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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물산 노동자들은 

결사항전을 택했나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결사항전이란 죽을 각오로 맞서 싸움을 말한다. 전쟁, 거대한 적과 마주해 피할 수 없는 싸움을 하는 경우 의지를 표명하는 말로 쓰인다. 결사항전이라는 말이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자주 등장했다. 법으로도 보장된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노동자들은 결사항전을 택해야 했다.

 

공장굴뚝으로 올라간 노동자들

남선물산은 해방 후 대구에서 직물산업 첫 주자로 나서 방직, 섬유 등 계열 기업 9개사를 운영하던 잘 나가던그룹이었다. 하지만 무리한 계열 기업 운영, 과잉 투자, 경영능력 부재 등이 직물경기 퇴조와 맞물려 1985년 그룹은 해체되고 남선물산은 은행관리기업이 되었다. 이후 경기 회복에 힘입어 1988년 이후 다시 흑자 기업으로 돌아섰다. 남선물산 노동자들은 1989년 장기 파업, 업무조사 거부투쟁을 전개하면서 남선물산노조를 대구지역 투쟁의 중심으로 세웠다.

1990, 노동자들은 92.3%의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결의하며 임금인상투쟁 결의를 모았다. 사측은 곧바로 철야농성장에 백골단을 투입했다. 노동자들은 쇠파이프를 들었고 사수대를 만들어 농성장을 지켰다. 521일 파업에 돌입하자 사측은 직장폐쇄, 단전단수, 기숙사 폐쇄, 노조간부 21명 고소고발로 대응했으며 지도부 구속과 파업대오 해산을 위해 경찰병력을 다섯 차례에 걸쳐 투입했다.

노조는 서울 본사 상경투쟁, 외환은행 항의투쟁(대구지역 노동자 113통씩 전화하기, 전국 노동자 예금인출 업무마비 등) 경찰서 항의투쟁, 전국 민주노조 순회 투쟁 설명회 등을 벌이며 맞섰다. 경찰이 노조 지도부를 구속하자 노동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파업이 장기화되자 사측이 비상대책위원회가 강성이라 협상에 응할 수 없다며 지도부 불신을 유도하고 전노협 탈퇴를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노동자들은 총회를 열어 선조업, 교섭단 재구성주장을 부결시키기도 했다. 더 나가 규약을 개정해 구속자 기금을 결의하기도 했다.

경찰은 전담반을 만들어 비상대책위원회 지도부를 연행하려 했지만 여성조합원 5명이 지나가려면 내 배 위로 지나가라며 차 앞에 드러누워 막아내기도 했다. 급기야 경찰은 교섭을 마치고 나오던 지도부 구속을 위해 권총까지 빼들었다. 대구노련 선봉대가 지도부를 탈출시켰다. 지도부 4명은 80m 높이의 공장 굴뚝에 올라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렇게 공장 굴뚝에 결사항전! 민주노조 말살 책동 즉각 중단하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는 자본과 정권의 탄압에 맞서는 민주노조 사수투쟁이 되었다. 노동자들은 임금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노조의 명운을 위해, 다시 노예로 돌아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투쟁해야 했다.

 

자본과 정권이 원하던 전노협 탈퇴 선언

74일 굴뚝으로 올라간 지도부는 임금인상, 파업기간 중 임금지급, 구속노동자 원직복직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굴뚝 난간에서 잠을 자며 매일 오전 회사 마당으로 내려와 조합원들의 아침조회에 참석하고 다시 굴뚝에 올라 농성하며 투쟁을 이어갔다. 회사 측은 장기파업에 지쳐가는 노동자들을 선조업 하면 임금 두 자리 수 인상으로 회유했지만 조합원들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파업 100일을 넘긴 830일 임시총회를 앞두고 농성에 참여하지 않던 조합원들이 선조업 주장에 동요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경찰병력이 투입되었고 굴뚝농성을 벌이던 지도부를 모두 연행했다. 지도부 연행에 항의하던 여성조합원이 2층에서 뛰어내려 다리가 부러지는 일도 벌어졌다.

상경투쟁으로 구속되었던 부위원장이 석방되어 직무대행을 맡고 97일 총회에서 파업을 철회했다. 정상가동과 함께 교섭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99일 대구노련 주최 남선물산 파업투쟁 보고대회를 끝으로 투쟁은 일단락되었다. 뉴스는 남선물산이 조업을 재개하고 노조가 전노협 탈퇴를 선언했다고 떠들어댔다.

 

자본과 정권은 경찰병력 투입, 지도부 구속, 해고로 남선물산 노동자 투쟁을 짓밟으며 전노협 탈퇴를 얻어냈다. 단위노조와 지역 곳곳에서 자본과 정권은 전노협과의 전쟁을 벌인 것이다. 우리가 남선물산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당시 곳곳에서 투쟁한 노동자들에게 질 줄 뻔히 알면서 왜 무모하게 싸운 건지 모르겠다. 차라리 가만 있었다면 전노협 탈퇴까지는 안 갔지라는 평가를 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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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 7월11일, 전국노동자신문에 실린 남선물산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사수 투쟁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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