적인 전략으로 구체화될 수 있을 만큼 운동 내부에서 자원과 발화권력이 충분히 정의롭게 배분되고 있을까? 자본주의적 정상가족만을 통해 억압을 해결할 수 없는 저소득층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청소년, HIV감염인 등은 정말로 체제를 넘어서는 의제를 제시할 권력이 허락된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성소수자 운동을 포함하여 정체성 정치의 급진적 잠재력을 끊임없이 입증하고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정체성 정치와 계급운동의 실천적 만남을 성사시켜야 한다. 자본주의 국가는 인구의 과학적인 관리를 위해 사람들을 분류하고 규정하고 격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억압은 산업화로 인해 발생한 도시적 공간 속에서 피억압자들의 능동적인 성소수자 정체화를 이끌어냈다. 그래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그리고 임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한 남성 중심으로, 근대적인 성소수자 정체성과 문화가 최초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정치가 이후 다른 계급으로 확산되면서 계급 구분선을 따라, 그리고 성별과 국경, 인종 등의 구분선을 따라 같은 성소수자들이라도 전혀 다른 정치적 필요를 갖게 되었으며, 이는 다른 방식으로 교차하는 정치적 정체성들을 통해 표현되었다.

이처럼 정체성 정치는 자본주의적 사회변동 속에서 다양한 위치를 점하는 역사적 주체들이 효과적으로 의제를 제시하고 투쟁을 전개해나가기 위해 채택한 전술이다. 그렇기에 다른 모든 전술과 마찬가지로 정체성 정치 역시 모순을 갖고 있으며, 그 모순은 표면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실천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그렇기에 퀴어축제는 여전히 사회주의자들이 핵심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거점이다. 핑크워싱을 통해 운동 전체를 잠식해나가는 국가와 자본, 그리고 그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고자 하는 급진적 투쟁주체들 간의 극렬한 모순이 단일한 공간 속에서 구체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가 성소수자로서 당면한 문제들을 바꾸어나갈 힘을 얻고자 한다면 어떤정체성 정치를 해야 하는가 이 시급한 질문의 실마리는 오직 현장에서 공동의 급진적 투쟁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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