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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자본과 생태-아파르타이드의 집단학살

비밀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정용경사회운동국장




724, 장마가 한창이던 라오스 남동부 아타푸 주 팍송 인근 세피안-세남노이Xe Pian-Xe Namnoy 수력발전소 보조댐 D가 무너져 5억 톤의 물이 삽시간에 6개의 마을 위를 덮쳤다.

그보다 4일 전인 현지시간 20, 댐 중앙에 11cm의 침하가 발생했다. 이미 댐의 붕괴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22, 댐 상단부 10개소에 균열 침하가 발생했고, 23일 오전 11시에는 이미 댐 상단부에 침하가 발생했다. 이때가 되어서야 공사총괄 합작법인 PNPC는 정부에 대피안내 협조 요청을 했다.

4일이 흐를 동안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발전소 시공을 담당하던 SK건설과 발전소 운전과 정비를 담당하던 한국서부발전은 이미 이때부터 대응책 마련보다는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상태였다.

거세게 퍼붓는 빗줄기 속, 마을 이장들은 잘 들리지도 않는 낡은 확성기로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하지만 댐이 붕괴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촌과 논밭을 일구고 목공품을 만들며 평생 살아오던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대피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어리둥절했다. 반마이 지역에 거주하던 농부 삼레드 인타봉은 아내와 세 아이를 배에 태우고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막 태우려던 참이었다. 댐 방죽이 터지면서 휩쓸려 온 건물잔해에 배는 밀려났고, 집은 허물어졌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대로 돌아가셨다. 거센 물결 가르며 간신히 누나네 집 지붕에 올라탔지만, 물은 삽시간에 10m 높이로 불어올라 지붕마저 안전하지 못했다. 새벽 두 시경, 인타봉의 가족은 전봇대 꼭대기에 매달려 해가 뜨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의 이웃 농부 솜마이 커수반은 “SK건설측에서는 물이 방류될 것이라고만 말했지, 댐이 붕괴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그렇게 확인된 사망자 수는 813일 현재 라오스 정부 공식 집계로만 36, 실종자는 98, 이재민은 7,095명이 넘는다. 캄보디아, 베트남, 세콩강 유역 등을 합쳐 도합 36천여 명 넘는 인근 마을 거주민들이 이 참사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겼고, 최소 17개의 마을이 완전히 물에 잠겨버렸다.

 

초국적 민간자본과 생태-아파르타이드의 집단학살

하지만 라오스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사망자와 실종자 수를 축소시켰다고 분개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마을 주민들과 구호단체들은 실종자 수가 1,100명은 훌쩍 웃돌고 사망자 수도 최소 3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810일에는 주태국 라오스 대사관 앞에서 태국에 거주하는 라오스인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라오스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라오스 수상에게 현재 건설 중이거나 건설계획 중에 있는 모든 댐의 공사를 즉시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8월 초순 라오스 정부관료들이 댐 건설사업 투자유치의 추가검토를 전면 중단하고 가동 중인 수력발전소 댐의 정기적 안전점검을 의무화한 데에 이어 댐 붕괴 사건 조사위를 꾸린 일련의 과정에 대해, 너무나 안이한 보여주기식 처사라고 비판하면서, 아타푸 시장 레스 사이야폰과 라오스 수상 통룬 씨쑤릿이 즉각 참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을 촉구했다.

생태-아파르타이드eco-apartheid는 원래 억압자, 자본계급이 생태계를 조작하고 오염물질 등을 통제하면서 최빈국과 최빈층의, 피억압민과 약자의 생태적 족쇄를 더욱 조이고 격리해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하지만 민중이 주도하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는 개발을, 그들의 목숨을 담보 삼아 억지로 덧씌워 참극을 빚은 이 경우에도 해당될 수 있다.

세남노이 보조댐 D의 붕괴는 집중호우로 인한 자연재해가 결코 아니었다. 이 참사는 SK건설 등 초국적 민간자본의 생태-아파르타이드적 야욕이 부른 집단학살에 차라리 가까웠다.

 

사용해 볼 엄두도 못 낸 전기탓에 목숨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

이렇듯 삶의 터전을 빼앗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수력발전소를 우후죽순으로 건설하는 정부와 초국적 기업의 술수 끝에, 주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강제 이주와 수몰의 위협 뿐이었다.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건축사업은 12억 달러 상당의 사업으로서, SK건설이 26%, 한국서부발전 25%, 태국 전기판매 민영업체인 태국전력공사RATCH Ratchaburi Electricity Generating Holding Public Company Limited25%, 라오스 내 발전소 수익을 관리하는 라오스국가지주기업 LHSE Lao Holding State Enterprise24%씩 출자한 ‘PNPC’ Pian-Namnoy Power Company라는 이름의 합작법인 명의로 진행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는 PPP Public-Private Partnership: 해외 민관합동 BOT Build-Operate-Transfer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라오스 정부가 선호하는 해외투자의 형태인 BOT사업의 특성 때문에, 외국 민간자본의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라오스의 전기, 수도 등 공공요금은 20127월부로 적용된 인상 계획에 따라 매년 2%2017년까지 인상됐다. 수력발전소가 건설된 지역의 농민들이 일상적으로 전기를 활용하기에는 너무 높은 가격이다. 2017년 현재 농업 및 관개업군 전기요금은 kWh526(한화 약 70.5),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는 일용직 노동자나 농부의 하루 일당은 높게 잡아도 5만~7만낍 (한화 약 6,700~9,373) 정도이다. 더군다나 이번 참사가 발생한 아타푸 지역은 가계 평균소득이 라오스 전역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해, 영양실조를 앓는 어린이가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했다. 영양실조로 이미 쇠약해진 어린이들은 거센 물살에 속수무책으로 쓸려갔다.

국토면적 236,800의 작은 국가 라오스에는 2018813일 현재 메콩강에만 46개의 댐이 있고 54개의 댐이 건설 중이다. 2020년까지 라오스 전역에 총 140여 개의 댐을 건설하여 아시아의 배터리역할을 하겠다는 라오스 정부의 개발야욕 때문이다. 그 대형 토목사업들은 대부분 BOT방식으로 외국민자유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라오스 수출품목의 30% 가량이 수력발전으로 생성한 전기인만큼, 여기서 생성될 전기는 대체로 내수용이 아니고, 그 이익도 역시나 라오스 민중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20123월부터 착공하여 2019년에 완공할 예정이었던, 두 개의 중앙 댐과 5개의 보조댐으로 구성된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의 보조댐 D에서 생산할 예정이었던 전력도, 90% 이상 인근 태국으로 수출될 예정이었다.

 

계속되는 비밀전쟁’, 자본의 선전포고에는 이제 총성조차 없다

라오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폭격을 당한 땅이다. 베트남 전쟁 동안 일명 호찌민 통로를 봉쇄하려는 일념으로 미군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라오스 땅에 58만 회의 폭격을 가했고 2백만t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다. 19691년 동안에만, 미군은 세계2차대전 통틀어 일본에 폭격한 양보다 더 많은 양의 폭탄을 라오스에 퍼부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라오스 전쟁의 존재 자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라오스에서의 전쟁은 비밀전쟁으로 알려졌다. 그 당시 투하된 불발탄들 때문에 그때부터 지금껏 매해 백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해 왔다.

이 비밀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신자유주의 질서 아래, 초국적 자본의 선전포고에는 이제 총성조차 없다. 서서히 민중의 설 땅과 기반을 침식하다가 이따금 방죽 터지며 재앙을 안겨줄 뿐이다. 언제까지 이 많은 사람들이 제국자본의 돈노름에 목숨을 잃고, 그 목숨값을 인정받지도 못해야 하는가? 답은 오로지 투쟁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윤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이 체제를 함께 뒤엎는 그 날까지,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자본의 행태에 단결해 저항하며 투쟁해야 한다.

 

* 특정 프로젝트 시설을 건설(build)한 민간사업자가 투자비를 회수할 때까지 이를 관리˙운영(operate)한 후 정부에 당해 시설을 이양(transfer)하는 방식. 즉 프로젝트의 시행권한을 갖는 현지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가 민간 투자자에게 특정 프로젝트의 개발, 운영, 관리 및 상업적 이용에 관한 권한을 부여하는 사업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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