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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경사노위,

날강도를 자처하다

 

이주용정책선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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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유행이 지난 감은 있지만, 인터넷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줄임말 중 하나가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말인데, 원하는 대답을 미리 정해 놓고선 그 답을 듣기 위해 상대방에게 질문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지난 1122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 노사정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바로 답정너의 전형이다. 경사노위는 출범과 함께 탄력근로제를 다루기로 했는데, 정부여당은 이미 탄력근로제 확대적용방침을 결정해 둔 상태다. 115일에는 정부와 여야 정당들이 모여 여··정 협의체를 구성하고 탄력근로제 확대에 합의했다. 민주당 원내대표 홍영표는 노동계의 반대로 경사노위가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면 국회에서 입법을 강행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이렇듯 경사노위가 시작부터 노동개악의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정부여당 스스로가 노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문제는 탄력근로제로 그치지 않는다. 정부와 자본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핑계로 도리어 노동조합의 쟁의권을 박탈하는 황당한 거래명세서를 들이밀려 한다. ‘대화와 타협의 문구로 치장한 경사노위는 기실 사기와 강탈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민주노총은 받아들이라?

(탄력근로제 확대에 대해) 경영계는 문제를 절박하게 제기해 왔고 당정청도 하기로 했고 국회 여야가 경사노위로 끌고 온 것이다. 완벽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쟁점이라도 좁혀 2월 임시국회가 열리기 전인 1월 말까지 국회에 타협안을 제출할 것이다.”

경사노위 위원장 문성현이 125일 매일경제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여기에서 문성현은 탄력근로제 확대에 반대하고 있는 노동계를 향해 탄력근로제 확대의 마지노선이 어디까지인지 주장하라탄력근로 기간을 현실적 필요에 의해 늘리는 데 따른 오용·남용·악용을 막기 위한 보상 기준 등 적절한 보완장치 논의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약하면 경사노위 역시 탄력근로제 확대 자체는 절대 되돌릴 생각이 없으니 노동자들은 적당한보완책이나 준비해오라는 것이며, 어찌되든 2월 임시국회에 상정해 통과시키겠다는 말이다. 여태껏 정부는 민주노총에 대해 반대 입장이 있으면 경사노위에 들어와서 논의하라고 압박하면서 경사노위 출범 직후에도 민주노총의 참가를 촉구하는 권고문을 보냈다. 그러나 경사노위 위원장 본인의 언급에서도 드러나듯 경사노위는 탄력근로제 확대 여부 자체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확대할 것인지를 논의한다. 어차피 방향은 정해져 있으니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들어와 도장이나 찍으라는 그야말로 날강도 같은 요구다.

탄력근로제 확대적용의 핵심은 6개월 혹은 1년의 단위기간 내에 기업주와 경영자들이 마음대로 노동시간을 늘리고 줄일 수 있게 하면서 연장근로에 대한 추가수당도 없애는 것이다. 자본은 법으로 허용한 주52시간조차 부족하다며 노동자들을 싼값에 장시간 노동으로 부려먹을 수 있도록 탄력근로제 확대를 요구해왔다. 법정 노동시간 제한을 무너뜨리면서 노동자들의 임금도 빼앗는 게 강탈이지, 어떻게 타협일 수 있단 말인가?

 

노동권의 댓가로 노동권을 내놓으라니

일각에서는 경사노위에서 노동계가 탄력근로제를 수용하는 대신 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조 할 권리 확대를 얻어내는 이른바 빅딜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헌법도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부터 문제일뿐더러, 무엇보다 정부와 자본은 탄력근로제 확대 하나를 대가로 ILO 핵심협약을 내줄 생각이 전혀 없다. 탄력근로제는 그대로 강행하고, 노동권에 대해서도 자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별도의 청구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경사노위 위원장 문성현은 경사노위 출범 당일인 1122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ILO 핵심협약 관련) 그 내부에도 쟁점이 있지 않습니까? 노조 할 권리는 다 받고 기업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하나도 안 받고 이런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서로 올려놓고 논의하면 내가 절실하면 상대방 절실한 것도 들어줘야 된다.”

그렇다면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서 기업이 제기하는 문제란 무엇인가? “경사노위 고위 관계자를 인용한 1212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자본의 요구는 파업 시 사업장 점거 금지와 대체인력 투입 허용, 부당노동행위 제도 폐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의 연장이다. 그리고 이 고위 관계자사업장 점거파업 금지와 단협 유효기간 확대 등을 허용하는 방향에는 정부도 크게 문제없다는 입장이며 “ILO 핵심협약이 국회에서 비준될 수 있도록 하려면 이 정도는 재계 입장을 받아줘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자본의 이 요구사항은 그간 노동자들이 파업파괴이자 노조파괴로 규정했던 범죄들이다. 파업은 노동자들이 기업주에 대항해 생산을 멈추는 것인데, 점거파업을 금지하고 대체인력으로 생산활동을 유지한다는 것은 파업 자체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부당노동행위 제도는 노조탄압을 규제하는 것으로, 그나마 현행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예컨대 유성기업의 경우 장장 8년에 걸쳐 노조파괴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자본가단체이자 경사노위의 일원인 경영자총협회(경총)는 최근 유성기업 임원에 대한 폭력을 빌미로 부당노동행위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원인과 결과를 완전히 뒤집어놓은 주장으로서, 사태의 근원인 노조파괴를 비롯한 부당노동행위를 다시는 자행하지 못하도록 오히려 엄벌규정을 강화해야 마땅하다. 부당노동행위 규제를 폐지·완화하라는 것은 노조파괴를 합법화하라는 요구나 다름없는 것이다.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는 ILO 핵심협약을 비준한다면서 그 대가로 사실상 파업권을 박탈하고 노조파괴를 허용하라는 자본, 그리고 그 자본의 요구를 받아줘야 한다는 정부. 경사노위 참가가 교섭이 아니라 굴복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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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민주노총이 답해야 할 질문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보더라도 경사노위는 문재인정부의 잇따른 공약파기에 면죄부를 부여하고 노동개악을 합의로 포장하는 기구다. 노동시간 제한(52시간)은 문재인 대선 공약이었고, 엄연히 법으로도 이미 규정하고 있었으나 그간 노동부의 불법적 행정해석 때문에 5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행정해석 폐기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올 초 법 개정을 강행해 연장근로수당 삭감을 끼워 넣었고, 이제 노동시간 제한을 무력화하는 탄력근로제 확대까지 밀어붙인다. ILO 핵심협약 비준과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역시 문재인 정부 공약이었지만, 정부는 법외노조 철회가 불가하다고 말을 바꾸며 도리어 자본과 연합해 ILO 협약의 대가로 노동3권의 대폭적인 후퇴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와 자본은 민주노총에게 이 모든 개악을 경사노위에 들어와 합의하라고 한다. 합의하지 않아도 입법으로 강행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노동개악의 들러리가 되어 항복 문서에 조인할 것인가, 저들의 강탈에 맞서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인가. 진정 민주노총이 답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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