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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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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투쟁을 찾습니다

 

이승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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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노정관계를 좌우할 핵심적인 개악 쟁점을 꼽으라면, 단연 임금과 노동시간이다.

물론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 등 전국 곳곳에서 투쟁은 이어질 것이나, 정부와 자본 입장에서 법-제도를 사용해 찍어 누를 핵심 의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적용범위가 광활하고, 그만큼 영향력도 크다. 노사 간 힘의 관계와 직결된다. 이윤과 직결돼 있기도 하다. 칼을 뽑은 김에 아예 마침표를 찍으면 가장 만족스럽겠지만, 최소한 테이블 위에 올려 공론화를 시작하는 것도 성과라고 여길 것이다. 한국 재벌의 역사를 노동법제 개악의 역사라고 할 때, 바야흐로 또 하나의 큰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한 셈이다.

 

정부와 자본이 임금체계에 손대는 이유

3%대의 장기 저성장 국면이 10여 년간 이어지며, 같은 기간 자본의 설비가동률도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자본에겐 지속적인 이윤을 보장해 줄 새로운 출구가 필요하다. ‘육성과 착취로 대표되는 외주-하청화도 일단락됐고, 이 과정에서 필요했던 고용유연화(정리해고)와 고용형태유연화(비정규직)도 이미 완성 단계다. 이제 눈을 돌린 곳은 남아있는 노동유연화의 완결점인, 임금과 노동시간이다. 이 중 노동시간은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에 여--정 간에 입장차가 없다. 사실상 형식적 입법 절차만 남겨둔 셈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숙제는 임금체계다. 자본 입장에서는 당연한 귀결이다.

그나마 자본이 눈치를 보던 정부는 이재용을 풀어주고 외국에도 대동해 가더니, 정부 초기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의 혁신성장론을 내세우며 자본의 편으로 돌아섰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 사업장 기준으로 절반이 넘는 52.3% 사업장 소속 노동자들은 별다른 임금체계 없이 임금을 수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대부분은 법정 최저임금이 곧바로 임금체계인 경우다. 같은 조사에서 호봉제를 택하고 있는 사업장은 19.5%에 불과했다. 소규모-저임금-무노조 사업장의 경우 이미 임금체계 임금교섭 방식 임금결정 방식 등에서 유연화가 사실상 완성단계에 접어든 상태다. 실제로 무노조 사업장에서는 제조업-비제조업 모두 임금결정 논의가 이뤄지는 경우가 과반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설사 임금결정 논의가 이뤄지는 경우에도 근로자 총회 등 최소한의 민주적 방식에 따른 결정방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임금결정 논의를 하는 곳에서도 그 결정 방식은 대부분 협의혹은 의견 청취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 합의에 따른 의사결정 비율은 제조업의 경우 28.7%에 불과하며, 비제조업의 경우에도 과반에 미치지 못하는 46.7%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임금을 들쑤시는 걸까. 한국에서 임금 문제는 그저 임금에 미치는 영향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노조 효과로 불리는 유노조 사업장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영역이 임금-노동조건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한 사업장에 노조를 만들고 임금이 오르면, 그 옆 사업장에서도 어라 노조 만드니 좋네, 우리도 할까생각하게 되는 효과다. 즉 호봉제 폐지 및 직무급제-성과급제 도입과 같은 임금체계 개악에 자본가들이 목매다는 이유는 바로 이 노조 효과의 축소에 있다. 호봉제를 채택하는 사업장이 대부분 대규모-유노조-고임금 사업장이란 것도 호봉제 공격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이는 최근 직무급제 도입 논의의 과녁이 바로 이들을 향한 임금유연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방증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직무급제 도입의 주요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이른바 임금경직성지적은 현실과 거리가 먼 허구에 가깝다. 임금체계 공격의 과녁은 실상 임금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임금체계를 만든 노조인 셈이다.

 

최근 직무급제 도입 시도의 의미

지난해부터 직무급제 도입 시도가 쟁점이 된 배경에는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 보건의료 노사정TF 임금가이드라인 합의 광주형 일자리 적정임금 체계 등, 최근 잇따라 발표된 굵직한 정부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과거 직무급 도입 형태가 <사업장 단위 적용>에 한정된 <자본주도>의 양상이었지만, 최근 들어 <부문-업종 및 산업단지에 적용>되는 <정부주도>의 새로운 국면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정부주도 임금체계 개편의 선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와 보건의료 노사정TF 임금가이드라인 합의안이다. 201712월 공개된 표준임금체계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과정에서 직종(청소-경비-조리-시설-사무관리) 직무등급(1~5등급) 승급단계(1~6단계)의 세 가지 구분을 설정하고, 각 직종-직무등급-승급단계 별로 임금의 상한과 평가과정 등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보건의료 노사정 합의안은 이런 표준임금체계를 기초로 오히려 적용 직종을 주차-콜센터-요양보호사 등으로 확대했다.

표준임금모델()은 스스로 호봉제 중심의 기존 임금체계 편입 시 급격한 재정부담 우려를 취지로 설명하고 있으며, 기본방향에서도 전환에 따른 소요재원을 감안, 국민 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함을 명시하고 있다. 즉 정규직 전환이 임금-고용의 차별과 불안정성을 극복하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전환 과정에서 임금비용 증가를 억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율배반이며,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과거 무기계약직-분리직군제 도입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었던 차별의 수난을 지속시키겠다는 의도다. 정부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직무를 정해 고정된 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여기에 직무가치가 낮다고 평가되면 가능한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도 족하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것과 다름없다.

정부는 표준임금체계를 시작으로, 직무급제 도입을 속도 있게 확산시키겠다는 방침을 숨기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에서의 표준임금체계 도입-안착은 (공공 노사관계의 특성상) 민간부문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는 주로 대규모-고임금-유노조 사업장에 집중돼 있는 호봉제에 대한 공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효과적인 대안 임금체계 논의를 가져가지 못한다면 단순히 임금 문제를 넘어 민주노조운동 대응력-투쟁력 약화로 이어질 우려도 없지 않다.

 

총노동 차원의 임금투쟁 전략을 마련해야

현재까지 노동조합운동에서 제출된 대안은 추상적 수준에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원칙과 실천적 방안으로서의 성과-직무급제 반대호봉제 사수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보다 앞서서는 자본의 생산성 이론에 맞서 생계비 이론이 오랜 기간에 걸쳐 대안 논리로 제출돼 왔으나, 2000년대 들어 제조업 일부를 제외하고 임금협상에서 생계비 이론이 활용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 노동조합운동의 주류 임금체계인 호봉제는 도입 당시부터 미숙련 노동자의 임금 절감을 원하는 자본의 이해와, 이를 향후 기대이익으로 상쇄하는 노동의 이해가 타협하며 만들어진 성격이 상존하는 제도인 데다가, 시간이 흐르며 사업장 내에서도 다원화된 호봉제도가 운영되는 가운데 점차 확대되고 있는 임금격차 속에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또 애초 노동력 재생산을 중심으로 노동자 생애주기에 맞춰 임금수준을 정하는 취지였던 것이었으나, 현실 운용 과정에서 일부 이 취지와 부합하지 못하는 점도 지적돼 왔다. 그 결과 갈수록 확대되는 고용형태별-근속기간별 임금격차는 한 사업장 안에서도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기존 임금체계 사수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워진 셈이다.

여기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둘러싼 자본-정부의 공격 양상에 대한 분석과 함께, ‘민주노조의 임금정책 수립임금투쟁의 재건****이 절실하다. 임금체계는 보편적으로 사업장 단위의 협약 형태로 구성되며, 사용자의 지불능력과 해당 산업의 상태, 노자 역관계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정의되기 때문에, 일관된 일반원칙의 수립이 없을 경우 자칫 사업장별 각개 대응의 형태를 띠며 계급 차원의 대응을 잃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 노사관계에 부합하는 형태의 임금체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위의 쟁점을 함께 정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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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사대상자가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항목을 복수로 기입해 비율의 총합이 100%를 넘음

  △ 출처: 고용노동부, 사업체 노동력 부가조사(각 년도)

* * 한국노동연구원, 사업장 패널조사(각 년도)

* * * 특정 업종과 산업에서 단일호봉제-완전월급제와 같은 대안 임금체계가 제출되기도 했으나, 큰 틀에서 호봉제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음.

* * * * 임금인상 투쟁이 아닌 임금투쟁의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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