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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쿠데타 시도와 베네수엘라 위기는 

무엇을 말하는가?


백종성┃조직‧투쟁연대위원장



2월 5일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신년 국정연설(연두교서)은 베네수엘라와 사회주의 규탄으로 채워졌다. "미국은 절대 사회주의 국가가 되지 않을 것."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사회주의 정책이 베네수엘라를 남미의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극심한 가난과 절망의 나라로 전락시켰다."


2월 25일, 문재인 정부 역시 이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해 5월 실시된 베네수엘라 대선이 정당성과 투명성을 결여하여 현재의 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우려를 표명하며, 1월 23일 임시대통령으로 취임 선서한 과이도 국회의장을 베네수엘라의 임시대통령으로 인정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주류 언론에 베네수엘라 마두로는 국제 공조를 통해 퇴출되어야 할 인물로서, 베네수엘라는 사회주의의 실패를 집약하는 사례로서 묘사된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국제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마두로 정권을 향한 국제 공세

2019년 1월 23일, 베네수엘라 국회의장 후안 과이도는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서 대통령 마두로를 축출하겠다며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을 자처했고, 과도정부 수반으로서 자유투표를 실시해 헌정 질서를 회복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금까지 50여개 국가가 과이도를 대통령으로 인정한 바, 그 선두는 미국이다. 트럼프는 1월 23일 즉각 과이도를 국가수반으로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미국의 경제력과 외교력을 최대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1월 26일 유럽연합은 베네수엘라가 대선 계획을 밝히지 않으면 경제 제재를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1월 28일, 미국은 관할권내에서 국영석유기업 PDVSA의 자산을 동결했고, 미국인과 거래를 금지시켰다. 이어 PDVSA의 미국 내 정유 자회사인 시트고(Citgo)의 베네수엘라 송금을 차단했고, 과이도에게 시트고 계좌 접근권을 내주었다. 중남미 우익 정부들을 주축으로 2017년 결성된 "리마그룹"은 2월 4일 캐나다에서 회의를 열었고, 멕시코를 제외한 회원국들은 과이도 지지를 표명했다.


2월 7일부터는 미국이 보낸 2천만 달러어치 '인도주의적 구호물품'의 베네수엘라 반입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었다. 급기야 2월 23일에는 베네수엘라-콜롬비아 국경으로 미국이 보낸 구호 물품을 반입하겠다는 반정부 세력과 정부군이 무력 충돌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2월 25일, 이를 기화로 베네수엘라 야당 인사들은 콜롬비아에서 열린 리마그룹 회의에서 미국의 군사개입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는 '우리는 100% 당신 편'이라는 내용의 미국 대통령 친서를 들고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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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이도의 공약 중 하나는 국영석유회사의 민영화다.]



베네수엘라 전복 시도, 미국의 앞마당 청소

미국의 행보는 미리 계획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신속했다. 1월 23일 과이도 정부 인정, 1월 25일 과거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등 중남미 좌파정권 전복 공작을 주도한 엘리엇 에이브럼스 베네수엘라 특사 임명, 1월 26일 베네수엘라 문제 논의를 위한 UN안보리 소집, 1월 28일 PDVSA 자산 동결조치 등등.


그간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정권교체 의사를 숨기지 않았다. 2017년 8월,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개입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밝힌바 있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2017년부터 베네수엘라 쿠데타를 비밀리에 모의했다고 2018년 9월 9일 보도했다.


미국은 인도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대고 있으나, 미국의 제재를 통해 피해를 보는 것은 무엇보다 베네수엘라 빈곤층이다. 존 볼턴 국가안보 보좌관이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 PDVSA 제재조치를 발표하면서 밝힌 바, 제재로 인한 베네수엘라의 피해액은 연간 110억 달러에 달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베네수엘라 노동자 민중에 전가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미국은 쿠데타를 인도주의적 조치로 포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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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중남미 좌파정권 전복 공작 전문가, 엘리엇 에이브럼스를 베네수엘라 특사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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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존 볼턴은 "미군 5천 명을 콜롬비아로"라는 문구를 의도적으로 기자들에게 노출시켰다.]



미국의 의도는 분명하다. 한때 중남미 12개 국가에서 집권한 좌파의 물결, 핑크타이드가 약해진 틈을 타, 이번 기회에 베네수엘라를 시작으로 '미국의 앞마당을 청소하겠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 1위 국가다. 존 볼턴 국가안보 보좌관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 기업이 베네수엘라에서 석유를 생산할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권을 불법화하는 것은 미국에 최고의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월 31일, 과이도가 발표한 국가 재건계획의 요지 중 하나는 국영석유기업 민영화였다.



사회주의의 실패인가?

베네수엘라의 빈곤율은 90%에 달한다. 소위 '마두로 다이어트'로 2018년 베네수엘라 국민의 평균몸무게는 전년에 비해 11킬로그램이나 줄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강대국이 지원하는 쿠데타라면 진작 베네수엘라는 뒤집어졌어야 하지 않을까? 날이 갈수록 고조하는 위기는 마두로 정권도, 쿠데타 세력도 사태를 종식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말한다. 미국은 군사개입을 압박하지만, 군사개입을 실제로 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쿠데타 세력이 다수 민중의 지지를 획득할 만큼 강하지 않음을 뜻한다. 즉, 민중은 베네수엘라 체제가 '사회주의'여서 마두로체제와 멀어진 것이 아니다.


마두로는 미국의 봉쇄만을 탓하지만, 마두로 체제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2002년 미국이 지원하는 쿠데타를 대중운동으로 방어해 낸 차베스 정권을 돌이켜볼 때, 베네수엘라 체제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감소하고 있음을 분명히 인지해야한다. 제국주의는 핑크타이드가 남미를 뒤덮을 때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2002년 베네수엘라와 2008년 볼리비아, 2010년 에콰도르에서 쿠데타를 방어해낸 '21세기 사회주의'는 왜 지금 위기인가. 2015년 총선에서 마두로에 반대하는 야당은 총 의석 167석 가운데 109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주의 정책이 아니라, 충분히 사회주의 정책으로 나아가지 못한 베네수엘라 체제의 한계에 있다. 당시 선거가 드러낸 것은 야당의 성장이 아니라 차베스지지자들의 해체였다. 200만 차베스지지자들이 기권했고, 이는 마두로 정권에 대한 실망의 표시였다.


현 베네수엘라체제의 위기는 생산수단 사회화 없이 고유가에 근거한 분배정책의 지속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베네수엘라체제는 애초 "볼리 부르주아지"라 불린 민족자본과의 동맹에 근거했고, 마두로는 물론 차베스도 이들의 존재를 용인하고 활용했다. 민족자본에 근거한 발전주의 모델이 핑크타이드의 전략이었다. 자본과의 정면대결을 유보하며 원자재가격 상승에 기반해 펼친 분배는 사회주의 이행경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원자재가 폭락은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위기는 보수언론의 설명처럼 '무상복지' 때문이 아니다.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넘어설 자본과의 정면대결과 이행전략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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