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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부도의 날을 대비할 때

 

송준호기관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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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의 날

감독: 최국희 | 2018 | 114| 출연: 김혜수, 허준호, 조우진, 유아인 등

모범답안 베끼다 밀려 쓴 OMR카드 ★★★☆☆

 

 

알리는 말씀

2015512일 변혁정치 창간준비 33호부터 4년간 연재한 [공동체를 위한 건강]이 지난 78호의 신장을 다스리는 법(2)”으로 종료되었습니다. 그간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격주 연재에 힘써주신 필자(박석준/흙살림동일한의원장, 동의과학연구소장)께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이번 79호부터 선보이는 [문화로 레드카펫]에서는 문화예술계의 정보를 소개하고 쟁점을 짚어보면서 새로운 운동적 관점을 형성하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그해 파산한 것은 국가가 아니라 국민이었다. 97년 겨울을 강타한 외환위기-IMF사태는 한국사회를 각자도생의 복마전伏魔殿으로 만들었다. <국가부도의 날>은 이런 IMF사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첫 상업영화다. 영화를 보며 우리는 20년 넘도록 의식 저편에 묻어버리고 애써 돌보지 않은 기억을 반추해야 한다.

 

국가부도라는 재난

이것은 일종의 재난영화다. 금융·투자 등 경제를 다룬 다수의 영화가 범죄스릴러의 문법을 차용할 때, <국가부도의 날>은 외부에서 찾아온 충격으로써 국가부도를 그린다. 이를 증명하듯 영화는 9711, 미국 모건스탠리 본사에서 한국의 외국투자자들에 철수를 경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뒤이어 한강의 기적을 보여주는 뉴스릴이 펼쳐지고, 우리는 이 흥겨운 축제에 곧 재가 뿌려지리라는 것을 예감한다. 이윽고 권력의 상층부에서 이 재난을 인식할 때, 비로소 재난은 존재하게 된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재난은 그러나 은폐되고 유예된다. 눈 밝고 발 빠른 사람만이 위기에 대비할 수 있다. 재빠르게 외환위기를 보고하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 ), 국가가 망하는 데에 투자해 계층상승을 노리는 금융맨 윤정학(유아인 ), 외환위기를 국가개조의 계기로 삼으려는 재정부 차관(조우진 ), 공장주이자 한 가정의 가장 갑수(허준호 ) 중 가장 먼저,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쪽은 경기침체는 일시적 현상이라는 언론과 정부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소시민 갑수다.

영화는 이야기 내내 외환위기가 재난은 재난이되 내부에서 기인한 인재人災라는 사실을 관객에 주지시킨다. ‘어찌 된 일이냐는 비서실장의 채근에 계속 빌려줄 줄 알고 흥청망청 돈 쓰다가 망했다라던가 방만한 운영을 일삼고 되레 큰 소리 치는 임원에게 기업이 정치로비에 수조 원을 쓰다가 나라가 망했다고 꼬집는 한시현은 이 사태의 본질이 사회내부의 모순에 있음을 강조한다. 덕분에 영화는 자칫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그리하여 오로지 내부적 단합을 위해 존재하는 외부요인으로써 외환위기를 묘사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믿음을 사고팝니다

그렇다면 외환위기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영화는 윤정학의 입을 빌려 금융자본주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신용제도에서 답을 찾는다. 여신與信, 즉 믿음을 주고받는 일은 더 이상 마음에서 일어나지 않고 화폐 위에서 이루어진다. 자본주의의 물신성은 믿음으로 포장된 화폐를 통해 사회에 군림한다. 그러나 시스템은 붕괴하고, 갑수의 말대로 자기 말고는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는 사회가 도래한다.

한편, 하버드대 동문이라는 구실로 결탁한 재벌3세와 재정국 차관, 금융실장, 차기 수석 등의 이너서클Inner circle은 그 안에서만 통용되는 믿음을 사고판다. ‘우리가 남이가를 연상케 하는 남성 엘리트 사회의 유착관계는, 그들이 통치하는 주류의 질서가 얼마나 선택적으로 무능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우왕좌왕하는 체계 속에 유일하게 제대로 기능하는 것은 스스로 이제부터 우리가 시스템이라 선언한 한시현과 통화정책팀이다. 역설적이게도, 영화 속 유일한 희망이자 대안으로 제시되는 이들은 IMF 구제금융 대신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고 세계주요국에서 달러를 빌려와 위기를 막자는 비주류이다. 여성 관료·경제학자라는 약점 아닌 약점은 뭐야, 비서 아니었어?”, “왜 정부고위직에 여자가 없는 줄 알아? 여자들은 꼭 중요한 순간에 가서 감성적이 되거든.”이라며 혐오를 일삼는 재정국 차관에 의해 끊임없이 상기된다. 한시현에 가장 적대적인 인물이자, 시장만능주의자인 차관은 자신의 젠더권력을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한시현과 팀원들의 여러 시도를 은근하게 방해한다.

 

다가오는 위기에 맞서는 일

영화의 주인공인 한시현은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세력에 맞서 여러 차례 판을 뒤집으려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20년 후,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한시현이라는 실패한 여성 영웅은 그 자리에 무릎 꿇지 않고 제2의 한시현과 함께 자본과의 2라운드를 준비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강남의 빌딩 숲 사이로 서서히 다가오는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거대한 자막은 두 번째 위기를 경고한다. 영화 말미에 언급된 가계부채의 위험앞에, “두 번은 지지 않을 것이라는 한 팀장의 말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파산한 가계를 대신해 금을 모아줄 자본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정리해고제, 비정규직제도에 맞선 노동자 민중의 계급투쟁이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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