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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3법 불발

화근은 국가가 키웠다

 

임용현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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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유치원3(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의 연내 입법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다. 10월 국정감사에서 비리 사립유치원 현황이 공개되자 당장이라도 비리 근절 방안이 마련될 것 같았던 분위기는 일거에 반전됐다. 이에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국회법상 신속처리 절차)을 사용할 수도 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자유한국당은 사립유치원의 사유재산을 침해할 수 있는이른바 박용진 3으로의 개정은 추호도 있을 수 없다고 맞불을 놓았다. 자유한국당이 그간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를 감싸고돌면서, 유치원3법이 좌초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한유총이 기세등등한 이유

유치원3법 입법 성사 가능성이 불투명해지자, 집단휴업과 집단폐업 카드를 손에 쥐고 흔들던 한유총도 한층 느긋해진 모양새다. 여야의 공방이 계속되면서 유치원3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데다가, 설사 극적인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원안보다 상당 부분 후퇴한 내용으로 절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을 사용할 경우,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상임위원(총원15)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신속처리안건 지정이 가능하다. 요컨대, 민주당 7, 바른미래당 2명이 찬성했을 때에야 패스트트랙으로 상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른미래당도 자유한국당과 마찬가지로 정부지원금을 보조금으로 전환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여야 간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현 상황에서 박용진 3의 원안 통과 가능성보다, 절충과 양보로 얼룩진 누더기 법안이 탄생할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높은 셈이다.

한유총이 이렇게 기고만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국회의 유치원3법 처리 불발 가능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립유치원의 태생적 근원 자체가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참조: <변혁정치> 75, 기획_‘보육 및 교육체계 현황과 문제점). 2017년도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유치원은 전국에 9,029개소가 운영되고 있고 이 중 국공립이 52.6%(4,747개소)이며 사립은 47.4%(4,282개소)를 차지한다. 그런데, 원아 수 기준으로 따지면 전국 유치원생 694,631명 중 사립유치원생은 522,110명으로 전체의 75.2%에 달한다.** 이처럼 운영 유치원과 원아 수에서 상반된 수치가 나오는 까닭은 국공립유치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초·중학교 병설유치원이 유휴 교실에서 1~5학급의 소규모로 운영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 스스로 유아교육의 주도권을 민간에 내맡긴 것이다.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정부 대책

이번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로 학부모들의 불안이 커지자, 정부는 국정과제로 내놓았던 국공립유치원 40% 확충을 조기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난항에 부딪힌 유치원3법 통과만큼이나 국공립유치원 확충방안 또한 전망이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국회에서는 한유총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개정안이 불발될 위기를 맞았다면, 정부의 국공립유치원 확충 계획은 당장 재원 조달 및 인력 충원 방안이 뚜렷하지 않아 앞이 보이지 않는상황이다. 실제로 단설유치원 1곳을 만드는 데에는 100억 원가량의 비용이 들지만, 교육부는 국공립유치원 확충을 위한 특별교부금 5000억 원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이렇게 예산 확보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자, 정부는 매입형·공영형 사립유치원 등 우회로를 택하고 있다. 그러나 매입형·공영형도 신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용과 시간이 덜 드는 것일 뿐, 유치원 매각비용, 시설사용료 등 적정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한유총의 주장에 부딪혀 적잖은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유총의 반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공립유치원 확충이 시급한 지역에서도 한유총의 입김은 워낙 드세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광주·부산·대구 등 대도시 지역의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은 10%대에 머물고 있지만, “출산율 저하로 취원율이 감소하는데도 공립유치원을 늘리겠다는 것은 사립유치원 죽이기 정책이라는 한유총의 볼멘소리에 교육부 등 당국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립유치원들의 만성적인 비리 문제로 촉발한 유아교육에 대한 공공성 강화 문제는 이처럼 유치원3법 개정안과 국공립유치원 확충계획부터 어깃장을 놓은 세력들에 의해 제자리걸음인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자유한국당과 한유총의 주장은 서로 일맥상통한다. 일부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전체의 문제인 듯 싸잡아 매도하지 말고 사유재산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을 시장의 상품으로 인정해달라는 이들의 주장이 그간 얼마나 많은 폐해를 낳았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시장 논리에 발이 묶인 정부 정책의 판을 근본적으로 갈아엎지 않는 한, 적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농단은 지속될 것이다.

 

*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불거진 이후,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누리과정 지원금을 보조금 명목으로 바꾸고 회계부정을 엄격히 감독하는 데 초점을 맞춘 유아교육법 개정안 등 ‘3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특히, 한해 2조 원에 달하는 정부의 누리과정 지원금을 전용하는 일이 없도록 법적 처벌이 가능한 보조금으로 명목을 바꾸자는 것이 당시 유아교육법 개정안의 골자였다.

** <2017년 교육통계연보>, 교육부-한국교육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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