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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위한 트로이의 목마

 

이주용정책선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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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한 수준의 임금은 어느 정도일까? 생계를 잇기도 힘든 저임금보다는 높고,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보다는 낮은 수준이 적정한것일까? 이러한 발상은 임금격차라는 결과를 원인으로 뒤바꿔놓는다. 원청과 하청 사이의 임금이 2배 이상으로 벌어진 현상의 배후에는 한편으로는 비정규직과 불안정 저임금노동의 확산이, 다른 한편으로는 30대 재벌 사내유보금 880조 원으로 드러나는 재벌대기업의 천문학적 이윤축적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임금격차는 정규직 고임금 때문이라는 앞뒤가 뒤바뀐 주장으로 임금을 낮춰야 일자리가 생긴다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유포되고 있다. ‘적정임금’, ‘노사상생형 일자리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의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그 상징적인 정책이다.

지난 125, 현대차와 광주시의 광주형 일자리 협상이 타결을 앞두고 무산되었다. 이 타결식에는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려 했다. 그보다 반년 전인 작년 6월에도 현대차와 광주시가 투자협약 체결 직전까지 갔을 때 대통령이 행사에 참석하겠다고 했었다. 결과적으로 협상은 여지를 남긴 채 잠정 중단되었지만 청와대는 다시금 불씨를 지피고 있다. 새해 벽두에 대통령은 신년회에서 광주형 일자리 추진 의지를 다시금 밝혔고, 1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아예 현대차를 콕 집어 광주형 일자리를 통한 생산라인 증설을 요청했다.

문제는 광주형 일자리가 임금수준을 넘어 노사관계 전반을 재편하는 모델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 모델을 통해 재벌대기업에 일자리 증대를 요청하는 대가로 임금과 노동3권을 맞바꾸는 거래를 천명했다. 현대차 광주형 신설공장의 실현가능성을 차치하더라도 이 모델이 의도하는 전략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할 이유다.

 

일자리를 얻으려면 노동권을 포기하라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추진하는 문제의식은 아주 노골적이다. 기존 완성차 사업장의 상대적 고임금과 대립적 노사관계가 투자의욕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이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실험공장, 기존 완성차의 임금-단체협약에서 벗어난 별도의 위탁생산공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광주시의 설계모델에서는 지속적인 임금상승을 막기 위해 연공급제를 없애고 직무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구상이 드러나며, 임금액은 1차 부품업체 정도(4천만 원)로 설정했다. ‘적정임금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임금을 하청업체 수준으로 떨어뜨린다는 의도가 명확하다. 실제 현대차와 광주시의 협상과정에서 드러난 바는 이보다도 더 적은 3,500만 원 수준으로 임금을 설계했다. 광주형 자동차 공장의 실제 가동목표시점이 2021년경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액수는 주휴수당과 기타수당을 합한 최저임금 예상액을 소폭 상회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현대차와 광주시가 5년간 임금-단체협상 유예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이는 노동조합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처음부터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구상에는 기업별 교섭이 아닌 지역-산업단지 차원의 집단교섭과 이 노사교섭을 통제하는 상위개념으로서 노사민정 사회협약을 통해 노동조합이 평균 이상의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장치들을 설정하고 있다. ‘일자리를 얻으려면 노동기본권을 포기하라’, 이것이 바로 광주형 일자리에 담긴 요체다.

 

광주형 일자리의 진짜 목표

[기아차] 광주공장 미래의 과제는 무엇인가?실험공장[광주형 신규공장]과 상호작용은 불가피함. 아울러 이후 새로운 노사관계와 생산방식의 역전파의 첫 번째 대상이 될 것.” “광주형 일자리 창출모델의 실현을 위한 노사관계의 구축과정이 국내 자동차산업 및 우리나라 노사관계 전반의 질적 전환을 이룰 수 있는 출발점.” 지난 2015년 한국노동연구원이 광주시의 발주를 받아 제출한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 연구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실제 노리는 것은 신규공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차적으로는 기아차-현대차의 기존 공장들에, 나아가 국내 사업장 전반에서 노사관계 재편을 시도하겠다는 전략이 담겨 있다.

이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설정한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5000” 프로젝트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던 효과다. 이 프로젝트는 폭스바겐이 2000년대 초 공장 내부에 독립법인을 만들어 정규직 대비 20% 낮은 임금과 더 긴 노동시간, 높은 노동강도를 적용해 5천 명을 고용한 실험이었다. 그런데 아우토5000 프로젝트 시행 이후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폭스바겐 본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실질임금 삭감이 이뤄졌고, 아우토5000 프로젝트가 끝난 2008년경에는 본공장과 별도법인의 임금수준이 비슷해졌다. 이 역시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이 언급한 바다.

지난 연말 현대차와의 협상이 막판에 틀어졌지만, 서두에서 보았듯 여전히 청와대는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경제둔화 국면이 지속하고 취업자 수 지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눈에 확 드러나는 결과가 필요한 것이다. 실제 광주형 자동차 공장 협상이 올해 타결될 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담고 있는 임금체계와 노사관계 재편이 자본에게 매력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광주형 일자리는 자본을 위한 트로이의 목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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