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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업장임금노동 조건의 

후퇴 초래하는 노동시간 단축

 

송민영대전


 

최근에 최저임금 관련해서 전화 상담을 하다가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전 세간의 화제인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71일이면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주 52시간을 전면 적용한다고 하고, 2년 후면 현재 일하시는 사업장(50인 이상 300인 미만)에서도 노동시간이 단축되어 적용될 텐데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었다.

노동시간 단축요? 그러면 급여가 줄어들 텐데요? 아직 몸뚱아리 성할 때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해야 다만 얼마라도 더 벌고, 그래야 가족들하고 생활을 하죠. 물량이 줄어 어쩔 수 없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글쎄요, 차라리 몇 시간이라도 더 일해야죠.”

답변을 듣고 순간 막막함을 느꼈다. 야박하기 그지없는 기본급에 연장-야간 수당 등을 더해 간신히 250여 만 원 이쪽저쪽의 급여를 받는 이에게 내가 너무 순진한 질문을 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오래 일하면 몸도 힘들고, 가족들과 시간 보내기도 힘들잖아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최저임금 수준의 시급에, 노조도 없는 상황이니 아직 할 말이 아니구나 싶어 입을 막았다.

 

노동존중버리고 자본존중택한 문재인 정부

조직 활동가로서 체감하기에 중소영세사업장,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아직 최저임금과 같은 문제에 관심이 더 높은 듯하다. 국회와 국무회의를 거쳐 이미 자본이 원하는 대로 최저임금법이 개악된 상황이지만, 여전히 임금 관련 내용이 상담 전화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물론 그런 관심이 즉각 노동조합 조직화로 모여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작은 사업장노동자들은 여전히 자기 목소리 내는 것을 주저한다.

하지만, ‘작은 사업장노동자들에게도 노동시간 단축은 최저임금법 개악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임금·노동 조건의 후퇴를 초래하는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 착취의 문제로 귀결될 테니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71일부터 주 52시간을 적용해야 하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서 만약 위반 사항이 있더라도 연말까지 6개월 동안 법적 제재를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면적인 노동시간 단축 요구를 무시하고, 사업장 규모별 단계적 시행을 못 박더니 그도 모자라 이제는 법적 제재마저 유예하겠단다. 발표 이후 인천의 한 지역 일간지는 “20201월 예정된 중소기업 노동시간 단축 역시 느슨해질 거라는 기대감이 감지된다. 이런 분위기라면 앞으로 중소기업계를 위한 선물 보따리가 더 있을 거라는 말도 나온다.”라고 기사를 냈다. ‘노동존중은 사라지고, ‘자본존중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던 일자리 창출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은 이미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여기에 더해 고용노동부는 626, <유연근무제도 가이드북>을 전국의 근로감독관들에게 배포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비롯하여 자본이 노동시간을 합법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하면서 노동시간 단축의 실효를 무력화할 길을 열어주기 시작했다. 말이야 노동시간 단축의 안착을 위해서라지만, 결과는 자본이 자기 필요에 따라 노동시간을 조절하고, 합법적으로 연장근로수당 등 인건비를 줄이는 양상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 바람에 노동자들 일하는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어도, 도리어 전보다 줄어든 수당으로 실질임금이 하락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최저임금법 개악으로 이미 실질임금 하락을 겪게 된 마당에 노동시간 단축으로 또 다시 임금을 착취당할 판이다.

게다가,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만큼 모자란 인력을 더 충원해야 마땅한데도 대개의 사업장에서 사람을 잘 안 뽑는다. 사람이 모자란 만큼 노동강도는 더욱 강하게 옥죌 수밖에 없다. 이런 사례가 이미 도처에 비일비재하다. 최근 상담한 모 지역의 사업장은 조립 라인에서 평균 70초에 하나씩 뽑던 물량을 50초에 뽑도록 통제한다고 한다. 식사/휴게 시간도 통제한다. 출근시간 30분 전 조회와 퇴근 시간 후 청소 등으로 무료노동도 강요한다. 300인 미만 사업장이지만, 벌써부터 이렇게 노동자를 길들이고 있는 것이다.

 

조직노동자들이 나서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은 전국의 작은 사업장에서, 그것도 노조가 없는작은 사업장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며, 조만간 보다 집중적으로 드러날 일이다. 조직 활동가로서 이런 상황에 대해 갖는 생각은 단순 명료하다. 저들이 노리는 곳에서 조합원을 조직해 내고, 그들과 함께 싸움을 준비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무력화 꼼수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투쟁하여 원상 복구시킨 금속노조 사업장 지회의 사례가 있다. 결국, 노동조합의 힘으로 싸우고, 막는 수밖에 없다. 다만, ‘작은 사업장노동자들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뜻을 함께 하는 활동가들도 한데 뭉쳐야 할 것이다. 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이든, 지역공단노조(또는 지회)이든 그 어떤 것이든 간에 안정적, 장기적 활동을 서로 약속해야 한다. 이런 움직임을 더 강하게 결집하고 지원하는 차원에서 민주노총의 공단 조직화 공동회의와 같은 실천 또한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금속노조든, 민주노총이든 현 시점에서는 작은 사업장의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 조직과 운동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가장 중요한 임무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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