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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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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최저임금 탓으로 둔갑하다


밤송이┃서울



지난 2월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60만 6천 원으로 전년도 444만 5천 원보다 16만 1천 원 증가했다. 하지만 1분위(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저소득층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23만 8천 원으로 1년 전에 비해 17.7% 줄었고, 고소득층인 5분위(소득 상위 20%) 가구는 월평균 소득이 932만 4천 원으로 1년 전보다 10.4% 늘어났다. 통계상으로도 소득 격차가 더 심해졌다는 것인데, 이런 현상은 작년부터 계속 드러나고 있었다.


이에 보수 야당과 언론은 물론이고 여당 일각에서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취약계층 일자리가 감소해, 저소득층 소득이 줄어들었다”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더욱 강화했다. 통계청의 <연간 고용 동향>을 보면 2018년 취업자 수 증가는 9만 7천 명으로, 이 수치가 10만 명에 미달한 것은 2009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처음이다. 또한 3.8%를 기록한 공식 실업률은 17년 만의 최고치이기도 했다. 보수세력은 이 지표들에 근거해 현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을 공격한다. 정확히는 소득 주도 성장론을 빌미로 최저임금 인상을 ‘원흉’으로 지목한다. 물론 현 정부는 스스로 주장했던 소득 주도 성장론을 사실상 폐기하고, 전면적인 규제 완화와 친자본 노선을 확고하게 천명한 상태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물어뜯는 자들에게 이는 중요하지 않다. 저들이 노리는 것은 명목에 불과한 ‘소득 주도 성장론’이 아니라, 저임금‧불안정 노동체제의 지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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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를 따져보자

하지만 저들의 주장은 틀렸다. 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 효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주요 연구 결과들을 보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없다는 결론이 주를 이룬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공격은 주로 언론이 수행하고 있는데, 특히 이미 과잉상태인 한국 자영업계에서 벌어지는 사업체 폐업과 구조조정을 마치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새롭게 벌어지는 것처럼 포장한다. 게다가 자영업 포화는 해고와 불안정노동 확산으로 기존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이들이 생계를 위해 내몰리다 보니 벌어진 현상이다. 즉,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보수세력은 거꾸로 최저임금을 낮춰 저임금‧불안정 노동체제를 유지‧확대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저들의 목적은 매우 분명하다. ‘최저임금 인상=일자리 위기’라는 잘못된 공식을 팩트로 유포해 향후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하고, 나아가 최저임금의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까지 실현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현 정부와 여권도 이 주장을 점점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가계동향조사>는 오히려 지속적인 최저임금 인상 필요성을 드러낸다. 전체적으로 노동소득이 6.2% 늘어났고, 2015~16년 가계소득 증가율이 최하였던 것에 비해 지난해 가계당 월 소득은 2011년 이후 최대치로 늘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소득 1분위’와 ‘노동소득 10분위’ 간 격차도 5.7배에서 5.1배로 0.6배 감소했다. 소득 격차를 줄이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면 최저임금 인상이 필수적이다. 미국의 경우, 최저시급 15달러 운동의 영향으로 최저임금이 상승한 지역의 고용과 임금상승률이 다른 곳들에 비해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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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러지는 금융 수탈

오히려 <가계동향조사>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비소비 지출’과 ‘재산 소득 증가’로 드러나는 금융적 수탈과 축적, 그리고 고령 빈곤의 문제다(소득 하위 20%의 가구주 평균 연령이 63세). 조사에 따르면 대출이자와 세금, 연금과 보험 등을 포함한 비소비 지출은 가구당 95만 3,900원으로 평균 8만 6,500원씩 증가했다. 전체적으로 소득이 3.6% 늘어난 반면, 이자 부담은 24%나 늘었다. 1년간 재산소득은 4.9% 증가했다. 전체 노동자 가구의 경우 소득은 6.9% 늘어난 반면, 이자 비용은 32.3%가 늘어났다. 특히 저소득 노동 가구와 영세자영업자 가구는 소득 대비 이자 부담이 두드러지게 증가했지만 자본(금융)의 이윤과 고소득 가구 재산소득은 계속 늘었다.


이는 현 정부의 금융 정책과 관련이 있다. 2017년 3분기까지는 이자 비용이 감소하거나 소득증가율이 더 높았는데, 2017년 4분기부터 상황이 변했다. 지난 정부가 저금리로 대출 총량을 늘려 ‘부채에 기반한 경제 성장과 자본소득 증가 전략’을 펼쳤다면, 현 정부는 금리 인상에 기반해 대출 총량을 관리하면서 ‘높은 이자로 자본소득을 계속 늘리는 전략’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조절하려고 신규대출은 틀어막고 있지만, 금리는 올리면서 가계의 이자 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고령 빈곤과 취약계층, 원인은 이 체제에 있다

사회보장이 취약한 이 나라에서 청년‧여성과 더불어 노년층은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를 전전하는 대표적인 집단이다. 1분위 가구주 평균 연령이 63.4세인 점에서 드러나듯, 저소득 가구 다수가 노년층이다. 보수세력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취약집단인 노년층 일자리가 줄었기 때문에, 소득 분배 악화를 해결하려면 최저임금을 동결 내지 삭감하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취약계층 일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며 최저임금의 지역별‧업종별 차등적용도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고령 빈곤의 문제를 최저임금 탓으로 돌리는 것은, 노년층을 빈곤으로 내몬 시스템의 문제를 외면하면서 도리어 그들을 평생 저소득층으로 묶어놓겠다는 주장일 뿐이다. 은퇴한 노년층이 사회보장의 미비 속에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로 내몰려, 고된 노동을 해야만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체제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하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돌입했으면서도 상대적‧절대적 궁핍과 빈곤이 확대되고, 인간다운 삶은 계속 꿈으로만 남는 이유가 무엇인가? <가계동향조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한편에서는 ‘빈곤의 축적’이, 다른 한편에서는 ‘부의 축적’이 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맞서 노동소득 증대와 소득 격차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은 계속 필요하다. 물론 노동자뿐만 아니라 영세자영업자와 노년층의 안정적인 소득도 확보해야 하며, 이는 (자영업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 확보와 함께, 국가의 사회보장 확대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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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계급투쟁

한편 보수세력은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로 마치 현 정부가 ‘친노동 정부’라는 환상을 유포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전혀 ‘친노동 정부’가 아니다. 스스로 내세웠던 최저임금 공약을 파기했고, 도리어 최저임금 인상을 무효로 하는 최저임금법 개악을 자행했다. 최근에는 초과 노동을 조장하는 탄력근로제 확대, 노동기본권 전반을 파괴하는 노동법 개악까지 추진한다. 보수세력은 전혀 ‘친노동’적이지 않은 현 정부의 실패를 ‘친노동 정책 탓’이라고 몰아세우려는 것이다. 심지어 저들은 현 정부를 ‘사회주의 정권’, 현 정부의 정책을 ‘사회주의 정책’이라 주장하는데, 이는 그저 우스운 일이 아니라 대중에게 친노동‧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프로파간다 역할을 한다. ‘공정한 시장경제’를 추구하겠다는(현실에서 드러난 실체는 차치하더라도) 자유주의 정권에 사회주의 낙인을 찍는 넌센스가 벌어지고 있다.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노동 문제를 둘러싼 투쟁은 더욱 거세진다. 정부와 여당은 노동개악과 전면적 규제 완화 등 친재벌 정책을 가속하면서, 임금 삭감과 장시간 노동으로 안 좋은 일자리라도 양산하겠다고 벼른다. 경기침체에 대응해 자본의 이윤을 보전해주려고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를 유지하고 확대한다는 것이다. 경제위기의 책임은 언제나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며 희생과 양보를 강요한다. ‘사회적 합의’를 내세워 탄력근로제와 노동권 파괴를 밀어붙이는 것은 물론이고, 여당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노동 유연성”을 강조하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과 쉬운 해고를 주장하는 현실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렇듯 자본과 정부는 이미 계급투쟁을 선포하고 있다. 최저임금 문제는 그 최전선 중 하나다. 이제 잘못된 환상을 만들고 유포하는 저들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적극적으로 반박하면서, 노동자들에게 희생과 양보만을 강요하는 자본과 정부에 맞선 우리의 계급투쟁을 조직해 나가야 한다. 저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불러온 문제들을 최저임금 탓으로 돌려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 이 양극화와 불평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제기하자. 보수세력은 가짜 ‘친노동’ 정책을 ‘사회주의’라고 비난하고, 정부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들여 규제 완화, 지원금, 노동개악으로 기업 이윤을 보전해주려 한다. 우리는 자본에 대한 통제와 사회화를 필두로 이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급진적인 대안들을 제시하면서, 저들이 두려워할 진정한 사회주의 운동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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